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세트(전3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박지원 (돌베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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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덕보德保 홍대용洪大容이 언젠가, 그 규모는 크고, 기술은 세밀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책문은 중국 동쪽의 가장 끝인데도 오히려 이와 같다. 길을 나아가며 유람하려니 홀연히 기가 꺾여, 문득 여기서 바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깊이 반성하며,

이게 질투하는 마음이로다. 내 평소 심성이 담박하여 무얼 부러워하거나 시샘하고 질투하는 것을 마음에서 끊어 버렸거늘, 지금 남의 국경에 한번 발을 들여놓고 본 것이라곤 만분의 일에 지나지 않은 터에 이제 다시 망령된 생각이 이렇게 솟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나의 견문이 좁은 탓이리라. 석가여래가 밝은 눈으로 이 시방세계를 두루 보신다면 평등하지 않은 것이 없을지니, 만사가 평등하다면 본래 투기나 부러움도 없을 것이로다.’ (도강록)

연암 선생 또한 중화中華의 낯설고 휘황찬란한 풍광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누구나 이럴 수 있다. 연암이 평범한 이와 다른 점은 자신의 부끄러운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마음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추면 감출수록 왜곡되어 튀어나올 뿐이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닌 척 한다고 그게 되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꾹 참는다고 표정이 밝을 수 있는가. 그럴수록 하지 않아도 될 엉뚱한 실수만 남발하게 된다. 대개 우리들은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 또한 감정 자체를 억눌러야 할 것으로 보곤 한다. 연암이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다라는 말은 지극히 옳다. 그것이 자신이 현재 서있는 지점을 확인하는 방법이요, 어디 서있는지 알아채야 어디로 갈 지 방향을 정할 수 있는 노릇이다.

연암은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마음의 흐름을 살펴 나아갈 방향을 성찰한다. 후일 형부刑部에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고, 좌충우돌·신출귀몰하는 모습은 국경 초입에서 당황하던 그와 대조된다. 이는 마음 성찰의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으로 느껴진다. 눈물 흘리는 일이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눈물 흘릴 자리에서 못 우는 이가 졸장부로다. 눈물 흘릴 자리에서 시원하게 펑펑 울 수 있는 이가 사나이다. 배운다면 연암의 이런 담백함, 호방함, 자기성찰능력을 배우고 싶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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