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 내내 새로운 전염병의 공포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셈인데, 살아남은 이들은 과연 위대한 생존자들이렷다. 나도 그 생존대열에 끼어보고 싶은 마음에 몸드라망 세미나 ‘면역혁명’에 참여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세미나의 영향으로 약을 안 먹고 버티는 바람에, 괴질의 희생자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잠시 떨었음을 고백한다. 그토록 심각했다. 병이? 아니 두려움이. 실제로 주변에서 속속 감염자(!)가 출현했다. 신문지상에서만 보던 범죄자를 만난 기분이랄까? 좀 과장하면 그런 요상하고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전염병 앞에선 형제고 친구고 없는 거다. 왜냐하면 넌 이미 그들로 변했으니까. 눈치를 슬슬 보며 거리를 두려 하는데 이게 웬일. 다 나았단다. 물어보니 며칠 앓다가 푹 쉬니 괜찮아졌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얼굴이 푸르딩딩해지고 눈은 퀭해지며 과도한 식욕이 생긴다. 어떻게 된 거지? 아냐 이건 아니야. 문득 오래된 신문 헤드라인이 떠오른다. 1‘살인 바이러스의 저주, 그것은 한 시간 내에 녹초로 만든다’, ‘살을 파먹는 병균이 여섯 번째 희생자를 내다’, ‘살인 병균을 제패할 기동대’ 등. 순서대로 영국의 선紙, 데일리 텔레그래프, 익스프레스가 보도한 기사제목이다. 그대로 가져다 호러 영화 포스터 문구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수준이다. 살인 바이러스의 저주는 영화 ‘새벽의 저주’를 떠올리며, 살 파먹는 몬스터의 공격에 희생자가 발생하고 이에 맞선 기동타격대의 출격은 ‘에일리언 2’를 연상시킨다. 다름아닌 1994년 살 파먹는 병균으로 소동을 일으켰던 ‘괴사 근막염’ 이야기다.
괴사 근막염은 새롭게 출현한 질병이 아니었다. 의학 교과서에 버젓이 수록돼있는 이 질병은 ‘살 파먹는 병균’이라는 브랜드로 거듭났고 미디어는 물 만난 고기마냥 보도해댔다. 알다시피 이런 보도행태의 목적은 오직 ‘선정성’, 즉 센세이션 유발이었을 뿐이다. 워터게이트의 주역인 리처드 닉슨은 ‘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공포에 반응한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미디어의 ‘살 파먹는 세균’ 이슈는 발행부수를 늘리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으리라. 그런 과정의 한복판에 있었던 어느 기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2“내가 마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피터 오툴이 된 기분이었어요. 베두인족이 갑자기 흥분해서 “안 돼”, “오, 하느님”, “하지 마” 등을 외치면서 퇴각한 터키인들을 학살하고 나서,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생각하다가 창을 집어 들고 얼결에 전투태세를 갖추는 장면처럼 말이에요. 우리가 노력하면 할수록 더 빨리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제 말이 맞았어요. 한 사흘쯤 지난 뒤에 특집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괴사 근막염에 대해 다들 너무 하는 것 아냐? 이것보다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될 질병들이 많지 않아?” 결국 괴사 근막염 소동은 전문가들이 나서 ‘박테리아에는 이빨이 없다’는 해명을 하는 촌극을 빚었다. 이 해프닝은 공포에 취약한 인간의 면모를 드러냄과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그 공포를 이용하는 세력 또한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질병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차원에서 하는 보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저 현란한 수사의 향연은 좀 심하지 않은가? 내가 겁이 많아서인지도 모를 일이나, 신종 플루의 공포에 며칠간 시름했음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다행히 지금 별탈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을라치면 2% 불안함은 여전하지만.
건강과 관련한 미디어의 공포 유발은 뿌리깊다. 31980년대 미국 언론의 암(癌) 보도를 살펴보면 조사 대상 기사 1,466편의 헤드라인 중 약 절반이 ‘공포를 유발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발암 물질을 회피할 만한 방법이 전무하다”거나 “암과 연결된 수돗물”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 다트머스 의과대학의 스티브 올로신 4·리사 슈워츠 박사는 미국 유명 잡지 10군데에 실린 70여 개 제약 회사 광고를 분석했다. 연구는 광고 절반이 소비자에게 그들의 일상적 경험이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끔 부추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깥에서 뛰어 노는 우리 아이, 혹시 ADHD(주의력결핍장애)가 아닐까? 예전 같으면 ‘사내답다’고 했을 텐데 졸지에 행동장애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할 경우 어떤 부모가 병원 상담과 치료약 구매를 주저할까. 신종 플루 보도 역시 비슷한 공포를 조성한다. 우선 그 이름의 출처부터 의심스럽다. 언제는 신종 아니었나? 따져보면 해마다 발생하는 독감은 모두 ‘신종’이다. 유발 바이러스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업데이트된 ‘신종’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이다. 올해 발생한 독감의 정확한 병명은 H1N1(인플루엔자 A)이다. 보다 정확하게 한다면 2009년 H1N1 독감 정도 되겠다.
질병보도에 있어 용어 선택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도 하다. H1N1는 최초 발견되었을 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명명됐다. 경제적 피해를 우려한 미 농무부와 양돈업계의 반발과 줄기찬 로비는 돼지 인플루엔자를 지금의 H1N1(인플루엔자 A)로 바뀌게 하는데,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와 언론도 용어 선택의 혼란에 빠진다. 한동안 돼지 인플루엔자와 멕시코 플루를 섞어 쓰며 마침내 지금의 신종 플루에 이른다. 아니 H1N1이라는 멀쩡한 용어 놔두고 뜬금없이 신종 플루는 뭥미? 신종이라는 단어에 담긴 뉘앙스는 사람들에게 무슨 새로운 괴물이 출현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앞서 말한 ‘살 파먹는 세균’과 같은 맥락이다. 물건도 신상(품)이 주목을 끌듯이 질병도 마찬가지다. 새로움=미지의 영역이다. 알 수 없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귀신과 죽음 그리고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의 지각능력을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무력감과 맞닿는다. 어찌해볼 수 없는 무력감, 그것이 진정한 공포이며 질병의 진짜 원인이다. 백신 비축 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이제 우리는 이 괴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구나, 죽었구나 라는 절망감이 면역체계를 철저히 파괴해 독감에 걸리게 하는 이 아이러니. 두려움이 없던 병도 만든다. 도담 선생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을 써먹어보자. ‘병의 근원은 칠정(七情)-희로애락애오욕’이다. 이 글에서만이라도 되도록 신종 플루 대신 H1N1을 쓰자.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지 않는가. 신종 플루 이젠 안녕. 웰컴 H1N1.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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