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혁명에서 주로 다루는 질병이 암이다. 암을 파자(破字)로 풀이하면 이렇다. 입 구(口) 3개가 산(山)더미처럼 쌓여, 끝내 병들어 드러누우니(疒) 이렇게 쌓이고 뭉친 것이 바로 암(癌) 덩어리라는 게다. 입이 3개라 함은 무슨 말인가? 동양의학혁명의 저자 금오(金烏) 김홍경 선생은 세 개의 입을 불가에서 언급한 삼독(三毒)으로 해석했다. 탐(貪) 진(嗔) 치(癡), 즉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다. 끝없는 물욕과 그릇된 비교심리로 인한 분노,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어우러져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마침내 병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상태를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혹은 신경성 질환이라 부른다. 결국 암은 마음의 병, 스트레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X-Ray 찍고 무슨 검사를 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데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 정밀의료기기가 당신 이상 없소 멀쩡하다는데 어쩌리. 환자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 이들을 위한 멋들어진 병명이 신경성 질환이다. 거창해 보이나 한마디로 원인 불명, 알 수 없다는 게다. 고작 한다는 말이 마음을 편히 먹고 안정을 취하라.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의학 전문가가 아니다. 의사도 아니고 의대생도 아닌 문외한이 이렇게 질병에 대해 운운하는 것이 적이 두렵기까지 하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의학 지식이 널리 유통되어, 어려운 의학용어를 일반인도 줄줄이 꿴다고 한다. 진단을 내리는 의사와 한 판 토론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얼핏 보면 모두가 의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허나 과연 그런가? 의학정보의 범람은 오히려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 헛갈리게만 한다. 알고 있던 건강상식은 새로운 것들로 빠르게 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지식은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뭐가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것도 트렌드에 따라 사시사철 바뀐다. 근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몸은 원래 외부의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 왔다. 이것이 면역혁명에서 말하는 면역체계이며, 면역력은 누구나 키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말하는 와중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vs SK 와이번즈의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이 벌어졌다. 타이거즈 팬인 나는 문자중계로 슬쩍슬쩍 경기상황을 훔쳐보며 오만 가지 감정이 요동침을 느꼈다. 승리를 바라는 욕심은 광적이었으며, 점수를 빼앗길 때 격정의 불길은 활활 타올랐고, 9회 말 끝내기 역전 홈런이 터진 순간 자리를 박차고 환희의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어리석은 화상 같으니! 나도 아직 멀었다. 이런 마음의 집착이 뭉치고 쌓여 암이 된다고 앞에서 뻔뻔스레 말했건만, 승리를 확인한 지금 아주 편안한(?)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남미 어느 나라에서는 축구 경기 중 많은 팬들이 졸도한다는데, 남 얘기 같지 않다. 사실 한국시리즈가 펼쳐지는 2주일 남짓, 나는 일종의 스트레스성 신경 질환을 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레스 질환이 별다른 게 아니다. 그깟 공놀이 승패에 연연해, 다른 일에 손도 못 대는 것만큼 심각한 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기면 이기는 대로 기뻐하고, 지면 지는 대로 아쉬워하면 그만인데, 거기에 목숨 걸듯이 죽자 살자 달려드니 마음의 병이 깊어질 따름이다. 이러면서 내 면역력은 이미 몇 단계나 떨어졌을꼬? 쩝!

 

암은 죽지 않는 세포다. 세포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데, 희한하게 암세포는 무한 증식하는 불사의 존재다. 게다가 주변의 멀쩡한 다른 세포를 잡아먹어 몸의 기능을 점차 파괴해나간다. 서양의 직선적 세계관과 달리, 동양의 순환론적 인식은 만물의 생장소멸을 기본으로 한다. 즉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을 맞는 식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인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이런 법칙을 비웃는 듯 거침없이 증식한다. 결국 숙주인 인간이 죽음으로써 암세포 또한 비로소 최후를 맞는다. 몸+드라망 세미나의 도담 샘은 하루를 살아가도 잠들 때에는 다 비워내고 죽은 듯이 자야 한다고 말했다. 밤늦게 야식을 삼가라 함은 뱃속에 음식물을 깨끗이 비워 위장을 쥐 죽은 듯 편안하게 하라는 뜻이며, 마음을 비우라 함은 하루 동안 있었던 희로애락을 말끔히 털어내란 말이다. 그래서 금오 김홍경 선생은 내 꿈도, 네 꿈도, 아무 꿈도 꾸지 않고 편안히 잠들라고 일갈했나 보다. 잘 자야 다음날 벌떡 일어난다. 불면증에 시달리면 자는 것도 깨는 것도 아닌 가사(假死) 상태인 채, 퀭한 눈으로 비척비척 걸어 다닌다. 살아있는 시체가 따로 없다. 죽어야 산다. 잘 죽어야 잘 살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역시 이와 비슷한 통찰을 선사한다. 특히 노년에 관하여 에세이에서는 노인이 되어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방법으로 잘 죽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한 술 더 떠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으니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음을 느낄 수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어느 누구도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목에 구멍을 뚫어 영양을 공급해 목숨을 이어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서서히 잠들듯이 편안한 안식을 원하리라. 인간의 기대수명은 120세로 알려져 있으나, 스트레스 등 주변 환경으로 인해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잠들기 전 식탐하고픈 욕망을 버리고, 자리에 누워서까지 그날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일일이 곱씹지 않으며, 건강염려증에 걸려 약에 의존하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매일 잘 죽고 다음날 새롭게 일어난다면, 늙어 약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꼴을 면하고 웰다잉(Well-Dying)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욕망들은 암세포처럼 통제하기 참 어렵다. 마음을 고쳐 먹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스멀스멀 꿈틀대며 어느새 온몸을 휘감는다.

 

고병권 샘은 고추장, 책을 말하다에서 기억과 망각을 독특하게 해석한다. 우리는 기억력이라 표현하나 망각력이라고는 안 한다, 또한 망각증이라고 말하지 기억증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역(力)은 긍정적인 힘, 증(症)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힌다. 즉 기억력은 장려한 반면, 건망증을 병적으로 취급했다는 말이다. 시시콜콜한 마음 속 원한과 질투의 찌꺼기를 꿈속까지 끌고 들어가 떠올린다고 해서, 아무도 기억력 좋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반대로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웬만한 일에도 끄떡없다. 망각할 수 있는 힘이 머릿속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근심걱정을 해치운다. 이런 사람을 요즘엔 대인배, 옛말로 군자라 한다. 잊지 마라,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음을. 실제로 현대의학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자연치유로 회복하는 사례가 있음을 면역혁명은 환기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평온한 마음을 첫째로 강조한다. 암에 대한 공포를 명상과 산책 등 자연치유적 과정으로 누그러뜨리며 비로소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공포나 걱정 같은 부정적 정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대로 되는 묘한 특징이 있다. 암을 두려워하면 신체반응이 경직되어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암 발병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억과 망각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내 마음인데? 마음은 몸과 나란히 작동한다고 했지 않은가.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멍 때리고 있으면 있을수록 맛이 간다. 자신만의 사지말단 몸뚱이를 움직여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일이다. 그래야 하루를 온전히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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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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