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박지원 (돌베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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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물을 적기에 모으고 빼곤 하여 가문 해를 맞아 수차로써 관개하고 수문으로 조운을 조절한다면 물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터이다. 그런데 지금 너에게 물이 있어도 쓸 줄을 모르니 이는 물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불은 사시에 따라 화후(火候)가 다르고 강약의 정도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니, 질그릇, 쇠그릇, 쟁기, 괭이를 만드는 데에 각기 적절하게 맞추게 되면 불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터이다. 그런데 지금 너에게 불이 있어도 쓸 줄을 모르니 이는 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홍범우익서)

- 사람은 소우주라고 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 높이고자 함이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와 같다 함은 우주의 원리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내 안에는 물과 불, 흙, 바람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태어난 그 자체로 상서로운 우리네 존재. 불행히도 자라면서 격려와 인정보다 비판과 의심하도록 습관 들여집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물과 불이 있음에도 믿지 않으니 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리 되는 고을이 360군데이나 고산준령이 10에 7, 9을 차지하니 명색만 100리라 하지 실제평야는 30리를 넘지 못한다. 때문에 백성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 우뚝하니 높고 큰 산들을 사방으로 측량해보면 몇 배나 더 많은 면적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금, 은, 동, 철이 왕왕 나오니, 만일 채광의 방법과 제련의 기술만 있다면 이 나라의 부가 천하에서 으뜸갈 수도 있을 것이다. (홍범우익서)

- 평야 사람들은 논농사를 짓고 산 사람들은 밭농사를 짓습니다. 무엇이 낫다 할 수 없지요. 저마다 생긴 것이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니 하나의 기준에 줄 세움은 불가합니다. 풀 한 포기 안 날 것 같은 험준한 산속에서도 채광과 제련의 기술만 있다면 귀한 광물을 캘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우두커니 평야 쪽을 바라보며 논농사 짓는 이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지요.

 

! 오토(五土)는 거름 주는 법이 다르고 오곡은 파종하는 법이 다르거늘 영농의 지혜를 어리석은 백성들에게만 맡겨서 토지를 이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굶주리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부유하게 살아야 착하게 행동한다’ 하였으니, 먼저 일상생활의 일부터 잘 밝히고 나면 부유하고 착하게 되니 구주의 이치가 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읽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홍범우익서)

- 당신 마음 밭의 흙은 어떠합니까. 찰진 진흙입니까, 부드러운 모래입니까. 흙은 오행(五行)의 중심입니다. 씨앗을 아무렇게 뿌리면 잡초만 무성해질 뿐입니다. 토질(土質)을 살피고 또 살펴 꼭 맞는 씨앗을 심기 바랍니다. 그럼 가을에 풍년을 거두고 겨울을 풍족히 지낼 수 있습니다.

 

최씨의 자제 진겸이 하계 가에 집을 짓고 뜻 맞는 선비 몇 명과 이 집에서 독서하면서, 집 이름을 독락당이라 하였으니 이는 옛사람의 도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뜻을 장하게 여겨 이와 같이 기를 짓고, 그 일에 더욱 전념케 하여 그의 독락을 중락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는 내가 그 즐거움을 천하 사람에게 넓히려는 때문이다. (독락재기)

- 수확의 기쁨 중 제일은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다못해 월드컵 경기도 집에서 혼자 보면 흥취가 떨어집니다. 우도(友道)를 걸은 연암 선생의 ‘독락(獨樂)을 중락(衆樂)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정녕 선생다운 말입니다. 자신을 소우주로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독락할 수 있습니다. 독락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 바깥 세상으로 나들이 하고 싶어집니다. 독락에서 중락으로! 이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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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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