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봐야 끝나는 승부(勝負)의 삶


모(某) 지방 신문사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다수 지역 언론은 건설회사가 물주이고 업계 홍보성 기사를 많이 쓴다. 중앙 일간지도 그렇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그 수준은 노골적이다. 말썽은 신입기자로 참석한 환영 워크숍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낯간지럽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기자정신에 투철해서인지 ‘편집권은 편집국장 이하 기자들에게!’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 까닭에 경영진의 전횡(?)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워크숍 술자리에서 벌어진 경영진과 편집국장과의 갈등.. 물론 급조된 콩가루 유령 지방지라서 그랬겠지만, 즉석에서 편집국장이 해임되는 가관속에 이제 갓 입사한 동기들은 아연해 그저 눈치만 볼 뿐이었다. 꼴까닥 옆 사람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흉흉한 분위기 속에 나는 튕겨져 일어났다. 그리고 적들을 향해 결연히 들이댔다. ‘니들 맘대로 국장님을 짤라? 이런 얼어 죽을!’ 술자리는 파탄 나고, 술과 분노로 떡이 된 나를 선배 기자들이 끌어냈다.


기억하기로는 국장이 나를 불러 술 한 잔 따라주며 찐한(?) 동료애를 함께 나누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나로 인해 회사는 난리가 났고 관련자 퇴사 조치가 즉각 이뤄졌다. 건설회사는 보통 용역깡패를 두기 마련이다. 회사로 돌아와 조용히 짐을 싸는데, 어디선가 ‘야, 어제 사고 친 그 새끼 어디 있어?'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척 봐도 내 힘으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은 살기등등한 남자가 눈앞에 출현한다. 이건 그냥 양아치가 아니다. 나는 입술 꽉 깨물고 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중히 빌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정의도 살아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애써 자위하며..


내 사주는 편관(偏官)만 4개다. 관성은 사주에서 자신을 극하는 성분이다. 음양이 조화된 정관이 덕(德)으로 다스리는 반면, 음양이 치우친 편관은 인정사정  없이 혹독히 다그친다. 정관이 문치(文治)라면 편관은 무력통치인 셈이다. 냉혹한 편관은 스스로에게 엄격함을 뜻하는데,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일도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면 그 꼴을 못 봐준다. ‘편집권 독립’ 을 외치며 투쟁하다 비굴하게 스러져간 저 에피소드는 편관이 과다할 때 일어나는 충돌 지점을 보여준다. 타협이 없다. 오직 정면 돌파, 진검 승부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릇되면 선배고 사장이고 ‘계급장 떼고’ 달려든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소신 있다고 평가되는 동시에 ‘독불장군’ 으로 비판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학생회 할 때 선배들과의 마찰, 직장 들어가서도 고분고분하지 않고 상사와 맞서는 태도 때문에 밀려난 적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인간관계가 뻑뻑하고 고독해진다. 진검 승부의 끝에는 항상 선혈이 낭자한 법이다. 스산한 편관의 운명!


신념과 독선 그 사이


원칙 부여는 관성의 속성이다. ‘이건 해야 해!’ 혹은 ‘하지 말아야 해!’ 처럼 스스로에게 법과 질서를 강제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제어하고 극(剋)한다. 편관 과다는 그것이 너무 심해 삶이 피곤하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본인이 정해놓은 원칙을 지키려 안간힘 쓴다. 나 자신에게 엄격한 인간이 타인에게는 어떨까? 당연히 그들에게도 같은 수준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편관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무질서와 무원칙의 도가니탕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편관은 사회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수능 끝나고 고3 방학 때, 우연히 ‘조중동’ 의 실체를 깨닫고 큰 충격에 빠진다. 나만 이런 걸 몰랐던 건지, 그때부터 언론문제에 주목해 동아리, 자원 활동, 아르바이트도 모두 비슷한 범주에서 벌이게 된다. PC통신 언론비평동호회에서 보수언론의 문제를 공부하느라 신문 좀 읽어봤고, 하다 보니 언론 시민단체에서 새끼 활동가로 일하며 피켓도 좀 들어봤다. 잠깐이지만 기자직에도 몸담았다. 이 같은 일련의 행동은 잘못됨을 바로잡고자 하는 편관의 욕망이 반영된 게 아닐까. 그래서 편관을 군인, 경찰에 비유하나 보다. 모두 무법자를 작살내는 질서의 수호자들이며 언론도 이에 속한다.


그래서 편관은 고귀한 명예에 민감하다. 불법, 불의, 악덕이 자신을 타락하게 만드는 걸 못 참는다. 아,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유일한 직함이 ‘바른 생활 부장’ 이었고, 대학 시절 별명이 ‘선비’ 라니 이 무슨 기막힌 운명의 장난인가? ‘상투를 자르려거든 먼저 내 목을 자르라!’ 일갈하던 대쪽 같은 언덕 위의 저 일송정 푸른 솔이여.. 그러나 정의사회구현, 도덕성 회복을 부르짖는 편관은 도그마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스스로 선(善)을 추구한다는 강력한 확신은, 그 자체에 독선과 폭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1/01/05 - [의역학(醫易學)] - [사주팔자 글쓰기] 어깨에 힘 빼면 동무가 생긴다 (上)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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