몸으로본중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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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가노우 요시미츠 (소나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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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 요법의 다의성多義性

정신 요법은 무엇인가? 마음에 암시나 최면을 걸어 신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라 여길 수 있으나, 정신 혹은 마음이 지닌 개념의 다의성만큼 해석도 분분하다. 정신과 마음에 대한 기준 조차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세기에 들어와 뇌 생리학과 정신 신경학의 최첨단 연구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정신에 대한 연구는 이처럼 무척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이뤄지나, 다른 한편에선 마술적인 그 무엇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만큼 정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극적으로 상이하며,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근대 서양 의학을 형성한 이성주의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등을 배격했으나, 현재는 많은 부문에 걸쳐 그 영향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여러 정신 요법 학파와 심신 의학의 대두를 낳고 있다.
 

그럼 중국 전통의학이 바라보는 정신 요법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을까? 본문에 제시된 관점은 중의학中醫學에는 정신적 요소(요법)가 있다 혹은 없다로 양분된다. 증영정인增永靜人이 보는 정신 요법은 불가결한 관계성 속에서 의사와 환자가 병 치료의 본질을 체험해 가는 기술이라고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치료 과정 중 발생하는 정신적 요소(그것을 상담, 진단, 암시 등 뭐라 하든 간에)가 분명히 질병 치유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관점이다. 반면 대관혜미자大貫惠美子의 정신 요법이 없다는 설은 일본인의 질병관에서 비롯한다. 일본에서는 병의 원인을 인간의 심리에서 구하지 않는다. 병인病因은 오직 비정신적인 즉 생리적 요인에 의거하고, 일본 한방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의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신적 원인은 질병의 주원인은 아니나, 정신 상태에 따라 병을 불러들이거나 막을 수 있는 부차적 요소로 간주된다. 이 같은 설은 현대 중국 연구자들이 보고하는, 심인성心因性 질병도 육체적 원인에 의한 발병 증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왜 그들의 주장은 상반될까? 이는 정신 요법에 대한 이해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대관혜미자大貫惠美子는 정신요법을 정신 자체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봤다. 중의학에선 병을 신체화하기 때문에 정신을 치료하는 정신 요법은 채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질병의 원인은 생리적인 것이고 정신은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증영정인增永靜人은 정신요법을 정신에 의한 치료, 즉 질병 치료에 있어 정신을 방법론적인 도구로 봤다. 다시 말하면 치료 대상으로 정신을 보지 않고, 치료 도구로 정신을 활용한 것이다. 두 사람이 바라본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그저 정신 요법이 있다 없다라는 무의미한 논쟁만 하게 될 뿐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증영정인增永靜人 정신요법은 정신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중국인은 병인을 생리적인 것으로 본다 정신요법은 정신으로 치료하는 방법이기에 중국인은 관심 있다 ? 생리적 요소를 치료하는 데 정신이 도움되기 때문.
 

대관혜미자大貫惠美子 정신요법은 정신을 치료하는 방법 중국인은 병인을 생리적인 것으로 본다 정신요법은 정신을 치료하는 방법이기에 중국인은 관심 없다 ? 병인은 생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신 치료하는 정신요법은 쓸모 없기 때문.

 

본문의 논리대로 두 사람의 설을 종합하면, 중의학은 정신 자체를 치료하는 데는 관심이 없으나 정신을 이용한 질병치료는 환영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중의학에서 정신요법이 겨냥한 주된 표적은 정신이 아닌 생리이다. 물론 내경의학의 심리치료에 관해 언급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는 서로 돕고 서로 효과를 낸다는 말처럼 중의학에 정신 요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 정신 요법은 어디까지나 생리적 치료법을 보조하는 부차적 성격인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한 증영정인增永靜人과 대관혜미자大貫惠美子 모두, 타당한 이야기를 저마다의 관점으로 다르게 주장한 셈이다.

 

2. 축유祝由 : 원시 정신 요법

현대 중국에서는 정신 요법을 2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정신 요법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원시 샤머니즘적 의술은 중국 의학사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달리해 전해지는 한편, 유가儒家에 기반한 합리적, 경험적 의학 체계의 탄압을 받았다. 사마천司馬遷은 편작扁鵲을 빌어 샤먼적인 습속을 비판했는데 바로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경향을 겨냥했다. 시대와 왕조의 성격에 따라 샤머니즘적 의술은 비판 받거나 혹은 장려되며 변천을 겪는다.
 

축유라는 말은 아프면 천지신명께 기도한다는 뜻으로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 영추靈樞>에 처음 언급되며 그 기원은 상고上古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옛날 의서는 원시 정신 요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외과 수술과 약물 요법도 있으나, 암시에 의해 혹을 다른 사물로 옮기는 요법처럼 전반적으로 주술적 색채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 경향은 질병의 원인과 약물 사용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친다. 질병의 원인을 귀신과 악령이 침입했다고 보는 악령 체내 침입설과, 삼충三蟲, 충독蟲毒, 아악귀雅惡鬼 같은 질병 물체의 체내 침입으로 발병한다고 보는 질병 물체의 체내 침입설은 주술적 속성을 띤 병인론病因論이다. 또한 약물 사용에 있어서도 주문적인 의미가 강했다.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 <산해경山海經>,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기록된 약물 사용의 예시는 대체로 주문의 힘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방법을 사용했다. 예컨대 개나 닭의 머리를 문에 붙이는 책양磔禳 습속은 충蟲에 대한 예방 의례이다.
 

원시 정신 요법이 주술적 색깔을 띠고 있으나, 그것은 과연 아무 효과도 없는 미신에 불과했을까? 축유를 바라보는 <황제내경 소문>의 다음 언급은 시사점이 있다. 황제黃帝가 묻기를 예전 상고 시대 사람들은 축유만으로도 질병을 고쳤는데, 지금은 침이나 약을 사용해도 잘 낫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한 기백岐伯의 답변은 요즘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잃고 살아가기 때문에 축유만으로는 치료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침과 약을 동원해야 겨우 질병을 다스릴 수 있다. 즉 상고 시대에 축유가 성행했음은 미신과 의술의 후진성 때문이기보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은 몸과 환경의 조화를 일상에서 평소 실천했기 때문에 병이 들어도 마음만 다잡으면 충분히 치료가 되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축유, 즉 정신 요법만으로도 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고 시대를 황금기로 보는 도가적道家的 하강사관下降史觀에 기인하나, 정말 그 시대가 황금기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점은 마음 한번 고쳐 먹는 게 치료의 첩경이건만, 여러 비방秘方을 구하거나 병원을 드나들며 병원 쇼핑하는 요즘 세태가 황제내경이 언급한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잃고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축유를 단지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병의 원인을 해명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청淸의 오당吳瑭은 내상內傷을 치료하는 자는 반드시 정신 요법을 해야 하고, 변풍변아變風變雅를 자세히 체득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내상은 정신적·심리적 상해이고, 변풍변아는 실연에서 오는 감정의 격동이다. 축유는 환자에게 병에 걸린 원인을 다양한 언어적 기법으로 풀어가는 방법이다. 완고한 말로 인도하고, 장중한 말로 놀라 떨게 하고, 과격한 말로 두렵게 하는 등 세 치 혀로 환자를 치료한다. 이런 식의 기법은 일종의 대화술, 즉 오늘날의 심리상담과 유사한 형태이다. 따라서 축유가 질병 치료에 일정부분 효과가 있으며, 주술의 외피로 평가절하된 감이 없지 않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이는 마술적 요소와 분명히 선을 긋는 지점이다. 즉 축유는 병을 설명하고 안심시켜, 의사의 치료에 협조할 수 있게끔 환자의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이다.
 

이렇게 보면, 축유와 같은 샤머니즘적 의술은 미신적 속성으로 탄압받았으나 그 본질적 구조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료체계에 다른 언어로 녹아 들었다고 할 수 있다. 황제내경의 이정변기移精變氣와 같은 말이 그렇다. 왕빙王氷의 주석註釋에 의하면 이정변기는 사기로써 정기를 상하지 않고, 정신을 다시 강하게 하고 인체 내부를 지키게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축유와 대립하는 개념이기 보다, 오히려 축유의 속성을 생리학적인 언어로 치환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다시 말하면 황제내경의 축유 개념은 상고 시대 샤머니즘적 의술을 무조건 부정해 배척하기 보다, 그것을 끌어들여 자신의 언어로 흡수한 것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마술적 병인론이 엷어졌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의학에선 이처럼 효과가 증명된 정신 요법을 왜 부차적인 의료 수단으로 여겼는가? 그 이유는 침술에 대한 강한 자신감 때문이다. 침술은 생리적 의료 수단의 대표격이다. 침술이면 막힌 것을 뚫고 풀고 터지게 할 수 있으니, 오래된 질병도 침술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임상 경험의 축적이 중의학의 생리적 치료 중시를 촉진했다. 이 같은 경향은 모든 병(정신병에 조차도)에 신체적 치료를 실시하게 한다.

 

3. 질병관의 새로운 패러다임

원시 샤머니즘 의술에선 병인을 악령 혹은 불가해한 질병 물질의 침입으로 간주했다. 술잔 속의 뱀 그림자 고사가 좋은 사례이다. 그에 대한 치료 역시 주부呪符와 같은 부적이나, 주술이 담긴 약물로 이뤄졌다. 샤머니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며, 차츰 정신 치료법에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이전에는 병인을 보여주고 풀이하는 방식도 초자연적인 것에 기댔다면, 이제는 병리의 메커니즘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이론들이 선보였던 것이다. 의학 이론의 맹아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병인에 대한 이론은 생활 리듬의 혼란, 성적 과잉, 육음六淫, 칼이나 벌레와 짐승에 의한 것 등으로 다양했다.
 

그 중 정서의 과잉은 정신 요법에 있어 중요한 관념으로 대두된다. 감정의 격동, 과도한 생각 등은 심신에 악영향을 미쳐 병이나 죽음을 불러오는 것으로 경계되었다. 조초기曹礎基는 <장자莊子>의 구절을 논평하며 정신적 요인이 사람의 생명에 작용함에 있어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심인성 질병이 등장한다. 본문에서는 이 지점을 중국의학사상 질병관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언급한다. 아마도 질병의 원인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던 샤머니즘적 의술에서, <황제내경>과 같은 합리적 의학체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리적 요인 뿐만 아니라 정신적 발병 원인도 함께 논의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중의학은 질병원인을 생리적인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으나, 칠정七情 과잉처럼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치료 역시 생리적인 방법 (침술鍼術, 수기手技 등)만 있지 않았다. 정신이 병을 만들어 냈다면 정신으로 병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이다.

 

4. 활투活套 : 중국식 정신 요법

활투는 덮여 있던 마음을 펼쳐 낫게 하는 것 혹은 사로잡은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라는 뜻이다. 요컨대 중국식 정신 요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예는 다양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지충편至忠篇>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 <삼국지三國志 화타전華陀傳> 등 시대는 다르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감정을 움직여 생리적 변화를 유발해 치료한다. 주로 분노를 일으켜 가슴 속의 답답한 기운을 풀어내는 식이다. 대개 질병은 기혈이 막혀 발생하는 바가 많은데, 기혈이 막힘을 소통시키는 힘은 분노에 있다는 원리이다. 물론 잦은 분노는 또 그것대로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분노를 일으키는 주요한 기술은 언어이다. 말로 사람의 화를 돋우어 자극하는 방법이다.
 

거짓병詐病 치료에 있어 언어와 약물 치료는 함께 사용되었으나, 어디까지나 언어가 첫째이고 약물은 나중이었다. 거짓병은 심인성 질병과 가깝기 때문에, 정신은 정신으로 치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약물을 쓸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환자가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게 꾸민다. 이런 가 환자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질병이 스스로 치료되게끔 하는 이치이다. 장개빈張介賓이 분노로 인해 인사불성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상극相剋 원리에 의한 정신 요법이다. 분노()는 목木이요, 목을 잡는 것은 금金이다(金克木). 중병에 걸린 것처럼 꾸며 약물을 조제하는 과정은 환자로 하여금 근심에 빠지게 한다. 근심(), 즉 금이 자극되어 목을 다스린다.
 

정신병의 원인을 칠정의 변화에 의해 생긴 기혈의 막힘으로 보는 관점은, 약물 치료보다 정신 요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방식은 <황제내경 소문_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篇>에서 언급된 오행 상극 이론을 이용한 오지五志의 상호 관계에 잘 드러나 있다. 상극되는 감정을 배치해, 문제가 생긴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전화轉化 시켜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신 공격 요법으로 부를 수도 있다. 천적인 감정을 불러와 치성한 감정을 공격하는 것이니 말이다. 장개빈은 이를 상승相勝하는 정지情志로써 병적인 정지를 고친다고 명명했다. 단계丹溪 주진형朱震亨과 장종정張從正, 장개빈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화타가 사용한 방법 모두 조금씩 형태는 다르나 그 본질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정신 요법의 구체적 적용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음을 격동시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정신병의 경우에도 오히려 신체(생리) 요법이 주된 것이었다. 예컨대 히스테리 성 알코올 중독에 걸린 부인을 주진형유담강화지제流痰降火之劑를 사용해 치료한다. 이는 정신병의 원인을 담痰으로 보고, 체내에 고인 담과 침, 응체물宿物을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이다. 분명히 부인의 병은 심인성 장애에 가깝다. 그런데도 병인을 담이라는 생리·병리적 물질로 상정한 이유는, 정신 요법보다 약물 등에 의한 신체 요법을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어떻든 간에 중의학의 근간은 생리적 치료였으며, 정신 요법은 부차적 방법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생리학적 질병관에 입각한 정신 요법인 셈이다. 그럼에도 정신 요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화타와 장종정, 주진형 등이 정신 요법을 발전시켰으나, 아마도 중의학의 기본적 흐름 속에 이론화가 충분치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중의학은 심인성 발병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사기邪氣 같은 병리 물질로 기술하기 때문이다. , 마음의 병 조차 그 근원에는 물질적 요소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어찌 되었든 병의 원인인 그 물질을 처리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는 생리적 요법이 유효했던 것이다. 둘째로 언어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정신 요법의 주요한 기술은 언어이다. 언어의 사용으로 감정을 전화해 울체된 기운을 풀어낸다. 그런데 정신 요법을 이론화시키려면 그러한 임상 사례가 많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헌에 언급된 사례 자체가 적다는 사실은 중국인의 언어, 특히 시각기호인 한자漢字의 특성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한자 자체가 주술적 연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자의 속성은 한 글자 글자마다 의미체계를 담고 있다. 한자는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많이 불어넣어준다.
 

예컨대 <중국사유>에도 언급된 것처럼, 죽음에도 황제, 제후, 대부, 서민에 따라 쓰여지는 글자가 각기 다르다. 어떤 글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죽음 인지를 자동적으로 연상하게끔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정명正名이 중요했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자동으로 그에 상응하는 실질의 존재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자의 속성은 민중들 사이로 침투해 샤머니즘적 기능을 발휘했다. 이름을 취하는 것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믿음은 바로 샤머니즘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부적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때문에 언어를 주요 기술로 사용하는 정신 요법을 쓰자니 주술적 성격이 부각되었고, 이는 유가의 기반 하에 서있는 아카데믹한 의사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런 이유로 정신 요법은 부득이 이론화가 어렵게 되었고, 중의학 체계에서 보조적인 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라 추론한다._()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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