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1:통령보옥의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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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조설근 (나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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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방향은 가보옥의 욕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첫째, 가보옥이 과연 정말 물욕, 색욕, 권력욕이 없을까를 규명할 것이다. 본 에세이의 대전제이자 중요 논점이기에 이 부분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둘째, 가보옥이 좋아하고 싫어했던 사람과 사물의 특징을 분석하고 유사점을 추출할 것이다. 이 방법은 가보옥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보옥의 욕망을 역추적하는 작업이다. 셋째, 가보옥의 구체적인 언행을 분석해 그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욕망의 실천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덧붙여 매듭짓고자 한다.

 

물욕이 없는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물욕이 없느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욕은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의 획득이 아닌, 사치와 축적하려는 욕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보옥은 아주 잘사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보옥이 사치스럽다거나,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원래 잘 살기 때문에 욕심을 안 부리는 거 아니냐라는 반론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면 그가 과연 물욕과 탐심을 가지지 않았겠느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라는 주장에 반박하기는 힘들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관찰해보았다. 왜 소설 홍루몽의 배경은 가부라는 대갓집일까? 산해진미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며,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과 시시덕거리며 즐길 수 있는 공간, 인간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판타지의 세계이다. 가부, 그곳은 물욕과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이 가장 끄달리기 쉬운 욕망을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마디로 타락하기 아주 쉬운 공간적 특질을 지닌 곳이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면 그 돈을 안 쓰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다.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없던 욕망도 생겨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돈은 스스로 욕망을 증식하기에 돈 이외의 것을 돌아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돈이 많을수록 돈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부가 몰락하자 보옥의 친할머니인 가모는 “‘환경에 따라 기질이 달라지고, 양생에 따라 체질도 달라진다는 말도 있듯이 체면상 갑자기 씀씀이를 줄일 수 없기에 그대로 놔뒀던 거야 (6 159) 라고 말한다. 가부의 몰락은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사치스런 환경적 특징이 구성원을 타락시키고 가문을 무너뜨리는 한 원인임은 틀림없다. 보옥은 비록 풍족한 환경의 영향 아래 있었으나, 물질을 더욱 불리거나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출가함으로써 기존에 갖고 있던 것조차 버린다. 물질의 소비, 축적, 집착의 측면에서 보옥에게 물욕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색욕과 권력욕이 없는가?

나도 도대체 보옥이를 알 수가 없단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애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다른 장난이나 어리광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녀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건 이해가 안 돼. 걱정되어 매번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 시녀들과 어울리는 것은 필시 나이 들어가면서 남녀의 일을 알게 되자 여자애들을 가까이하려는 것일 텐데, 가만히 살펴보아도 결코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단 말야. 그러니 참 이상하기도 하지. 아무래도 원래 계집애로 태어나려다가 사내애로 잘못 태어난 놈인지도 모르겠어. (4493)

 

보옥 정도의 지위면 기생을 희롱하거나 시녀를 첩실로 취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훈도가 있으나, 방탕한 귀공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가지씩 질문을 던져보겠다. 색욕이 없음은 여자를 싫어하는가? 그렇지 않다. 보옥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이 남녀의 일, 즉 섹스의 욕망이 아니다. 보옥이 섹스하는 장면은 전편을 통틀어 딱 두 번이다. 첫 번째는 시녀인 습인과 첫경험을 하고, 두 번째는 보차와의 합방이다. 습인과는 호기심에서 일을 치르는데, 성에 눈을 뜸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보옥이 시녀들을 건드리거나, 섹스를 목적으로 음탕하게 집적대는 건 전혀 없다. 그리고 보차는 아내이니 이건 말할 것도 없다. 그것조차 한번의 합궁 이후 출가해버린다. 여자에게 성적욕망을 느끼지 않으니, 그는 성 불구인가? 보차가 임신을 해 훗날 아들을 낳으니 성립되지 않는다. 보옥은 동성애자인가? 그가 평소 남자를 탁물로 여기고 혐오한 사실로 미루어 역시 답이 아니다. 물론 드물게 호감을 느낀 남자들이 있으나 성적 자극과는 거리가 멀고, 그 부분에 대해선 다음 장에서 다루겠다. 요컨대 남성이 이성 혹은 동성과 성적으로 결합하려는 색욕의 측면에서 보옥은 그 욕망이 없다. 오히려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색욕의 늪에서 쩔쩔맨다. 가부의 호색한들 사이에서 보옥은 낯선 욕망의 세계를 유유히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인용문에서 가모가 말한 것처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지점에 놓여 있다. 권력욕에 대한 보옥의 태도는 그의 욕망의 벡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보옥의 구체적인 언행을 분석하는 면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보옥이 인간을 바라보는 특이한 시선은 가우촌과 냉자흥의 대화에 묘사된다.

 

어린아이의 말이라기 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여자는 물로 만든 골육이고 남자는 진흙으로 만든 골육이라, 여자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답니다.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장차 색마가 되려는 게 틀림없나 봅니다. (1 63)

 

를 열쇠말로 삼아,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인간유형을 분석하면 포착되지 않은 낯선 욕망이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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