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역사2:쾌락의활용(나남신서137)(개정판)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미셸 푸코 (나남,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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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4:스산한가을바람소리
카테고리 소설 > 중국소설
지은이 조설근 (나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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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애술과 중국 고전소설인 홍루몽을 요즘 함께 읽고 있다. 별 상관없어 보이나, 묘하게 얽히는 바가 있는 듯하여 그 점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에 설명된 고대 그리스 시대 연애의 핵심은 능동, 수동의 문제였다. 사랑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성인 남성과 소년과의 연애에 있어 그들간의 관계는 결코 대등할 수 없었다. 소년은 필연적으로 열등한 위치에서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가 키워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은 능동적인 주체였다. 소년들은 모두 장래 폴리스를 이끌어갈 시민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연애 관계는 그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니 이는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소년이 성인 남성과 사랑을 하는 것은 일종의 유능함의 표상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연애는 하되, 장래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완전히 수동적이지 않은 자세를 견지하는 게 중요했다. 간단히 말해 적절히 거리를 두며 자신의 능동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 사회의 강력함이라 한다면, 개인의 주체성을 전(全)사회적으로 관심 갖고 지켜봤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소년에게 매음을 강요하거나, 핍박하는 성인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들 스스로에게 최고의 사랑은 강제로 얻는 게 아닌, 소년이 자발적으로 주는 사랑이었다. 그것이 가장 짜릿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을 능동적인 주체가 되도록 도와야, 나 또한 자유로워진다. 그리스 성인 남자가 여성이 아닌 소년을 사랑한 것은, 능동적인 주체끼리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능동적인 주체(성인 남자)와 반(半) 능동적인 주체(소년)의 관계이다. 당시 여성과 노예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존재였기에 아마도 성인 남성들은 사랑을 능동적인 주체끼리만 가능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여성과의 결혼생활이 단지 오이코스의 관리술에 한정되고 법에 테두리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볼 때, 이는 그저 계약관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의 가보옥은 오직 시집가지 않은 젊은 여자만을 사랑하고, 결혼한 할멈이나 어멈들을 혐오한다. 추측하건대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함으로써 오이코스의 테두리에 갇히게 되고, 상상력의 부재를 겪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지극히 축소된다. 그것은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가보옥은 결혼한 여자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하였던 것이 아닐까?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능력이 결여된 존재는 능동적이라기보다 수동적인 존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보옥은 예속을 싫어하고, 부귀 공명을 혐오하며 한마디로 틀에 박힌 예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性)을 뛰어넘은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으니, 이는 고대 그리스의 주체적 인간이 걸어가는 필리아의 관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숱한 시녀들과 자매들 사이에서 색(色)이 아닌 우정을 추구한 가보옥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청년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겠다_(끝)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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