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성인류학(카이에소바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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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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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신이치의예술인류학예술학과인류학의창조적융합을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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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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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힘

이니시에이션을 번역하면 성인식 혹은 통과의례입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과정입니다. 다 큰 젊은이는 더 이상 가족 내에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집안의 편안함과 달리 바깥은 냉정합니다. 혹독한 자연환경과 낯선 타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힘이 필요할까요? 첫째, 신체가 단련되어야 합니다. 몸이 약하면 일할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둘째,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족은 예측되고 익숙한 환경이나 바깥 세상은 처음 접하는 상황과 만남의 연속입니다. 셋째,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대신 결정해주던 부모는 이제 없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은 이와 같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3가지 힘이 있는지 시험하는 순간입니다. 부족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이니시에이션을 거행했습니다. 남태평양 펜타코스트 섬의 원주민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높은 데서 칡덩굴만을 붙들고 뛰어내리는 의식을 거쳐야 합니다. 오늘날 번지점프의 원형이지요. 떨어져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강인한 신체능력을 기르고 낯섦에 대한 두려움, 즉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극복해야 통과할 수 있는 의식입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대접받을 수 없습니다. 결혼도 할 수 없고 심하면 사람 취급도 안 합니다.

이니시에이션을 통과한 자는 성인으로서 인정받습니다. 성인이 된 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작별합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은 과거의 나, 즉 어린아이를 죽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입니다. 이질적인 환경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의 자아를 해체함으로써 성인으로 재탄생 하는 과정을 모든 이니시에이션은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니시에이션은 고통스럽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의 의례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은 기존의 자아를 부수고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데 따르는 필연적인 충격입니다. 성인으로 거듭난 젊은이는 자기결정능력이 있습니다. 타인과 조화롭게 지낼 수 있고, 자기 길을 용기 있게 갈 수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견고하게 하지 않고 해체할 수 있으며, 세상이 고통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인격체입니다. 부모라는 거대한 성채에서 탈주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부모의 논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던 태도에서 이제는 자신의 논리, 세계관을 생성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논리의 해체와 생성이 요구되고, 투쟁이 발생하여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나는 출산의 통증과 같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은 시련이 눈 앞에 닥쳤으니 그것에 힘껏 맞서라는 격려의 장입니다. 세상살이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밥벌이부터 힘들지요. 아니 그게 가장 힘듭니다. 이니시에이션은 험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의례입니다. 그런데 고대 부족사회와 비교해 현대 사회에서 성인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연령대는 점점 높아지고, 만혼이 늘어가고, 직장을 얻어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는 출발선이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의 힘이 소멸되어 버렸지요.

 

대칭성의 지혜를 얻는 길

성인이 된다는 것은 타자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타자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이니시에이션을 통과한 자는 자기중심적이던 개체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니시에이션의 과정은 신화의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 여행과 닮은 점이 무척 많습니다. 가족의 품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어른이 되어 돌아오는 에피소드는 신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거의 신화의 내용을 이니시에이션에 그대로 차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왜 신화의 이야기를 이니시에이션의 형태로 실천하도록 했을까요? 거기서 얻으려고 했던 신화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요?

<대칭성 인류학>의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고대 선주민 부족들이 신화를 통해 대칭성의 사고를 전승했다고 합니다. 신화에서는 변신 모티프가 일상적으로 등장합니다. 인간이 동물도 되고, 산 자가 저승에 다녀오기도 하는 등,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관계가 조성됩니다. 고대인들은 왜 이런 신화체계를 만들었을까요? 동물을 남획하면 씨가 말라버려 결국엔 인간의 생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마구잡이로 사냥하는 것을 막아야 했고, 그런 본능적인 인식이 신화의 모습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신화는 고대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일종의 윤리규범이었던 셈이지요. 그들은 신화의 내용을 구전으로 전승하며,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변신 모티프입니다. 즉 동물과 인간은 형제이며 동물이 인간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형제의 선물이고, 인간은 형제의 선물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신화의 서사구조를 형성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남획을 제어했고, 신중한 사냥을 장려하게끔 유도했지요. 그가 말하는 대칭성이란 조화를 의미합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인간이 우주의 일부임을 가르칩니다. 그들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대칭적인 윤리를 내재화하여 다른 존재와 상호존중하고, 이는 낯선 존재와 상황에 겁내지 않고 당당히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을 비밀지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이니시에이션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만 획득될 수 있는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지혜 중의 지혜이지요. 왜 이니시에이션이라는 활동으로만 얻을 수 있을까요? 요컨대 신화는 지혜이고 이니시에이션은 지혜의 실천이었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선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반드시 몸으로 육화肉化되어야 합니다. 수영 이론을 알아도 수영을 못하면 소용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간이 동물처럼 이질적인 존재와 연결되어있다는 지혜는 신화에 담겨있으며, 그것을 몸으로 실제 체험하는 과정도 신화를 전승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른바 이니시에이션의 체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고대 사회의 젊은이들은 이니시에이션을 통해 신화의 지혜를 그들의 전 존재에 새겼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힘은 대칭성, 즉 조화의 원리를 습득하기 위해 필수적이었습니다. 조화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몸이 약하면 조화는커녕 잡아 먹히고, 낯선 것을 배척하면 당연히 조화를 이룰 수 없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면 남에게 종속됩니다. 이니시에이션은 대칭성의 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대칭성 사고와 음양 원리

대칭성은 조화의 원리입니다. 인간과 자연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정신입니다. 비대칭성은 불균형한 상태입니다. 현대 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 왜곡된 상황이지요. 그럼으로써 자연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인간은 자연의 복수를 받습니다. 그건 아마도 자연 스스로 대칭성을 회복하려는 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주민들은 신화와 이니시에이션으로 대칭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양의 음양사상은 음과 양의 균형을 중요시합니다. 음과 양은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듯이, 한쪽이 무너지거나 지나치게 강해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음양 중 하나가 실하거나 허할 때 질병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처럼 음양의 조화는 불균형의 상태, 즉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관점에 기반합니다. 음양이 대칭성의 원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요. 선주민들이 찾으려고 한 비밀지는 다시 말하면 음양의 원리였던 셈입니다.

대칭성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이니시에이션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처럼, 음양의 조화 역시 비슷한 과정이 요구됩니다. 이제부터 저는 음양 조화의 원리를 체득하는 통과의례로 의역학의 세계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니시에이션으로 시험 받는 3가지, 즉 강건한 신체와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은 의역학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먼저 의역학은 의학이 한 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의역학의 의학은 질병치료도 중시하지만, 근본적으로 양생을 우선시합니다. 즉 일상의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중점을 둡니다. 일종의 예방의학이지요.

의역학은 역의 원리를 운용하는 학문입니다. 은 변화를 뜻합니다. 밤낮은 끊임없이 뒤바뀌고, 사계절은 순행하고, 태어나면 죽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변화는 무작위가 아닌 일정한 법칙으로 일어납니다. 역은 우주자연의 변화 법칙을 정밀히 탐색해 체계화한 학문입니다. 이를 역학이라고 합니다. 고대인들은 역학에 기반해 언제 서리가 내리는지,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등을 예측해 농사에 활용했습니다. 우주자연의 변화를 인간의 일상에 적용한 것이지요. 역학에 정통하면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끝없는 변화로 이뤄져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의역학은 자기 리듬을 찾는 학문입니다. 역학으로 변화의 원리를 이해하고 의학으로 몸에 실체화하면 새로운 습관, 즉 일상의 윤리가 탄생합니다. 다시 말해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특정한 변화의 법칙을 양생으로 일상에 구현할 때, 외부 척도에 포착되지 않는 기이한 삶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의역학은 이니시에이션이 그랬던 것처럼, 강건한 신체와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그 양상은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이니시에이션으로서의 의역학

의역학의 3가지 요소는 선주민들의 이니시에이션이 지닌 3요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선주민들의 이니시에이션을 통과하기 위해선 강인한 신체능력과 낯섦에 대한 용기와 자기결정권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 3가지 요소를 의역학의 관점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강인한 신체능력은 단순히 근육질의 몸매와 완력에 한정하지 않습니다. 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몸을 아는 지혜가 우선시됩니다. 또한 신체능력은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배고프거나 입맛이 당긴다고 무작정 음식물을 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편 이성에게 끌린다고 섹스에 탐닉하는 것은 생명을 갉아먹는 지름길입니다. 근본적으로 신체능력은 몸이 조화롭게 유지되도록 스스로를 제어하고, 조화가 깨졌을 때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신체에 대한 지식, 즉 생리학과 기혈의 순행과 같은 양의학과 한의학에 대한 전반적 지식과 몸이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제어하는 능력이 동시에 요청됩니다. 또한 조화가 깨졌을 때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기술, 즉 진단과 본초, 침구 같은 임상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신체를 평형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끔 호흡법, 도인법, 무예의 수련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두 번째 요소인 낯섦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의역학의 은 변화의 원리입니다. 고정된 것은 없으며, 만물은 항상 변합니다. 이니시에이션은 안락한 어린아이의 시공간을 해체합니다. 어린아이는 그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이니시에이션은 그 편안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에는 고통과 죽음이 있음을 처절히 자각합니다. 과거의 나를 해체하는 것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변화의 원리를 깨우친 사람은 과거의 자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낯선 영역, 즉 예측불허의 세계로 자신을 밀어 넣지요. 집착할 것이 없으니 나와 다른 타인을 포용할 수 있고,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역의 원리는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세 번째로 자기결정권은 판단과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외부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척도와 리듬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삶의 형태를 좌우하는 단일한 척도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러한 단일 척도에 의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양한 인생의 기준을 수립한다면, 돈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예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인생관과 삶의 윤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개성 있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자기 척도를 형성하기 위해선 예술가들의 방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표현하라.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을, 나의 손과 입으로 대중 앞에서 표현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두루뭉실한 관념적 지식이 자기 것이 됩니다. 그건 고스란히 자신의 일상에 침투해, 새로운 삶의 윤리를 배양하는 거름이 됩니다.

3가지 요소는 서로 중첩되어 물고 물리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실천되지 않을 경우, 나머지 2개를 지키더라도 이니시에이션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신체능력이 뛰어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윤리가 부재하다면, 그는 물질이라는 외부의 척도에 현혹되어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쓸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 윤리가 확고하고 열린 사고의 소유자라도 신체능력이 약하면, 말만 그럴듯한 관념론자에 불과합니다. 또한 신체가 강건하고 자기 윤리도 있으나 변화를 두려워하면, 자신의 주장만 고수하는 고집불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이니시에이션이라 할 수 없고,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자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의역학은 3가지 요소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몸만 따로 보면 그저 서양의학의 병리적 진단체계에 불과하고, 마음만 따로 보면 상담소에 가서 값싼 위로만 받을 뿐입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나 자신의 힘으로 해야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힘을 기를 때, 진정한 이니시에이션을 통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병리적 특징은 분명 이니시에이션의 부재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니시에이션으로서의 의역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대칭성을 상실한 세계

신화는 인류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단군 신화만 신화가 아닙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현대판 신화가 우리 주위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현대판 신화는 고대의 그것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고대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은 무척 다양합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물신物神이라는 유일신으로 신화가 형성됩니다. 물신에 의해서도 변신 모티프는 이뤄집니다. 돈만 있으면 외모 변신이 가능하고 그 경이로움은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보다 혁명적입니다. 무한 증식이라는 성장 신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신은 자기 외에 다른 신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가치척도는 물신을 중심으로 일렬종대를 이룹니다. 여기에 급격한 위계가 발생합니다. 물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 모든 존재를 굽어 봅니다. 동물과 형제였던 인간은, 물신 앞에서 형제를 남획하고 멸종시킵니다. 이제 인간은 문명화의 과정 속에서 급속히 물질에 경도됩니다. 자본의 논리로 존재와 관계가 재정립되며 기존의 대칭성은 파괴된 것이지요. 고대 신화에서 대칭성 원리에 의해 상호부조적 관계를 맺었던 인간과 동물 혹은 자연은, 그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만 겁니다.

대칭성이 존재 간의 변신, 즉 넘나듦을 핵심으로 한 것처럼 순환과 조화는 고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윤리였습니다. 그렇기에 몸과 마음은 분리될 여지가 아주 적었습니다. 하지만 존재 간의 해체가 이뤄지며 인간은 스스로도 분리를 경험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분화가 그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아가 비대해지고 신경증, 스트레스와 같은 질병이 만연하는 까닭은 몸과 마음을 따로 보려는 시선에 기인합니다. 현대 사회의 이니시에이션은 상업적으로 변질된 이벤트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성인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윤리를 획득하지 못해, 다른 존재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분리되고 아픕니다. 스트레스 이른바 마음의 병은 그렇게 발생하고, 몸은 시들어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가치는 현대의 병리적 상황을 치유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현대에 되살리는 의역학의 지혜

부족 사회와 동일한 통과의례를 복제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니시에이션의 가치는 소중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가치를 현대에 맞게 다시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그러한 일련의 모색이 의역학적 삶의 추구인 셈이지요. 이니시에이션으로서의 의역학으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병리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몸이 어딘가 불편하다 싶으면 습관적으로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방 맞아야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급성 질환 같은 경우 병원 치료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은 평소 생활에서 비롯합니다. 병원 쇼핑은 일상의 근본 원인을 제쳐놓고 일시적인 처방에 그치는 것이지요. 의역학으로 몸의 지혜를 터득하면 병이 날 때까지 자신을 내팽개치지 않고, 스스로 일상을 조화롭게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몸을 망가뜨리는 행동, 이른바 뻘짓을 자제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둘째는 고독감에 시달리는 마음입니다. 소통을 위한 하드웨어는 넘치나, 정작 소통 그 자체의 부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둘러싼 마음의 성채에 갇혀 있습니다.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만나더라도 자신이 편안한 범위 내에서만 인간관계를 유지합니다. 자신의 우물 안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허공을 향해 하소연하는 셈이지요. 그 이유는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역의 원리에 기초한 의역학에서는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자신이 익숙한 환경을 기꺼이 버릴 수 있음을 말합니다.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가 상처받을 자아 때문이라면, 그 자아 역시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 게 필요합니다. 의역학은 끊임없는 변화의 원리로 견고한 자아상을 산산이 해체합니다. 그때 우리는 원하는 소통을 할 수 있지요. 상처받을 자아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셋째는 인생의 비전 부재입니다. 의무교육 12년과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며 자식 낳고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사람 사는 모습입니다. 일련의 정형화된 패턴은 다른 식의 삶을 모색하는 것을 봉쇄합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무언의 압력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의역학은 단일 척도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 리듬을 찾을 수 있게 합니다. 자기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하면 남과 비교하는 마음, 즉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정형화된 삶의 궤도를 내려와 새로운 비전을 일상에서 실천하게 됩니다. 대학 안 가도 당당히 살 수 있고, 대규모 취업대열에서 이탈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를 기획하는 움직임은 부단한 비전 탐구의 모습입니다.

 

이니시에이션의 일상화

앞 장章에서 이니시에이션으로서의 의역학을 삶에서 구현하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거시적 진단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군요. 지금 당장 거기에 담긴 지혜를 실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나카자와 신이치는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에서 신화, 국가, 경제, 종교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대칭성 인류학은 그러한 시각에서 탄생한 독창적 이론이지요. 그의 문제의식은 이론의 현실 적용으로 자연스레 옮겨갑니다.

 

새로운 인식이 곧바로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실에서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천적 학문을 구축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 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p9

 

그가 주목한 것은 예술이었습니다. 전작에서 제기한 대칭성의 이론을 실천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로 삼은 셈이지요. 마침 저의 관심도 자기 삶의 예술가라는 명제였습니다. 이른바 삶의 기술로써의 예술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문제의식이었지요.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하고 서서히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샤먼을 아십니까? 샤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신적인 마술사가 아닙니다. 그는 부족 내에서 의사이자 사제이며 사회사업가의 역할을 동시에 맡습니다. 샤먼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샤먼의 입무入巫 과정이 젊은이들의 이니시에이션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샤먼의 입무과정은 여러 사회에서 수행되는 사춘기의 일반적인 입문식과 유사하다. 즉, 입문식은 젊은이들이 재생을 위해 요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간은 완전히 성인이 되는 것, 달리 말하면 이전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 [샤먼] 피어스 비텝스키, 창해, p59~62

 

이니시에이션과 샤먼 되기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단지 보통 젊은이들의 이니시에이션이 한 번 통과하면 O.K되는 반면, 샤먼 되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샤먼의 영력靈力이 상실되면 질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수련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이니시에이션은 일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샤먼의 이니시에이션, 즉 샤먼 되기를 지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이 이니시에이션화되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이니시에이션을 훈련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영력이 강한 샤먼이라도 자신의 내적 체험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면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뛰어난 샤먼일수록 청중들을 매료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샤먼에게서 배울 점은 이러한 예술적 자질, 즉 표현능력이 아닐까요? 샤먼은 자신의 단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표현력을 계발합니다. 그것은 그에게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영력이 떨어진 샤먼은 죽게 되고, 영력의 상실은 표현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말 죽기살기로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샤먼 되기의 핵심은 이와 같이 표현능력입니다. 우리가 샤먼 되기를 위해 일상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표현의 기본도구인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모든 글쓰기가 샤먼 되기일까요?

샤먼 되기를 위한 글쓰기는 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요소, 즉 몸에 대한 지혜와 변화의 원리, 자기결정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3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이니시에이션이 될 수 없습니다. 샤먼 되기의 실천을 위한 글쓰기 역시 3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글을 쓴다고 불규칙적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쓸데없이 밤을 새우거나 안 풀린다고 각성 드링크를 대량으로 섭취하는 건 몸의 조화와 어긋납니다. 몸이 부실하면 오래 앉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글쓰기 훈련 자체가 몸을 조화롭게 만들어야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변화의 원리는 글쓰기의 핵심입니다. 글쓰기로 기존의 견고한 자아를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여 낯선 세계와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만을 고집하는 글쓰기는 변화의 원리와 충돌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결정권입니다. 아무리 좋은 주장과 의견도 남의 것을 빌려오는데 그치면 소용 없습니다.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진리의 말씀도 스스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샤먼 되기의 방법으로 제시한 글쓰기로, 이니시에이션의 3가지 요소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고 대중에게 비평 받음으로써 성장하는 과정은 샤먼의 입무과정과 같습니다.

 

첫째, 평소의 생활과 관계를 끊는다. 둘째, 다른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난다. 셋째, 죽고 다시 태어난다. 넷째, 새로운 비전을 얻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되돌아 온다.

- [3단계 제의 이론] Turnet, 1969, 샤머니즘과 예술치료, 진숙 재인용

 

글을 쓰기 위해 일상을 재조직하고, 다른 세계(다양한 공부)로 긴 여행을 떠납니다. 글을 쓰고 대중에게 비평 받아 깨짐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얻습니다. 이니시에이션의 일상화, 그것은 스스로 이니시에이터가 됨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Be Initiator! 그것이 삶의 기술로써의 예술이기도 하겠지요._(끝)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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