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에드거 앨런 포 (하늘연못,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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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4개의 단편-페스트 대왕,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포 씨가 지은 4편의 에피소드를 읽었다. 어셔 가의 몰락에서 고립된 인간이 어떻게 찌들어가는지 포착했고, 검은 고양이는 찌듦의 극한이 저주스런 파멸임을 알려줬다.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2편에서 운명의 저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실마리 또한 엿본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포 씨는 불우했단다. 태생부터 버려졌고 첫사랑은 하필 친구의 어머니였으며, 고향에서 문학적 감수성은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횡사했다. 잿빛으로 얼룩져 보이나, 그는 세상의 편견과 속박을 뛰어넘으려 시도했다. 사랑으로.

어셔 가는 대대로 종갓집이다. 집안 바깥으로 출입을 끊은 집주인은 시체 같은 존재이다. 시체란 무엇 인가. 호흡을 중단하고 내외가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게 된다. 이질적인 존재와 섞이지 않음은 어셔의 집안내력이다. 수백 년 이어진 가풍은 집과 더불어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신체와 감응했으리라. 억누를 수 없는 슬픈 기운은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고 무서울 정도로 서서히 적응하게 한다. 숨막히던 분위기는 어느덧 익숙해진다. 정신 없는 도박장, 매캐한 내음의 PC방에서 이러한 폐인들은 육성된다. 로드릭 어셔의 폐쇄적 성향은 일정한 음조의 음악만 감당한다든지 하는 편집증으로 이어진다. 로드릭과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병적인 동시에 스스로도 다루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이다. 또한 이런 까다로운 성품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여성이 곁에 있다는 점이다. 로드릭에게는 누이동생 (아내라 해도 무방하다)이며 검은 고양이의 에게는 부인이다. 그들을 죽이고 파멸에 이르는 것 역시 같다. 이야기의 얼개는 다르나 결국 어셔 가..검은 고양이는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고립된 인간이 광기로 치닫는 모습과, 여인의 사랑으로부터 구원받고픈 욕망이 혼재한다. 로드릭 어셔는 이렇게 말했다지. 무서운 환영과 공포와 싸우다 결국 목숨과 이성을 모두 포기해야 할 시간이 곧 닥쳐올 것만 같네.

그러면 로드릭과 는 왜 그들을 사랑해주는 여인이 있음에도 그 지경이 되었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둘 만의 사랑은 갈등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인생살이에 갖은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 둘 만의 사랑으로 이를 메우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다양한 중재자가 있으면 그들의 도움으로 사랑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간이 만나 사랑을 하니 어찌 불일치가 없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모여 살고 상부상조하는 부족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로드릭과 는 일단 친구가 없다. 작품 내에서 묘사된 부분도 없었지만, 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렇게 술 먹고 폭음의 악령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의 우정 어린 친구들이 애완동물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야말로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고, 내 맘대로 거둘 수 있는 대상이다. 집 바깥에 대대로 나가지 않은 로드릭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여러 관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외톨이 스타일에다, 주변에 중재자들도 전무한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은 환희와 절망을 미친놈 널뛰기 타듯 출렁거릴 수 밖에 없다. 는 고백한다. 한때는 그렇게 나를 좋아했던 동물이 이제 확연히 나를 싫어하는 것을 보자 처음에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빙고! 이는 진실이다. 교수대를 앞에 두고 진실을 실토하는 그는 그래도 가능성이 엿보인다. 포 씨의 사랑의 행로는 단 한 순간도 순탄치 않았다. 첫사랑은 친구의 어머니였고, 지극히 사랑한 사촌 버지니아는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났으며, 마침내 약혼 직전 길거리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쯤 되면 빌어먹을 사랑!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연이은 사랑의 실패는 사랑을 환멸하며 동시에 더욱 갈구하게 한다. 이 아이러니! 고양이가 나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양이가 나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때문에 나는 그 놈을 매달았다. 이 대목을 읽으며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골방에 홀로 웅크리고 있던 일상의 패턴을 바꾸지 않는 한 그 누구를 만나도 목을 매달게 될 것이다. 아니면 아예 만남을 회피하든가. 나는 그 고양이를 피했다. 치욕감과 이전에 저지른 참혹한 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는 고양이를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전염병 환자의 숨결을 피하듯 그 불길한 존재로부터 말없이 도망가게 되었다. 목을 매달거나 전염병마냥 도망 다니거나. OX 퀴즈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고 싶다.

타르 박사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포 씨 나름의 모색이다. 주인공이 왜 정신병원에 찾아가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성채의 황폐한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말을 세우고 절반쯤은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곧 그런 나약함이 부끄러워져 계속 나아가기 시작했다. 막상 문 앞에 왔으나 들어갈까 말까 망설여진다. 정신병원은 다름아닌 자신의 내면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에피소드는 자신의 마음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행위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공포스럽다. 그래서 되도록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욕망 앞에서 망각의 버튼을 눌러 버린다. 잊자, 생각하면 골치 아프니 그냥 생각하지 말자고. 정신병원에 들어서니 깨끗하고 세련된 취향으로 꾸며진 응접실이 맞이한다. 아직 자신을 다 까발리지 않은 은폐된 세련미!

진정 체계는 광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우리는 광인의 머릿속에 있는 어떤 망상과도 대립하지 않네. 그 반대로 우리는 그 망상에 빠져들도록 더 부추겨주었네.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 그것이 광기이고 편견이고 망상이라도 그것을 신뢰하는 체계였다. 잠깐, 광기와 편견·망상은 누가 붙인 말인가? 내가? 천만에. 사회가 붙인 것이다. 원래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간들이 사회의 속박과 압력에 의해 딱지가 붙여진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은 어땠나. ‘예전 체계로 운영할 때는 이곳 환자들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 한데 이곳을 관찰하러 온 무분별한 사람들 때문에 종종 위험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네. 그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철저한 격리 체계를 시행하고 있네. 무분별한 사람들은 나 이외의 주변인들이다. 사회와 제도 체계라 해두자. 아니면 우리가 배우는 근대성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근대성을 배우는 이유를 메이야르가 명쾌히 설명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이제는 다른 이들의 소문을 믿지 않고 자네 스스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단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가 된 것이네. 들은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말고, 눈으로 보는 것은 절반만 믿게. 자신 만의 눈으로 세상을 밝게 보는 것은 너무 현란하여 눈부실 지경이다. 마치 도로 눈을 감고 간 소경처럼 일순간 눈이 머는 형국이다. 정신병원의 곳곳에 촛불이 지천으로 놓여 있어 주인공의 눈이 몹시 괴로운 것은 은폐된 내면을 직시하고, 굴레를 덧씌운 사회적 기제를 알아차리는 과정이리라.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과 파란약 사이에서 갈등한 것처럼 말이다. 메이야르가 말했듯이 광인이 꼭 바보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전 것(속박되고 억압된 사회체계_근대성)보다 훨씬 나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깔끔하고 아무 문제도 없고 사실 아주 즐거운 그런 것.

자신을 이름과 속박에서 허심(虛心)해나가면 사랑의 고립되고 고착된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페스트 대왕에서 찾아보자. 두 주인공 중 휴 타르폴린은 포 씨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싶다. 그의 친구 레그와 비교되는 타르폴린은 자신감 넘치며 쾌활하며 유머스런 위인이다. 살짝 연암의 호방함이 연상되는 그는 페스트 대왕의 만찬 첫 장면부터 그 기질을 유감없이 내보인다. 그런 반면 의기양양한 휴는 그가 앉을 자리로 마련된 관을 탁자 상석 근처, 수의를 입은 키 작은 폐병쟁이 숙녀 옆으로 옮겼다. 초장부터 여성 옆에 턱 하니 주저앉은 그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킨다. 이후 페스트 대왕 일족을 연달아 경악하고 분노하게 하는 그의 언행은 거칠 것이 없다. 죽음을 찬양하는 페스트 대왕의 연설에 불쑥 딴지거는 그의 깐죽거림은 통쾌하다. 포 씨의 삶이 잿빛으로만 점철되어 보이나 그 또한 이를 뛰어넘고픈 욕망이 있었던 게다. 그런 기질이 타르폴린을 창조했다. 내면에 힘이 없었다면 글로 나올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포 씨를 단순히 우울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그 구성에 있어 어느 한 부분도 우연이나 직관에 돌려질 수 없으며, 수학의 문제처럼 정확함과 엄밀한 결과를 가지고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정교한 배치와 논리에 의해 구성된 문장. 광기에 사로잡힌 자가 막 휘갈겨 쓴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타르폴린의 입을 빌려 악마 즉, 사회의 속박과 통제를 속 시원히 날려버린다. 신이 석방해준 악마를 위해 건배하고 그 권위에 굴한다면, 그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악마는 죄인이며, 다름 아닌 무대 팀 헐리걸리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걸작이다.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각각 능동적으로 잡아 그들이 달리는 곳은 다름아닌 자유와 평화 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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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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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e9988.co.kr BlogIcon 희망 2010.09.25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