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항심인 자 천하무적이라 했건만 한 달 만에 그 기세는 지리멸렬해졌다. 대중통신의 깃발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려 한다. 오늘 비로소 글을 써내려 감은 글쓰기의 고통은 글쓰기로만 치유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은 글쓰기를 곧잘 군사와 병법에 비유하였다. 유생임에도 호방하고 드센 기질이 가히 무인의 풍모를 지닌 선생답다. 이에 호모 에로스를 자처하는 나는 글쓰기를 사랑에 비유해보련다. 글이란 녀석은 잘 풀릴 때는 사랑스런 애인처럼 나긋하다가도, 꽉 막힐 때는 사람을 미치게 하니 이 또한 애인과 같다. 사랑을 지속함은 서로 응답하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그 혹은 그녀의 몸짓에 더 이상 액션을 취할 마음이 없으면 관계는 끝이다. 성냄 또한 응답의 한 가지이다. 그래서 싸우는 커플보다 무관심한 부부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작자는 미칠 노릇이다. 이리저리 궁리하지만 무심한 백지는 응답이 없다. 급한 마음에 백지를 윽박지를수록 글은 더욱 꼬인다. 사랑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하수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망가뜨린다

   나는 요즈음 잡문일지언정 글을 쓰지 않으며
, 편해지기보다 번뇌가 날로 깊어갔다. 길을 걷고 술을 마시고 강의를 듣고 운동을 해도, 마음 한 켠엔 그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대, 결국 이렇게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그간 비겁하게 외면했음을 사죄하는 바이다. 한마디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글쓰기에도 통한다. 잠시라도 중단하면 다시 감()을 잡기가 힘들기 짝이 없다. 토라진 애인을 달래는 것만큼 말이다.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윽박지르면 쓰겠는가? 결국 이 글은 그간 내팽개친 글쓰기라는 연인에게 부치는 은밀한 연서(戀書)인 게다. 서서히 단어가 문장을 이루고 단락을 맺어가며 잃었던 애정도 튼실해진다. 내 마음 또한 한결 편안하고 위안받으니 글이 정녕 연인이 맞구나. ! 조강지처의 소중함이 이와 같음을 왜 몰랐단 말인가? 본분을 저버리고 곁길로 새어 분탕질을 일삼으니 시간이 흘러 악처(惡妻)마저 그리운 법. 이에 사랑이 안 풀린다고 공연한 짓을 벌이는 나 같은 이들에게 경계로 삼는다. 항심은 글쓰기와 애정행각 등 만사에 통하니 가히 도라 할만하다. 글이 여기까지 이르니, 숨마저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여 울울한 마음이 다소 뚫리는 듯 하다. 이제 다시 사랑할 수 있으렷다.

대중지성은 어느덧 1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동학들은 저마다 배운 것을 글로 풀어내고자 분주하다. 이때 에세이 발표를 1주 앞두고 열린 고미숙 샘의 특강은 행여나 마음만 바쁘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한다. 무식한 자는 질문의 크기가 태산처럼 크다. 무슨 말을 했는지 본인조차 가늠할 수 없다. 반면 명민한 이는 학문이 높아짐에 비례해 의문은 늘어나나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철저히 ‘One shot, One kill’이다. 에세이 주제를 선정함이 어려운 까닭은 한 큐에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다 보니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중언부언 헤매다 만다. 단 한 가지 질문만 제대로 뽑아내도 앞으로 남은 3학기 동안 징하게 써먹을 수 있다. 한 번 뱉고 버린다면 무게가 떨어지는 질문이라 할만하다. 요컨대 처음 단추를 잘 꿰야 하는데, 그걸 너무 덜덜 떨면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태산을 오르는 자는 눈 앞의 언덕부터 어떻게 넘을지 궁리한다. 내가 당면한 언덕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공부의 일부일 뿐, 먹고 자고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 동안 집안의 비호아래 편안한 공부만 해왔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극() 해야 할 때! 시절을 탔는지 춘삼월이 되어, 연구실 주변에 거처와 일자리를 동시에 마련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근황을 물었을 때 스스럼없이 공부하고 글 쓰며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전만해도 내 신분(?)을 정의하기가 참 애매했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고,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백수도 아니다. 한마디로 사회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잉여인간 비슷한 존재인 게다. 신분증명의 곤란함 탓에 한동안 외부 모임에 나가기를 꺼려했다. 이제라도 거침없이 내 존재를 내보임은 그래도 조금은 힘이 붙었나 보다. 연암 선생은 벗들에게 당호(堂號)에 관한 글을 지어주곤 했다. 당호는 요새로 치면 아이디(ID) 같은 별명이며, 연암은 이 아이디 소유자에게 그 뜻을 기리는 글을 써주었던 셈이다. 내 평소 성격이 편협하여 남과 함께 하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이제 홀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교만함을 내려놓고 타인과 더불어 함을 제일원칙으로 삼을 터이니, 이에 남산골 연구실 근방에 자리잡은 거처를 중락재(衆樂齋)라 이름 짓는다. 이는 연암집 中 독락재기에 언급된 연암의 뜻을 존경함이다. 대중통신은 대중 속에서 대중이 되어 어울려야 쓸 수 있다. 이제 대중통신을 재개하며 당호에 부끄럽지 않은, 아니 이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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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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