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 (세종서적,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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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인 페터 한트케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묵묵히 유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본문에서 이 말을 증명해보겠다. 선택한 문장은 나는 이런 책(Text)이 되고 싶다이다.


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된 인간들 또한 읽혀져야 하는 책들이다. 펼쳐진 책에서 처럼, 우리는 사람의 표정을 읽고 사랑하는 연인의 몸짓을 따른다. 맥베스 부인은 자기 남편에게 당신의 얼굴은 사람들이 이상야릇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는 책과도 같다고 말했으며


나는 타인들에게 읽혀지는 책이다. 서른 해 남짓 끊임없이 군중에 의해 해석되고 판독되어왔다. 그 중에는 정독(精讀) 혹은 열독(熱讀)한 사람도 있고, 난독(亂讀)하거나 심지어 오독(誤讀)한 이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관심이 지극한 이들은 집중해서 읽었을 터이고, 별 관심이 없으면 대충 훑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읽기이 모여 나라는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게 했으리라. 그럼 점검해보자. 현재 나는 어떤 책인가? 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처럼 다양한 해석과 끊임없는 변주가 가능한 텍스트인가, 아니면 지하철 무가지 마냥 한번 읽고 버려도 무방한 시시껄렁한 글 모음인가. 즉 나는 어떤 책인가 라는 물음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것과 같다.


인쇄업자 B. 프랭클린의 육신, 낡은 책의 표지처럼 그 내용물은 찢겨 나가고 글자와 금박은 벗겨진 채, 벌레들의 양식으로 여기 누워 있도다. 그렇지만 그 업적만은 영원하리라. 왜냐하면 그가 믿던 대로 그 책은 다시 한 번 저자에 의해 더욱 새롭고 우아한 수정 증보판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니라.


나는 초판에서 멈추지 않고 재판, 개정판을 계속 내고 싶다. B. 프랭클린처럼 매번 거듭나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영감의 번뜩임과 신선하면서 불편한 자극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 생각과 행동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낭독하고자 한다. 가끔은 나탈리 사로트 처럼 모노톤으로 담담하게, 때로는 디킨스처럼 박력있게 땀에 흠뻑 젖어가며 나 자신을 대중 앞에 발가벗겨 보이리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플리니우스의 설명처럼, 작가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일은 대중에게 주는 동시에 자신에게로 되돌려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텍스트를 보다 정교하고 풍부하게 만들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게다.


조나단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픽션으로 분류되면 유머가 넘치는 모험 소설이 되고, 사회학 밑으로 들어가면 18세기 영국의 풍자 연구서가 된다. 또 어린이 문학 쪽으로 분류하면 난쟁이와 거인, 그리고 말을 하는 말이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우화가 되고, 환타지로 분류하면 과학 소설의 선구적 작품이 되고, 여행서로 나누면 상상 속의 여행이 되며, 고전으로 분류하면 서구 문학 전범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나는 도서관 책꽂이 모든 곳에 존재하고 싶다. 하나의 카테고리에 갇혀있지 않고 읽는 이의 개성과 욕망에 따라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다.『슬램덩크』같은 성장 만화로 읽혀지다, 『호모 에로스』처럼 사랑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인간 루쉰』이 주는 한 인간의 압도적인 느낌을 선사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특정체계에 스스로를 분류해 고정시키기 보다, 경계를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 바다의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처럼, 오늘도 책장에서 독자를 애타게 혹은 섹시하게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하였으니 단 한 문장으로 묵묵히 유희를 즐겼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재미있었는데 읽는 당신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여기서 이 글을 마친다._()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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