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2:흩날리는꽃잎을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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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조설근 (나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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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나는 남자들

녕국부에는 나이 지긋한 초대라는 하인이 있다. 초대는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란을 피우며 을러댄다. 재 위를 기는 놈은 재 위를 기고, 시동생과 붙어먹는 년은 시동생과 붙어먹고, 내가 모를 줄 알고? 재 위를 긴다는 말은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욕보인다는 암시로 가진이 며느리인 진씨와 부적절한 관계임을 뜻한다. 가진은 여성편력이 화려하다. 내로라 하는 망나니 설반 조차 그를 남의 여자라면 쉽사리 손에 넣는 수완을 가진 자로 여겨 경계할 정도다. 정실 부인으로 우씨가 있고 첩이 패봉, 문화, 해란 등 3명에다, 나중에 녕국부에 살림을 도와주러 온 우씨의 동생들, 즉 처제인 우이저·우삼저와 뒹굴고 논다. 이때는 친아버지인 가경이 죽어 상중인데도 불구하고, 두 처제가 와 있다는 소식에 빙긋이 웃음을 띠며 문상객이 돌아간 틈을 내어 즐긴다. 더 웃기는 건 친아들인 가용과 함께 난잡한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처제(이모)와 그룹으로 즐긴다? 지금 기준에서도 엽기적이다.
 

가진의 사촌동생이며 왕희봉의 남편인 가련 또한 만만치 않다. 딸인 대저가 마마에 걸려, 잠깐 바깥에서 정양하는 동안에 그 며칠을 못 참고 집안 요리사의 아내와 놀아난다. 이놈은 무서운 아내 때문에 눈치만 보다, 틈만 나면 여자에게 집적댄다. 왕희봉이 생일 잔치로 집을 비운 사이, 포이의 아내를 불러다 즐기고, 우이저에게 눈독을 들여 몰래 장가간다. 가련의 아비 가사도 늙은 나이에 가모의 시녀인 원앙에게 홀딱 반해 자신의 첩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원앙의 거부와 가모의 책망에 하는 수없이 8백 냥에 열일곱 살 먹은 연홍이라는 여자아이를 불러 시중들게 한다.
 

가사는 나름 가문의 큰 어른인데 정말 존재감 제로의 인물이다. 집에서 늘 벌렁 드러누워 지내며 하는 일이라곤 어떻게 하면 어리고 예쁜 여자를 첩으로 삼을까 궁리하거나,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비록 남의 것이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적하는 게 전부다. 훗날 양민을 핍박해 탈취한 골동부채가 감사에 걸려 영국부가 곤욕을 치르는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바깥에서 뭐 맡은 직책이 있는가? 전혀 없다! 가진은 녕국공의 작위는 있으나 벼슬살이도 아닌 명예직으로 이따금씩 집안대소사에나 기웃거리고, 가련은 돈 주고 산 이름뿐인 직함 하나 걸어놓았으나 역시 한량인데다, 가사는 두 말 할 것 없는 인물이다. 돈 많고 시간 많으면 가장 손쉽게 즐기는 오락이 바로 술, 노름, 여색이다.
 

가진 등도 나름의 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로지 주색이라는 욕망으로 환원된다. 풍류라도 있으면 그럴 듯 하다만, 가진과 가련 형제는 그것조차 변변치 않은 인간들이다. 우삼저와 함께 즐기려고 할 때,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오히려 그들 형제를 압도한다. 당신네들 두 형제가 우리 두 자매를 무슨 기생처럼 데리고 놀 심산인 모양인데 그게 다 잘못 생각한 거라구요. 하며 술 마시는거? 뭐가 겁나요! 우리 한번 질펀하게 마셔 보시자고요. 이렇게 되자 당황한 건 오히려 가진 형제다. 여기서 우삼저의 행동이 걸작이다. 자신이 직접 술병을 들어 한 잔 가득 따라서 먼저 반 잔을 마시고 가련의 목덜미를 잡고 한 손으로 술잔을 입에 대고 먹이기 시작했다. 우삼저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꾸역꾸역 술을 마시는 가련이 참 가련할 뿐이다. 그들 형제는 풍류는 고사하고 그럴듯한 농담 한마디 대꾸하지 못하는 그런 위인이었다.  우삼저에게 기가 질린 가진은 그 후부터 방문을 꺼렸는데, 이제는 우삼저가 놀고 싶을 때 가진을 호출하여 희롱하는 지경이 된다. 주색조차 변변치 않은 이들은 무능 그 자체였다. 색욕이 인간을 멍청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고 할까?
 

욕망이 넘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 같다. 가서가 그렇다. 가서는 서당훈장 가대유의 손자인데, 형수 왕희봉에게 반해 어떻게든 홀려 보려고 애썼다. 이에 희봉이 성나 그를 몇 차례 함정에 빠뜨려 겨울철에 밤을 꼬박 지새우게 하고, 똥물을 뒤집어씌우는 등 곤욕을 치르게 한다. 희봉의 계락을 눈치 못한 가서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마침내 쇠약해져 몸져눕는다. 아픈 와중에도, 오로지 희봉의 아리따운 자태만 떠올라, 시도 때도 없이 자위 행위를 하고, 마침내 과도한 정액 배출로 죽어버린다. ! 지나친 욕정은 정말 모든 판단능력을 올 스톱시킨다. 가서는 생명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죽기 직전까지 야한 정념을 일으키는 풍월보감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절규하니, 욕정의 무시무시함에 새삼 몸서리쳐진다. 한 인간을 주색 빼고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존재는 얼마나 비루한가? 가진 등은 그야말로 욕망의 노예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보옥이 말하는 더러운 남자가 이와 관련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세운 가설, 더러운 남자들은 욕망의 노예임이 성립하려면, 보옥은 마땅히 그런 부류의 남자들을 혐오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가진 등을 미워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가련이 바람 피우다 들통나 집안을 들쑤실 때, 가련은 단지 음란한 즐거움을 누릴 줄만 알고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른다며 마음이 아려 눈물을 흘리는 정도다. 그가 욕망의 노예인 남자들을 진정 미워했다면 왜 보다 강렬하게 분노를 표시하지 않았을까? 물론 성격 탓도 있고 눈물 흘리는 게 보옥의 분노 표출의 방식이기도 하며, 집안의 막내라 손위항렬의 위계 때문에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부친과 형제 사이는 천륜이므로 대체적인 의리를 다하면 그만이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보옥은 그들과 딱 대체적인 의리만 다할 뿐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요컨대 더러운 남자를 상대하는 보옥의 방식은 분노가 아닌 무관심이다. 그들간의 대화도 손에 꼽을만하고 만나서 하는 얘기도 대부분 의례적이며, 아주 잠시만 할애한다. 가정에게 모질게 매맞고 병석에 누워있는데, 가환과 가란이 문병을 온다. 보옥은 그래 성의가 고맙다고 전해줘. 그렇지만 난 방금 잠자리에 들었으니 들어올 필요는 없다고 해. 보옥이 방에 있는데 하루는 가환과 가종이 문안하려 들어온다. 보옥은 가환이나 가종과 특별히 나눌 말이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다. 보옥의 생일날 가환과 가란이 찾아서 보옥에게 절을 올리고, 그들은 잠시 앉아 있다가 바로 돌아갔다. 이 장면들을 견줘보면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말 안 친하다고 할까? 욕망의 방향이 전혀 다르니 앉아서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보옥은 욕망의 노예인 남자를 혐오했으며, 그 근거는 그들과 되도록 접촉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다. 욕망의 노예를 싫어했다면, 어떤 모습을 좋아했을까? 답은 자명하다. 욕망의 노예가 아닌 자들, 나는 그들의 특징을 보옥이 사랑한 남자들에게서 찾아보려 한다.

 

보옥이 사랑한 남자들

보옥은 남자를 덮어놓고 싫어하지 않았다. 탁물로 이뤄진 사내 중에서도 보옥의 마음을 잡아 끈 이들이 드물게 있다. 진종은 보옥의 조카며느리인 진가경의 배다른 동생으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년이다. 진종은 보옥을 처음 만나 한눈에 보옥이란 자는 사람마다 보기만 하면 사랑에 빠진다니 헛말이 아님을 알아챈다. 보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도련님, 혼세마왕, 무사망 등으로 불린다. 하나같이 조롱이 섞인 것으로 보옥의 기이함을 풍자한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보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진종은 보자마자 보옥의 진가를 파악한다. 장옥함은 충순왕부에 소속된 연극배우로 수려한 용모에 기민하고 조심스러우며 성실하니 백 명 중에 한 명일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보옥은 그를 만나자마자 반가워 펄쩍펄쩍 뒤며 기뻐한다. 장옥함은 나중에 습인과 혼인하는데, 습인이 첫날밤을 거부하자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부드럽고 너그럽게 대해줘, 죽을 결심이었던 습인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 북정왕은 나라에 특히 공훈이 있는 왕족으로 준수한 용모에 성품이 겸손하고 온화하였다. 진가경의 장례식 때 직접 찾아와 예를 표하는 데 행동이 결코 잘난 척하거나 우쭐대지 않았다. 보옥은 평소 사대부들을 혐오하나, 북정왕의 관리의 습속이나 나라의 체면 등에 구애 받지 않는 모습에 만나자마자 역시 반하게 된다. 유상련은 대갓집 귀공자 출신으로 성격이 털털하고 호협하여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일찍 조실부모하는 바람에 연극배우로 활동하는데, 준수한 외모와 함께 피리나 검술 등 못하는 게 없었다. 냉정하고 다소 쌀쌀맞았으나 보옥이와는 아주 친하게 왕래하는 사이였다.

남자에게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한 보옥이는 이들에게서 어떤 향취를 느낀 것일까? 진종, 장옥함, 북정왕, 유상련 등은 신분과 성격이 제각각 이다. 진종은 집안이 가난하나 배움의 열망이 있고 순정파이며, 장옥함은 연극배우로써 자기의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다. 북정왕은 지체 높은 신분임에도 매우 소탈한 성품으로 위계를 따지지 않고, 유상련은 의리가 있는 인물로 우삼저가 자결하자 슬퍼하며 세상을 등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돈, 여자, 권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할 때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보옥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과 유사하다. 설반은 유상련을 품에 안으려는 욕망을 품고 그에게 접근하다 대차게 얻어 맞는다. 욕망의 노예가 별거인가? 자신의 흑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과 사물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사람이 돈으로 보이고, 여자가 성적 노리개로 보이면 스스로 욕망의 노예가 되고 있지 않나 자문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과 사물의 개성을 존중하기는 어렵다. 돈이 된다 싶으면 산이고 강이고 다 파헤쳐 골프장을 짓거나, 치마만 두르면 군침을 흘리는 몰개성적 악취미만 생길 뿐이다. 이런 행동은 상대는 물론이고, 자신조차 소외시킨다. 가련이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르고 자신의 무덤을 파고, 설반이 유상련에게 혼쭐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보옥이 좋아하는 것은 자기 색깔 , 욕망의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개성을 발현하는 인간임을 도출할 수 있다. 그것도 욕망이다. 나는 그것을 자기가 자기답고 싶은 욕망이라고 개념화해보겠다. 이것은 단지 인간에 국한되지 않고 동물, 식물 나아가 무생물에까지 확장된다. 이에 대한 논의는 권력욕에 대한 가보옥의 태도와 함께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보옥이 싫어한 여자들

여자아이는 물과 같아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고 칭송한 보옥도 싫은 여자들이 있다. 소설 속에서 보옥이 싫어하는 여인들은 대개 가부에서 일하는 할멈과 어멈이다. 이를 주인이 하인을 무시한다거나 혹은 노인 혐오로 보기는 어렵다. 보옥 스스로 위계가 없는 소탈한 성격이고, 유노파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마냥 늙은이를 경멸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문제를 다른 각도, 즉 가부를 구성하는 할멈·어멈이라는 특정 집단을 분석함으로써 그 실마리를 찾아 보겠다. 우선 두드러진 개별 사례 몇 가지를 분석하고, 가부라는 공간에서 그들이 놓여 있는 위치를 논의하겠다.
 

첫 번째 사례# 보옥의 유모 이씨는 보옥이 자기를 시녀들보다 대우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며 시녀들에게 막말을 한다. 그런데 실은 노름판에서 돈을 잃고 분한 마음에 애꿎은 이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두 번째 사례# 가부에는 연극배우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데, 이들은 밖에서 사온 사람들로 모두 어린 여자아이였으며 들어올 때부터 부중에서 일하는 할멈들과 수양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일종의 계약관계였다. 수양어미는 양딸의 월급을 몽땅 챙기며 가끔씩 빨래나 해줄 뿐 그러면서 어미로써 위세는 다 부렸다. 그 중 배우였다가 보옥의 시녀가 된 방관과 그 수양어미 사이에 시비가 붙는다. 수양어미가 친딸 머리감긴 물로 방관의 머리를 감기려고 했던 것이다. 방관이 사람 차별한다고 앙탈하자, 수양어미도 지지 않고 막말을 퍼붓고 둘이 한 판 한다. 보옥의 시녀인 사월이 말리며 방관이 할멈을 양어미로 안 삼는다면 그래 어떡할 거야? 똥구덩이라도 처박을 거야, 뭐야? 어르니 그제서야 방관이 자신을 양어미로 삼지 않으면 손해가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수그러든다. 할멈에게 수양딸로서 정분 따위는 없다. 결국 돈이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가장 끈끈한 고리였던 셈이다. 세 번째 사례# 대관원이 수춘낭(춘화가 수놓인 주머니)으로 벌집 쑤신 듯 수색을 당할 때, 형부인의 배방(부잣집 마님의 여종)인 왕선보댁이 앞장선다. 그녀는 평소 대관원에 들어가도 시녀들이 별로 떠받들어주지 않았으므로 늘 꽁해 있었다. 꼬투리를 잡으려던 차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대관원의 각 처소를 수색하며 위세를 부리다, 탐춘의 추상재에 이른다. 아가씨지만 서출 소생인 탐춘을 은근히 업신여기던 왕선보댁은 이 참에 자신의 체면을 뽐내볼 셈으로 탐춘을 희롱하다 호되게 뺨을 얻어맞고 망신당한다.
 

유모 이씨와 방관의 수양어미, 왕선보댁 모두 시녀들에 대한 뿌리깊은 질투심에 사로잡혀있다. 각 방에 있는 일등 시녀들은 자신보다 체통과 권세가 높음을 잘 알고 있는지라 이들을 보면 속으로 두렵기도 하고 머뭇거리게도 되지만, 동시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원한이 사무쳐서 남들에게 공연히 화를 내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평소 일상을 지배하는 욕망은 원한과 복수심이다. 원한감정은 약자의 감정이다. 남에게 악감정을 품으면 이미 시선이 자신이 아닌 외부로 쏠리게 된다. 악감정을 품은 대상의 언행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행동이 그에 좌우된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이미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다. 원한에 가득 찬 자는 파괴의 정념에 휩싸여 마침내는 스스로를 파멸한다. 왜냐하면 원한은 오직 원한만 낳으며,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보옥이 그들을 싫어한 이유는 할멈과 어멈들 역시 원한이라는 욕망의 노예였고, 원한 말고는 그들을 표현할 마땅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개성적 인격을 보옥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촉수가 발달했던 것 같다. 그 자신은 왜 여자가 시집가고 늙으면 변하는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나, 본능의 촉수가 그들을 알아챘기에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 어서 나가라고 하면서 질색한 것이리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규명하려는 보옥의 보옥다움 일지도.
 

대관원에서 일하는 할멈과 어멈들은 대개 낮은 지위의 하인들이다. 생활이 어려운 점도 있고 나름의 고충이 있으나, 단지 그것 때문에 원한감정 따위로 비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하인들을 잘 대접하는 가부에서 일하기에, 상대적으로 먹고 사는데 불편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가부의 공간적 특징은 무척 넓고 사람이 항상 북적거린다. 요령만 잘 피우면 일은 적게 하고 놀고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묻어가고 날로 먹기 좋다. 희봉이 진가경의 장례식을 맡아 어떻게 일 처리를 할지 고심할 때 진단한 가부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맡은 임무가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 것이 달라 각각 일하는 자와 노는 자가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역할분담이 제대로 안되어 있기에, 누가 성실한지 눈치만 살살 보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혼잡스러워 물건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데서 삥땅(?)쳐 재산을 축적하는 경우가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나중에 가부가 몰락할 때면 하인들이 더 부유해져, 상전이 그들의 돈을 꾸러 다니느라 허덕인다. 돈 앞에 위아래는 없다!
 

어쨌든 이렇게 살 맛나는 공간에서 이리저리 요령 피우며 할 일이 딱히 없고, 심심하니 하는 일이라곤 밤중에 노름판을 벌이거나 시녀들 혹은 주인들 뒷담화가 소일거리다. 뒷담화는 순간의 말초적 쾌락을 자극하나 그게 전부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뒷담화로 해소하나, 자신이 채워지기는커녕 더욱 공허해진다. 결국 뒷담화류의 수다는 새로운 사고를 촉발하고 자극하기보다 출구 없는 미궁으로 스스로를 몰아간다. 그 끝은 우울증 혹은 까닭 모를 불안, 초조, 분노이다. 그래서 홍루몽에 등장하는 할멈들은 대개 심통이 잔뜩 나있어, 화풀이할 건수만 찾기 일쑤다. 질병은 자기 삶을 돌보지 않는 자에게 찾아온 무언의 경고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랏님도 어쩔 수 없는 법! 보옥이는 모든 사물에 자연스런 성정이 있음을 사랑하는 자인데, 스스로 자기를 욕정의 구렁텅이에 떨어뜨리는 자들이 곱게 보여질 리 없는 노릇이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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