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해석학1981-1982,콜레주드프랑스에서의강의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미셸 푸코 (동문선,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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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골치 아프다는 생각은 편견이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제가 관심 있는 주제는 사유의 형성에 대한 사항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것은 지리적 위치와 환경, 문화에 따라 어떤 상이점을 지니는지 궁금했지요. [주체의 해석학]을 읽으며 ,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사유의 형성 기원을 추적한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파바박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척 기뻤습니다. 고고학이니, 계보학이니 하며 도대체 이 푸코라는 양반이 수행한 작업이 무엇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던 차에,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파헤친 거장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 또한 제가 잘못 파악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 중에 한정된 폭을 갖는 한 문화 현상이 실제적으로 근대적 주체의 존재 양식에까지 관여하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는 순간을 사유의 역사 내에서 포착하는 바로 이 일이 모든 사유의 역사가 도전해야 할 핵심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p51 이 문장을 읽으며 적어도 제가 크게 오독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인간의 존재 양식을 좌우하는 사건은 어떻게 비롯되었고, 변화되었는가? 이 물음에 대한 탐구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푸코를 다시 보게 되고, 꼭 읽어내야겠다는 마음이 확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불과 3달 전만 해도, 푸코라면 고개를 저었던 저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요?

본문 중에 감동인 문장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배움의 문제와도 연계되고 [주체의 해석학]의 키워드인 자기배려와도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스승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배려를 배려하는 자이고, 제자를 사랑하는 가운데 제자가 자기 자신을 배려할 수 있게 만드는 자입니다. p99 놀라웠습니다. 자기 배려의 자기배려는 앞으로 계속 탐구할 문제이지만 이 표현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스승은 어떤 특정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본분이 아니라, 제자로 하여금 그 자신을 존중(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혹은 배려하게끔 유도(?)하는 자인 듯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존재는 자신을 내팽개치지 않는 것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이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알아서 찾아서 배우는 능동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싶네요. 아! 푸코라는 스승이 저에게 스스로 찾아 배우려는 자기 배려를 하게끔 하네요.

끝으로 노년의 문제입니다. 먼저 인용문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생이 완수되고 중단되는 나이에 접어들어 생의 완결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 배려를 해야 합니다. 노년의 준비로서의 자기 배려는 교육을 대체하던 자기 배려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 - p.113 생의 완성은 노년이다! 여기서 저는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차곡차곡 수행해온 인생은 성년과 노년의 과정을 거쳐 죽음으로 완성되겠지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면서도, 죽음 너머의 신세계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반가웠다고 하지요. 참! 대단합니다.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노년을 저렇게 멋있게 표현했으나 이는 사실 특이한 바가 아닙니다. 요즘 하는 말로 곱게 늙어야 한다는 얘기처럼 노년은 낡음이 아니겠지요. 곱게 늙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정독해야겠습니다._(끝)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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