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선물'에 대한 주제로 두번째 포스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오늘이 연인에게 '선물'하는 대표적인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것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1. 정성은 누구의 입장에서 비롯한 것인가.

  저는 Hand-made한 선물을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학교 때는 아버지 친구분 딸내미를 짝사랑해 팝송 테잎을 녹음해서 건네주었지요. 그때만 해도 이 녹음하는 작업이 참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지라, 60분 짜리 한 개 완료하면 손가락이 저릴 정도였습니다. 디카의 보급과 함께 싸이월드 등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Hand-made 선물은 진화합니다. 요즘이야 사진을 인화해 이쁘게 디자인까지 해서 전해주는 서비스가 널렸습니다만, 저는 진작에 이런 선물을 만들어서 주곤 했지요. 약간은 스토커 기질이 농후한 이 방법은, 싸이에 흩어진 선물받을 사람의 사진을 모조리 수집한 후 출력해 앨범을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뒷날 생각해보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했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얻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보다는 '소름'을 유발했을 것 같습니다. ^^ 선물을 받는 사람 입장이 아니라, 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한 탓이지요.

2. 벤저민 프랭클린의 일화

  설득의 심리학 2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프랭클린은 다른 의원의 정치적 반대와 적의 때문에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의 적의 존경과 우정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서재에 진귀한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그 책을 찬찬히 읽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고, 빌려주는 호의를 베풀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즉시 책을 보내주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나는 구구절절 호의에 감사하는 편지를 적어 책과 함께 돌려주었다. 그 후 의회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내게 말을 걸었고,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 후 무슨 일에든지 기꺼이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격언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 예이다. 즉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은 당신이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보다 다시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이야기는 참 아찔한 통찰을 줍니다. 대개 우리는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먼저 선물을 주거나 호의를 베풉니다. '내가 이만큼 잘해줬으니, 얘도 나에게 잘하겠지.' 하는 마음인 것이지요. 물론 친절하게 대하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으나, 진정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게 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나에게 그닥 관심이 없다면, 이른바 돈은 돈대로 들고 '무한 삽질'할 가능성이 높지요.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 (여기서는 좋아하는 이성이라고 합시다)을 나에게 넘어오도록 하는 것이고, 그 목표수립 과정을 출혈없이 빠르게 달성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3.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이런 것입니다. 고전적인 예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는 핑계로 부탁을 해 도움을 받는다. 사람들은 도움 요청을 쉽게 거절하지 못합니다. 사소한 부탁일수록 들어줄 수 밖에 없지요. 친절을 베풀게끔 유도를 하면,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마치 프랭클린의 적처럼 말입니다.

내가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도우려고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어쩌면 프랭클린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생각해보면 다른 장점이 분명히 있을거야..

  도움을 받으면, 나 또한 상대에게 선물을 하는 등의 액션을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습니다. 그냥 덮어놓고 선물 공세하는 것과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제가 요즘 좋아하는 사람에게 오직 '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들인 정성만큼의 효과를 별로 못 보는 듯 하더군요. 주건 말건 그냥 그려려니~ 하는 모습에 힘이 빠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 궁리하던 차에 이런 사례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무한 삽질'은 그만두고, 그 사람이 나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전략을 다시 짜야 겠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친절한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관여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Hand-made로 선물하는 것과, 그냥 사서 주는 것의 '관여도'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당연히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소중하고, 받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지요. 프랭클린의 전략은 나에 대한 관여도 (관심)가 낮거나 부정적으로 높은 사람의 인식을 뒤집는 방법인 것입니다. 무작정 선물하지 말고, 상대를 먼저 끌여들여라. 제가 실험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

2009/01/05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즐겁고 낭만적인 방법으로 선물하기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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