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는지, 본문 글감을 떠올리며 궁금해졌다.

10초도 안되어, 독일 영화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作 'Fear eats the soul'의 동명 영화제목이자 극중 인물의 대사임을 확인했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글을 쓴다. 해소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그런 불안 상태에서 쓴 글이 대체로 마음에 들 때가 많다. 물론 잘 써야 한다. 걱정 근심을 한 편의 글에 제대로 녹여낼 때, 불안이라는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유능한 의사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감정은 넘어져 다친 무릎팍 피딱지를 살살 뜯어낼 때의 쾌감과 흡사하다. 글이 잘 안풀릴 때는 부작용을 겪는다. 불안을 다스리려다 잡아먹힌다. 불안이라는 맹수는 단어와 문장을 속절없이 집어삼켜 한 발짝도 글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한다. 결국 글쓰기를 접고 불안에서 우울로 레벨업한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불안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황폐하게 해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불안은 글을 쓰게하는 동기를 제공하고, 이따금씩 훌륭한 글도 나오게 한다. 에이 내가 써도 재미없다... -.-;
재미없는 글은 스스로 안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데 어렵다.

릴케인가.. 확실치 않으나 어떤 시인이 신경증적인 불안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심리학자는 치료를 권했으나 시인은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는 불안이 치료되면, 자신의 시적 감수성도 함께 사라질 것을 불안해 했다고 하더라.

나는 나의 불안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불안이 감수성의 원천이라면 함께 안고 가고 싶다. 그리고 그 불안이 감수성의 원천임은 대체로 맞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불안,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등은 인생과 사랑을 깊이 통찰하게 해준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그의 고뇌와 불안이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그런 불안감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난다. 노래로.. 시로.. 예술로..

불안에 깔려 죽더라도 그것은 나의 영혼이기에, 평화를 준다해도 악마에게 팔지 않을 것이다.

'일상잡감(日常雜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 사랑이 뭐에요?  (0) 2008.12.18
글쓰기는 전쟁이다.  (4) 2008.12.17
인간세계에서 나비효과 사례  (0) 2008.12.15
내 마음은 김치찌개에요.  (0) 2008.12.11
꾸역꾸역 글쓰기  (2) 2008.11.22
Posted by 지장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