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 흩날리는 꽃잎을 묻고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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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이와 대옥이가 시를 읊으며 서로 교감하는 장면은 저번 주의 베스트 신이었다.

꽃잎 묻는 나를 보고 남들은 비웃지만,
훗날 내가 죽고 나면 묻어줄 이 누구인가.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가면,
꽃잎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길 없네. <홍루몽 27회>

이 구절로 보옥과 대옥 못지않게 가슴이 미어졌고 한편으로 설반 덕분에 자지러지게 웃음 지었다. 설반의 시는 생략.. ;;
요즘은 시를 읽는 이도 드물 뿐더러, 읊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처음 홍루몽을 읽으면서도 시 나오는 부분은 건너 뛰면서 읽었다. 그런데 홍루몽의 주요 장면에는 반드시 시가 등장한다.

1권의 호료가와 태허환경에서 금릉십이차의 운명을 암시하는 시..
2권의 대옥이 읊조려 보옥을 울리는 長詩까지..

중요한 복선이나 내용 전개의 마디에 빠지지 않는 시.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일상대화 못지않게 시로 대화를 나눈다. 도대체 시가 뭐길래? <일 포스티노>에서 시가 뭐냐고 묻는 우체부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말한다. "메타포" 내 마음의 호수요~ 소리없는 아우성~ 같은 익숙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어는 논리적 정합성을 지닌 언어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무런 규칙이 없지도 않다. 요컨대 시는 비논리적이기보다, 前 논리적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前 논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적 인과에 의한 논리와 다른 인식체계를 말한다. 원시부족에게서 발견되는 신비한 정신사유를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는 결과에 대한 원인을 하나로 귀속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논리적 인과추론이라 여긴다. 그러나 원시인들은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매우 다층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보기엔 그야말로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들에겐 그것이 매우 논리적이다. 이는 불교식 인연론과도 유사하다. 불교에선 인과를 하나로 규정짓지 않는다.

애니웨이.
요컨대 시는 매우 원시부족적 사유를 내포한 언어가 아닐까? 여기서 원시부족이라 함은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지닌 신체를 의미한다. 현대로 올수록 시는 쇠퇴하고 시인은 별 볼일 없다. 그러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문화와 역사의 전승은 시인에 의해 이루어졌고 시는 행동을 유발하는 강력한 추동력을 지녔다. 보옥이와 대옥이가 시 한 수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넋이 나가는 것은 시어에는 뭔가 주술적 효과가 있음을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시에는 운율이 있기에 음악적 파동이 내재한다. 주문이나 기도문도 일종의 시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닫힌 감각을 여는데 시가 열쇠이지 않을까? 
공룡의 흔적을 화석에서 찾는다면 인간이 자연과 하나였던 시절에 썼던 언어의 화석은 바로 시가 아닐런지.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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