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하)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박지원 (그린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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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할 말만 하라

말이 얕으면 그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테고, 말이 깊으면 금기에 저촉되기 쉬우니, 이것이 네 번째 불가한 일이다. (황교문답)

- 말만 줄여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말이란 놈은 혓바닥을 간질여 자꾸 튀어나오려고 하니
그것이 길할지 흉할지 도통 가늠할 수 없다. 뱉고 나서 바로 후회하는 경우도 있고 한참 지난 후에
문제되는 일도 있으니 어찌 그것을 가볍게 다룰 수 있을까.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오히려 묵언(默言)이 참 소통으로 가는 지름길일수도.

 

얼굴 거울, 마음 거울

법화(法華)니 능엄(楞嚴)이니 하는 모든 불경의 게(偈)들은 사람들을 위협하여 그 책에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곧 화를 입는다고 반복해서 말하지요. 중생들이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혀 착한 길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그 거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울은 글자가 없는 경전이요, 경전은 또 구리로 만들지 않은 거울인 셈이지요. 내가 비록 열흘 동안 담백한 음식을 먹고, 열흘 내내 목욕을 했다고 해도, 혹시 간 한 귀퉁이나 폐 한 구멍에 터럭만 한 흠이라도 있다면 어찌 세 가지 빛깔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황교문답)

- 거울에 비친 내 눈빛과 표정 낯빛이 그 어떤 경전보다 많은 지혜를 일러준다. 천천히 들여다보라.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인지. 그저 주름과 잡티만 발견하고 탄식한다면 이는 하수(下手)렷다.
      얼굴 거죽에 드러난 빛깔로 자신이 끄달리는 욕망을 발견하고, 마음 거울까지 환히 살필 수 있다면
      이는 진정 고수(高手)임에 틀림없다.

 

지성의 명암

진시황처럼 ‘분서갱유’를 하지 않고도 이들 선비는 글자나 교정하는 일에 골몰하느라 그 정신이 취진국(聚珍局_사고전서를 만드는 곳)에서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아! 천하를 어리석게 만드는 방법이 실로 교묘하고도 싶다고 하겠다. 이른바 ‘책을 사서 모아 들이는 재앙이 불살라 버리는 재앙에 비해서 심하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태학유관록 삼세편)

- 학문하는 자들은 지배층에 맞서다가도 한없이 약한 존재이다. 어떻게 하면 권력의 단맛을 볼까
      항상 그 언저리를 서성거리기도 한다. 지금 배우는 공부가 어떻게 쓰일지 항상 자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냥꾼의 충실한 사냥개로 전락할 수 있다.
      사냥개가 어떻게 되었는가? 토사구팽!

 

내가 쓰는 요술은 무엇인가

눈이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고 진위를 살피지 못한다면, 눈이 없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항상 요술을 부리는 이들에게 속는 것은 눈이 망령되기 때문인데, 이 경우 밝게 본다는 것이 도리어 탈이 된다고 할 수 있지요. … 그러나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요술이 있으니, 그것은 크게 간사한 자가 충성스러운 체하는 것과 향원(鄕愿_시골에서 군자인 척 행세하는 위선자)이면서 덕행이 있는 체하는 것일 겁니다. 호광(胡廣_동한 말엽 여섯 임금을 섬긴 신하)이 여러 차례 공경을 지낸 것은 중용으로 요술을 부린 것이며, 풍도(馮道)가 5대에 걸쳐 정승 자리에 오른 것은 명철함으로 요술을 부린 것이니, 이렇게 보자면 웃음 속에 칼을 품는 것이 입 속으로 칼을 삼키는 것보다 더 혹독한 일이 아닐까요. (태학유관록 환희기)

- 웃음 속에 칼을 품다. 이 표현이 참으로 신통하기 그지없다. 이보다 더 요술 같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이런 자들이 득실거린다면 천하는 혼란스러울 것이요, 이로운 술법을 펼치는 이가 많다면 세상은
      평안하고 사람간에 웃음이 넘치리라. 현실은 어떤가. 또한 나는 어떤 술수를 쓰고 있나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2010/02/04 - [연구공간 수유+너머] - 열하일기 中 '고전에서 배우는 공부법'
2010/02/03 - [연구공간 수유+너머] - 열하일기 中 '울보야말로 천하의 사나이로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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