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돌리려고 맘 먹었던 게임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플레이가 미뤄졌습니다. 꾸준히 룰북을 정독했는데, 아무래도 해상 전투 테마는 처음이라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낯설더군요. 기본적으로 해전에 대한 상식 자체가 없다보니, 이것이 게임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도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쟁사를 살펴봐도, 사실상 해전에 대한 이야기는 상세하게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저 배를 몰고가서 대포 날리고, 가까이 접근해 상대방 함선에 올라타 백병전 하는 정도가 아는 지식의 범위였지요. 그렇기에 선박은 어떻게 기동하여 포진하고, 적을 공격하는지 상상하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저 쪽수가 많고 대포가 강하면 장땡 아닌가 싶기도 했지요.

 

Introduction

이 게임은 2010년에 발매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의 유틀란트 해전을 중심으로 대영제국과 독일 제2제국간의 해상 패권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게임 타이틀인 'Grand Fleet' 즉 '대함대'는 당시 영국 해군의 별칭이기도 했지요. 참고로 독일 해군의 별명은 'High Seas Fleet' 즉 '대양함대'라고 했습니다.

 

출판사는 L2 Design Group으로, 여기서 출시된 게임으로는 예전 아발론 힐의 'Breakout Normandy'를 재판한 디럭스 버전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게임도 2번 정도 해봤네요.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조그마한 카운터를 다루는게 무척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임성에 비해 편의성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리플레이성이 떨어졌습니다.

 

1차 대전 당시에는 거함주의라고, 거대한 함선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제해권의 척도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거함을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고 하는데요.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이러한 드레드노트 급 전함들이 수십 척 맞붙은 해상결전이 바로 이 게임의 테마입니다. 그래서 전투 페이즈가 아주 압도적입니다.

 

Components

구성품은 도화지 맵 1장에 카운터 시트, 배틀 시트, 디스플레이 차트 등이 있습니다. 내용물에 비해 박스가 직사각형으로 길쭉합니다. 더 작게 만들면 좋았겠네요. 카운터도 큼지막하게 두툼합니다. 박스 표지에는 드레드노트의 인상적인 그림과 양측의 해군 제독 초상화가 실려 있습니다. 지도는 영국과 그 주변을 둘러싼 북해 일대의 해역, 독일 북부, 발트해를 아우릅니다. 해역은 에어리어 단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해역마다 승점이 기재되어 있는데, 영국과 독일의 승점이 각각 다릅니다. (예:도버 해협- 영국1점 / 독일4점) 이 승점 해역의 비대칭성이 게임의 전략목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카운터가 꽤 많습니다. 처음 보면 분간이 잘 안됩니다. 특히 마이너 유닛(잠수함, 구축함)이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전함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지 이 게임하며 처음 알게 되었네요. 드레드노트, 전 드레드노트, 전투순양함, 경순양함 등등.. 아트웤은 전함의 실루엣을 바탕으로 그렸는데, 좀더 상세하게 표현했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듭니다.

 

맵, 카운터, 전투 시트. 디스플레이 카드

Gameplay

이 게임은 해역 통제로 승점을 얻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해역 승점은 비대칭적입니다. 연합군(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은 독일에 비해 약 1.5~2배 가량의 전력 우위를 보유하고 있지만, 획득할 수 있는 해역당 승점이 독일보다 짭니다. 연합군이 아무리 많은 해역을 통제하더라도, 독일이 2~3개 통제한 해역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연합군 함대는 분산될 수 밖에 없고, 여기서 독일 해군과의 균형이 성립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연합군은 독일의 주력 함대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닙니다. 대함대를 투입해 일거에 적을 격멸시키고자 하는 전술이지요. 독일은 되도록이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흩어진 연합군을 각개격파하는 전술로 대응합니다. 그래서 간혹 독일 입장에서 운이 없으면 대함대 간의 결전을 맞닥뜨리게 되곤 합니다. 바로 '드레드노트 대격돌'이지요.

 

양측이 같은 해역에 배치되면 전투 페이즈때 전투가 발생합니다. 전투 페이즈는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요. 만약 해상에 기뢰함이 있다면 mine warfare segment를 수행합니다. 양측에 기뢰함은 기껏해야 1-2개 있는데, 일단 걸리면 그 위력이 무지막지합니다. 기뢰 폭발 여부를 일일히 체크하는데, 운이 없으면 수많은 함정이 전투하기도 전에 가라앉거나 퇴각해야 합니다. 물론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정도 있습니다. 소해정 2개가 있으면 1개의 기뢰함 효과가 취소됩니다.

 

기뢰 체크는 어쩌다 일어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전투 페이즈의 첫 단계는 Search입니다.

 

-Search Resolution

함대의 편성은 개별적인 디스플레이 카드에 가림막을 이용한 비공개로 배치됩니다. 게임에는 따로 가림막이 없어, 마침 같은 1차대전 배경의 'Fields of Despair' 가림막을 사용했는데 무척 쏠쏠하더군요. 

 

디스플레이 카드에는 각 전투그룹(Battle Group ; BG)이 칸으로 구획되어 있고, BG는 전투함대와 Screen함대(정찰, 선발대 정도)로 분리됩니다. 전투함대는 실제 본 전투를 치르는 함대이고, Screen함대는 전투도 치르지만 각종 기능 또한 수행합니다. 아래에서 설명하지요.

 

아무리 많은 전투함을 끌고 기세등등하게 바다로 출격해도, 망망대해에서 함대간의 조우는 쉽지 않습니다. Search Value(SV)가 낮으면 전투를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아예 발견조차 못하는 것이지요. SV가 높으면 적을 먼저 발견해서 가림막에 베일로 숨겨진 적의 전력을 알 수 있습니다. 적의 세부전력은 알 수 없어도 몇 개의 함대 카운터가 있는지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지요. 이때 상대방 함대의 규모를 파악해, 싸움을 걸지 그냥 후퇴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적 함대가 만만하면 한판 붙어보는 거고, 압도적이면 그냥 내빼면 그만이죠. 이 SV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Screen함대의 주요 임무입니다.

 

양측 Screen함대(잠수함 3점, 그외 1점) + AS(비행선) 점수를 비교해 우위에 있는 쪽이 Search의 승리자가 됩니다.

가림막을 설치해 함대 카운터를 배치한다 (가림막은 Fields of Despair에서 가져옴)

 

-Screen Resolution

Search를 하고 전투하기로 맘먹으면, 바로 전투함끼리 붙는 게 아니고 Screen 함대끼리 먼저 교전을 주고 받습니다. 메인 타이틀 전에 오프닝 매치라고 할까요? 여기서 승리하는 측은 전투함끼리 싸울지, 그냥 도망갈지 다시한번 선택의 기회를 갖습니다.

 

-Battle Line Resolution

이제 드디어 본 게임입니다! 드레드노트 급 전함들이 대거 1:1로 맞짱을 뜹니다. 한쪽이 숫자가 더 많으면, 많은만큼 한 줄을 더 세웁니다. 영국 12개, 독일 8개면 8개끼리는 1:1로 배치하고 영국의 남는 4개 함선은 2:1로 독일의 1~4번 함을 공격합니다. 이렇게 뒷줄에 배치된 선박은 공격받지 않습니다.

 

당연히 전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지만, 전투 주사위 판정 덕분에 꽤나 스릴이 넘칩니다. 해전만의 고유한 향취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일단 전투력만큼 주사위를 굴려 6이 나오면 hit인데, 이때 다시한번 주사위를 굴려 적중도를 판정합니다. 주사위 굴림이 적 함선의 방어력을 초과하면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5를 굴리면 disable이라고 기능고장을 일으켜 적 함선은 데미지를 입지는 않지만 급거 본국 항구로 퇴각하게 됩니다. 

 

어떨때는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것보다, disable 판정이 나오길 기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해역을 반드시 통제하기 위해서, 적의 숫자를 하나라도 빠르게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전투는 한쪽이 전멸하거나 모두 퇴각할때까지 진행합니다. 

 

전투를 마치면 각 해역의 통제권을 결정하고 승점을 부여합니다. 승점은 줄다리기 형식으로 밀고 당기며, 최종적으로 6점 이상을 획득하면 승리합니다. (어드밴스룰에는 29점을 먼저 얻으면 서든 데스)  승점 부여 후, 독일군은 추가로 승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 상선을 향한 잠수함 공격 페이즈입니다. 영국의 주요 해역에 배치된 유보트 함대가 영국의 구축함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으면, 해역당 최대 2점을 획득합니다. 만약 무제한 잠수함전 어드밴스룰을 채택하면 4점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잠수함 공격 페이즈를 마치면 모든 해역에 있던 머물러 있던 함대는 항구로 귀환합니다. 이때 퇴각로가 차단되면 전부 수장됩니다. 무사히 돌아온 함대는 수리 및 재정비를 마치고 다음 턴을 위한 함대 재편성을 가집니다.

 

드레드노트 함대의 격돌

Length of Play

설명하는 시간 제외하고 3-4시간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아직 풀 게임을 돌려보지 못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Well written Rules

해전 테마가 처음이라 기본 개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룰북에는 용어 정의가 상세하게 나와있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더군요. 룰 자체는 양면 4페이지로 길지 않습니다. 전투 페이즈에 대한 예시도 상세한 편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오타와 빼먹은 문장이 있는데, 사소해 보이는 이 누락이 게임 이해를 정말 미궁에 빠뜨립니다. 긱과 컨심월드를 뒤져서 찾을 정도이니, 잘 쓴 룰은 분명 아닙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게임 맵에 독일군이 절대 점령할 수 없는 해역에 승점 표기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 대한 해명아닌 해명이 룰 부분도 아닌, 룰 끄트머리 디자이너 노트에 적혀 있습니다. 이거 보고 분노가 용솟음치더군요..

 

Strategic-Tactical

게임은 다양한 전략-전술 옵션이 있습니다. 전투 페이즈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습니다. 전투함의 격돌은 이 게임의 주요 핵심이지만, 잘못된 선택은 수많은 함대를 엉뚱한 장소에 머물게 해, 본국 항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멸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SV를 활용한 전술적 후퇴 기동으로 적의 발을 묶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SV 대결에서 지면, 전투 자체가 불가능함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바다는 생각보다 무척 넓습니다.

 

이 게임의 주요 시스템은 유닛의 비공개입니다. 적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든 정보가 통제된 상태로 진행되지요. 유닛 카운터가 많이 놓여 있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블러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카운터 1개가 알고보니 수많은 함대를 품은 Battle Group일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승점 지역을 타깃으로 할 것인가, 적의 주요 전력을 타격하는데 주안점을 둘 것인가, 생각하면 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질테고 그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을 가져올 겁니다.

 

적의 카운터가 Battle Group(BG) 혹은 개별 함선일지는 알 수 없다

Accessibility

생소한 해전 테마, 룰의 불친절함, 비슷비슷해 보이는 카운터 그림, 카운터를 일일히 디스플레이에 정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덜 번거로웠습니다. 처음엔 엄청나게 번거로울 거로 짐작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손톱만한 카운터를 정말 싫어합니다. 손에 잘 집히지도 않고, 깨알같은 유닛을 보는게 힘들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의 카운터는 큼직하니 좋습니다. 비슷해서 문제지..

 

Historic Flavour

사실 1차대전 함대전은 잘 모릅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좀 찾아본게 전부지요. 해전에 대한 상식도 없어서, 이 게임이 실제로 그걸 잘 구현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전을 단순히 수적 우위에 따른 주사위 굴림으로 처리하지 않고, Search와 Screen 같은 룰로 전술적 옵션을 갖췄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합니다. 또한 승점 해역의 비대칭성으로 당시 영국과 독일간의 제해권 투쟁을 잘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드레드노트 급 전함들의 대격돌은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십개의 전함 카운터들이 일렬로 마주보고 있는걸 보면 와우.. 전율이.. 그 느낌이 참 좋습니다.

 

Innovation

앞서 언급했듯, 전투 페이즈가 인상적입니다. 함대를 Battle Line과 Screen Line으로 구분해서 각각 특징을 부여한 것은 훌륭한 시도입니다. 느린 공룡이 빠른 포유류를 상대하지 못한다라는 개념이 마음에 듭니다.

 

What I like

-전투 세그먼트의 혁신성

-함대 전투 주사위 굴림 방식

-블러핑 요소의 극대화

-무제한 잠수함전 옵션

 

What I don't like

-잠수함과 구축함 카운터는 분간이 잘 안됨

-디스플레이 카드 배치의 번거로움

-불친절한 룰

-전투시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

 

Overall

비교 대상으로 고려했던 'Holdfast Atlantic'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옵션을 가졌기에 선택했는데, 괜찮은 결정이었습니다. 전략전술이 고착화되지 않고, 양 측면에서 모두 자유도가 높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리플레이성도 괜찮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세팅과 정리가 조금 번거롭긴 한데, 신경쓰일 정도는 아닙니다. 전장의 안개 요소는 게임의 핵심이며 여기서 벌어지는 블러핑이 재미있습니다. 전략적 측면(기동)과 전술적 측면(전투)을 별개로 진행하는 느낌이 신선합니다. 종합 점수 별5개 중 4개.

Posted by 지장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