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고미숙 (휴머니스트,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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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들이 모여 영화를 찍고, 빵을 구워 나눠먹고, 게다가 사주 팔자를 본다고? 허허, 이런 기이한 모임이 무엇이란 말인가. 각자의 사랑방 아지트에 은거하던 강호 백수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에서 기이한 인연은 시작된다네. 그렇다네, 우리가 만났지. 그래서 모든 일은 비로소 시작한 걸세. 영화를 찍음은 곧 스스로 미디어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빵을 굽는다는 것은 자급자족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며, 사주명리학을 배움은 스스로 운명을 통제하겠다는 뜻 아닌가? 천시와 지리와 인사를 아우르려는 이들의 시도, 참으로 발칙하도다. 북송(北宋) 말기 양산박에 모여든 108명의 인간 군상을 살펴보자. 파직당한 관료, 누명을 쓰고 쫓기는 죄인, 도사, 가짜 승려 등 그 면면도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기존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탈주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1인 1개인기를 보유한 그들은 양산박이라는 공동체에서 능력을 꽃피운다. 눈이 밝은 놈은 망을 보고, 셈이 빠른 자는 회계를 맡고, 술고래는 술을 빚고, 목소리 좋은 놈은 연설문을 낭독하고, 금군(禁軍) 교위 출신인 자는 무술사범이 되는 식이다. 사회에서 쫓겨난 밑바닥 인생들이 우울해하기는커녕, 희희낙락하며 하늘을 대신해 도를 실천한다고 (替天行道) 왁자지껄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아마 유머의 중요성을 진작부터 알고 실천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유쾌했던 것은 아니다. 양산박은 조정으로부터 찍힌 도적떼의 소굴이었고, 이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주민등록증 말소를 의미했다. 우울함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친구, 수다 떨 수 있는 친구이다. 희한한 개인기를 지닌 이들 108명이 한 자리에 모이면 ‘개그 콘서트’가 시도 때도 없이 열렸을 테니 우울할 틈이 없었으리라. 백수들의 화려한 개인기의 향연. 그 백수본색이 우정의 정원에서 막 드러나려는 참이다.

  우정의 정원의 핵심은 동아리 활동이다. 백수 케포이필리아 공고에 끌린 것은 백수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음도 신기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따끈따끈한 동아리의 존재 덕이 컸다. 문화센터니 뭐니 요즘 지식을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들과 백수 케포이의 가장 큰 다른 점이 바로 동아리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네트워크가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빠르고 원하는 때에 타인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으나, 정작 연결도구만 있고 연결대상이 쑥 빠져있는 모양새이다. 휴대폰 전화번호부, 네이트온 친구목록은 넘쳐나나 연락할 친구는 마땅치 않은 현실. 그것은 아마 이해관계에 얽매여 관계의 빈곤을 호소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백수 케포이필리아 공고가 수유+너머 게시판에 처음 올라왔을 때가 기억난다. 며칠 만에 조회 수는 급격히 올라갔으나, 정작 신청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먼저 신청하는 데 부담을 느낀 이들이 눈치를 본 것이리라.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백수들의 모임이라는 기막힌 발상에 흥미를 느꼈지만 누가 먼저 첫 테이프를 끊느냐가 문제였다. 영화를 만드는 한지현은 백수 케포이의 최연소자이며 첫 번째 신청자였다. 그는 목요등산반 멤버이기도 한데, 이미 히말라야 로체샤르 등반을 경험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산에서 신출귀몰 가벼운 몸놀림을 자랑해 날다람쥐라는 별호를 갖고 있기도 한 유쾌한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도 누군가 먼저 신청할 줄 알고 한 동안 기다렸는데 어떤 움직임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등록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봇물 터진 듯 신청자가 폭주해 애초 20명 정원이 40명 정도로 대폭 늘어나기에 이른다.

  핀란드 태생의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을 보면 세상에 이렇게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가여운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인생이 덧없고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들고 팍팍한지 콱 죽어버리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희한한 광고문구를 접하게 된다. '당신만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과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편지를 써라. 우리가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 암호는 공동의 시도.' 무슨 광고가 이렇담? 혹시 이상한 종교단체에서 선동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는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침내 답신을 써내려 간다. 그렇게 그들, 즉 핀란드 전역의 자살자들은 구름처럼 모여든다. 이제 그들의 죽음을 향한 여행은 시작된다. 유럽 전역을 호화 전세버스를 타고 (전세버스 주인 또한 자살희망자이다) 좌충우돌을 벌이는 그들 구성원은 참으로 다양하여, 연령을 가리지 않고 성별, 직업, 빈부 격차를 따지지 않는다. 마치 중국 춘추전국시대, 4대 공자(公子) 중 한 사람인 제나라의 맹상군 휘하의 식객들 마냥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지녔다. 앞서 언급한 수호지의 양산박 호걸들, 공동의 시도를 모색하는 자살단, 백수 케포이의 동무들 모두 홀로 있지 않고 모였기에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시련이 만남을 이끌고, 만남이 사연을 낳으며, 사연은 서로의 성장을 촉발한다. 채운 샘은 ‘낯선 사람, 사건이 자신을 새로운 경지로 이끈다’고 했다. 백수 케포이 4주차, 딱 절반이 지났다. 생판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백수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코뮌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이 간다. 낯설지만 정겨운 그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 다양한 접속과 촉발은 이뤄지고 있다.

  4주차의 주제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돈 없이 살아가는 법’이다. 프로그램이 절반 정도 지났으면 이제 어느 정도 사람들과 익숙하고 분위기도 무르익을 때다. 반면 그만큼 마음이 풀어지기도 한다. 고미숙 샘은 ‘첫 만남은 긴장이 되기에 밀도가 높으나, 갈수록 밀도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아니나다를까 절반을 넘긴 시점에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띄고 중간 이탈자도 발생한다. 나 역시 처음 O.T때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떠올리면 지금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수 케포이 참여를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간 시점에 이르러 신체를 바꾸는 일에 충실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이런 면에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이하 ‘아기자’)는 단순히 수유+너머의 과거를 돌아보자는 의미이기보다, 초발심을 떠올리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읽는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지각하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면,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은 얼마나 많은 이들과 같은 밥상머리에서 밥을 나눠 먹었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면 감춰진 자신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 앞에 점차 드러내게 된다. 밥을 백 번 정도 같이 먹다 보면 그 사람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같이 공부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공동체 생활은 멀리서 관찰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밥’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것이다. 강좌만 달랑 듣고 돌아간다면 밥을 같이 나눠먹으며 얻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것이 아닐까. 백수 케포이 동무 배진영은 밥 먹을 때 마다 일부러 다른 사람과 어울려 먹는다고 한다. 잘 모르는 사람 옆에 앉아 밥 먹는 일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낯선 공간에 배치하는 그가 어떻게 신체를 변환할지 궁금하다.

  수유+너머라는 학문공동체가 어떻게 발생하고 진화했는지도 궁금하지만, 진정한 나의 관심사는 백수 케포이라는 소집단이 과연 명맥을 유지할 만큼 존재의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서로를 촉발하고 접속하는데 실패한다면 자연스럽게 백수 케포이는 사라질 것이다. 이미 2기 백수 케포이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1기 보다 강좌도 늘어나고, 동아리는 다양해졌으며 그에 따라 가격도 올랐다. 고미숙 샘은 ‘코뮨적 주체라 하면, 스스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의 문제’라고 말한다. 아무리 공동체 생활을 낭만적으로 보고 동경한다 하더라도, 눈 앞의 사람과 관계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면 유토피아(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런 역량을 처음부터 지닌 사람은 매우 드물다. 백수 케포이 활동을 하며 느낀 것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도, 선뜻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관계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는 글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접속한 사례이다. O.T 후기를 게시판에 올린 이후, 사람들은 나를 ‘글 쓴 아무개’로 기억했다. 그래서일까, 먼저 알아봐주는 몇몇 동무들 덕분에 비교적 마음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 같다. 초반에 안타까웠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픈 마음이 있음에도, ‘같이 모여 공부하자’라는 말 한마디 하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어색하고 쑥스럽고 귀찮고 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모처럼 연구실에 나와도, 강좌나 프로그램이 끝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있다가 귀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다못해 차비가 아까울 지경이다. 강좌에서 곰 선생이 출석체크를 엄격히 하는 것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백수들은 신체가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한 존재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신체가 튼튼해질 때까지는 돌봄이 필요하다. 20명에서 40명으로 인원이 늘어날 때 우려했던 점이 바로 이런 점이다. 하다못해 50명으로 늘어나는 다음 기수는 어떨까. 인원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신체를 변혁하고, 동무들과 서로 접속할 수 있도록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자신의 일상은 스스로 알아서 조직해야 한다. 누가 하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스승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고미숙 샘은 우스개 소리로 줄을 잘 서라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동아리에 줄을 잘 선 것 같다. 내가 활동하는 예술과 사주명리학 (이하 예명)은 최다 회원을 자랑하는 인기(?) 동아리이기도 하다. 단순히 사주팔자로 내 운명을 알아보고픈 통속적인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갈수록 이 매력에 흠뻑 빠지고 있다. 사주팔자는 어떻게 보면 자신이 지나온 행적과 앞으로 걸어갈 미래, 성격 등을 압축해놓은 ID 카드와 같다.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없는 이에게는 무의미한 한자(漢字) 여덟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더 간결하게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우리의 미션은 자신의 사주를 스스로 풀이할 수 있고, 여기에 담긴 욕망이 무엇인지 통찰하는 것이다. 어떤 욕망이 나를 그 동안 지배했는지 깨닫게 되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길 또한 찾을 수 있다. 운명이라는 말에 대해 숱한 오해가 있어왔다.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라는 말처럼 잘못 인식된 용어도 없다. 운명은 움직일 운(運), 목숨 명(命)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삶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흔히 운동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고 주변의 배치를 바꾸니 기분이 ‘전환’되는 것이다. 기분이 전환되면 하루가 바뀌고, 나아가 일상이 변한다. 고미숙 샘이 누차 말하는 신체를 바꾼다는 것이 이런 개념이 아닐까 싶다. 고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신체를 바꾸는 일과 상통한다. 사주명리학 공부는 운명을 바꾸는 여행에 훌륭한 지도를 선사한다. 길을 떠남에 있어 지도가 있고 없음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괜한 삽질(?)할 필요가 없다. 나아가 우주의 원리와 동양사상의 정수까지 한 큐에 얻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친구들과 서로 자신의 사주를 까고(?) 분석에 매진하다 보면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사주 얘기를 하다 보면 별의별 얘기가 줄줄이 나온다. 숨기고 싶은 가정사, 성격 등이 고해성사 마냥 나오는 통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주공부도 하고 내밀한 인생상담까지 함께 하는 예명은 참 괜찮은 동아리가 아닐 수 없다. ^^

  여기에는 예명의 매니저 장금이 샘의 몫이 크다. 장금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를 흠모해 지은 별호라 추측한다. 사주에 화(火) 기운이 많은 그는 넘치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세미나 시간마다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이는 불 같은 인물이다. 덕분에 우리 동무들은 그를 통해 화 기운의 사주를 가진 이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복이다. 도담 샘도 빼놓을 수 없다. 예명을 뒷바라지 하는 든든한 존재인 그는 우리들의 사주공부 스승과도 같다. 이런 스승들과 동무들이 버티고 있는 동아리에 들어왔으니 줄을 잘 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주공부가 흥미로운 점은 실제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뤄진다는 것이다. 성격, 가족문제, 직업 등 거론할 수 있는 주제가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얘깃거리가 다양하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수 동무들이 서로 접속하고 촉발하는데 좋은 공부이다. 생각하건대 사주명리학은 백수 모두가 공통 과목으로 공부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든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사주명리학 이외의 동아리 분들은 음양이 어떻고 오행이 어떻고, 혹은 수(水)기운이 어쩌고, 목(木)기운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궁금하다가도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사뭇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동아리에서 뒤늦게 예명의 매력을 느끼고 합류한 이들도 있으니 아주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닌 듯 하다. 예전 글에서 백수 케포이 강좌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런 동아리 활동이나 밥상머리 같은 지점에서 사람들과 직접 어울려 부대끼며 벌어지는 상호 작용에 있었고, 그 판단은 지금까지 보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계속 반복하지만 공동체 생활의 핵심은 지금 내가 몸과 몸이 만나는 부대낌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가 이다. 그곳에서 멀찌감치 비켜서 있다면 공동체를 통해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만사에는 반대급부라는 것이 있다. 잃는 만큼 얻으리라. 그 반대도 마찬가지!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지 말고, 파라다이스를 함께 일구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는 그렇게 부대끼며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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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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