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다. 꾸준함은 자연스러움이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 알아서 다하는 모범생의 행동양식이다. 꾸준함은 타고난 천성의 영향도 있으나,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꾸준함을 완성하는 훈련 단계에는 '꾸역꾸역'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꾸역꾸역'은 자연스럽지 않다. '빼빼마른 그는 살찌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세 공기째 먹어치우고 있다.' 처럼, 싫어도 어떤 목적을 위해 '억지로' 하는 행위를 표현할 때 '꾸역꾸역'을 쓴다. 좀더 예를 들어보자. '꾸역꾸역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더니, 몸이 좋아졌구나.', '꾸역꾸역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100권을 채웠다.' 어떻게 보면 무식하고 단순하다. 어감 조차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꾸역꾸역의 억지스러움이 결국 꾸준함의 자유를 안겨준다. 엄격한 통제와 절제가 결국에 자유를 안겨준다는 말이다. 자유와 통제는 상반된 개념이나, 이런 면에서 한 뿌리인 듯 하다.

애서가와 독서가는 서로 다르듯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직접 습작하는 것 또한 의미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채우는 연습을 하다보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행동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아직 나는 꾸역꾸역 글쓰기를 한다고 말한다. 꾸역꾸역 글쓰기로 꾸준한 행동양식을 습득하는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스스로를 꾸역꾸역이라는 고치에 가두어 충분히 숙성한 후, 고치를 열고 나와 날아오르는 나비를 꿈꾼다.

대충 마음을 탐색하는 글이 주를 이룰 것 같다. 섬세한 마음의 감수성을 잡아내는 데 나는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고학자라 블로그 제목을 잡은 것도 그렇다. 고대 유물을 발굴하려면 깊이, 오래 땅을 파야 하는데 마음 역시 마찬가지인 듯 하다. 깊이, 인내심있게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마음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를 자처하려고 한다. 고대 유물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비함을 전해주었다면, 그 보다 더 놀라운 마음의 세계를 길어올려 사람들과 나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마음세계를 탐사하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세계여행을 떠날 때도 비행기, 뱃편, 자전거, 캠핑카, 도보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듯이, 마음 또한 그렇다. 단지 훨씬 간단할 뿐이다. 노트는 무한히 열려있는 여행지이며, 연필은 운송수단, 혹은 마음이라는 말랑하면서도 때로는 딱딱히 굳은 땅을 발굴하는 곡괭이다.

마음을 찾아가는 고고학자의 여정이다보니 글은 되도록이면 백스페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기술'의 스타일로 쓰려고 한다. 단, 보시는 분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사후 퇴고를 하려고 한다. 티스토리에 첫 블로깅을 하는데, 지금까지 항상 처음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뭔가 '제대로' 하고픈 욕심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블로그 제목을 짓고, 주인장 사진을 올리고, 뭐 이런 것들. 부수적인 것에 신경쓰다보면 금방 마음이 지친다. 최초의 목적은 또 사라진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디자인 요소에 신경쓰기 보다, '꾸역꾸역' 마음을 기록하는 일에 초점을 두려 한다. 디자인이 휑해도 이해하시기를.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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