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세트(전3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박지원 (돌베개, 2009년)
상세보기

 

이른바 서생(공부하는 자)이라 자칭하는 자는 경계하라

이번에는 부드러운 털을 입으로 빨고 아교풀로 붙여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드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안 된다. 이것을 오징어 먹물 같은 시커먼 물에 듬뿍 찍어서는 가로 찌르고 모로 찌르면 굽은 놈은 갈고리 창 같고, 날이 난 놈은 식도 같고, 뾰족한 놈은 검 같고, 갈라진 놈은 가지창 같고, 곧은 놈은 화살 같고, 둥그스레한 놈은 활같이 생겨먹었으니, 이놈의 병장기를 한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들이 한밤에 통곡하게 된다. (호질)

- 붓과 세치 혀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이른바 공부한답시고 나서는 자들은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내가 배운 학문을 어떻게 쓸 것인가. 마음가짐에 따라 그것은 독()도 약()도 될 수 있다.

 

모르는 것에는 입을 다물라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 한갓 남이 말하는 내용만 듣고 의존하는 사람과는 함께 학문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물며 평생을 두고 마음을 쓰고 헤아려도 도달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임에랴! … 대체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본래 이 몸은 현재에 있지만) 언제나 지나간 과거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 과거가 지나가고 또 지나서 쉬지 않는다면, 옛날에 듣고 본 것에만 의존하여 이를 학문으로 삼는 사람은 그것의 가부를 고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억지로 책을 지어 남들에게 반드시 믿게끔 하려는 것이다. (일신수필서)

- 지식인의 병폐란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것을 신주단지 마냥 섬긴다는 데 있다. 또한 여기저기 안 나서는
      데가 없다
. 꼭 말 한마디 학문을 자랑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일을 떠벌리는 것 마냥
      공허한 일은 없다
.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도 명심해야 하리라.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의 고통은 크다

대개 장대를 올라갈 때는 한 계단씩 차례로 밟고 올라가기 때문에 위험을 모르고 있다가 내려오려고 눈을 들어 한번 보면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현기증이 생기는 까닭이니 그 탈의 원인은 눈이다. 벼슬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바야흐로 벼슬이 올라갈 때는 한 등급, 반 계단씩 올라 남에게 뒤처질까 봐 남을 밀치고 앞을 다투다가, 마침내 몸이 숭고한 자리에 이르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외롭고 위태로워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뒤로는 천 길 낭떠러지로, 붙잡거나 도움 받을 희망마저 끊어져서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 없게 된다. 역대의 모든 벼슬아치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일신수필 장대 관람기)

- 나 같은 서생들은 명예욕과 인정욕망이 드세다. 남에게 칭찬받으면 희희낙락하다가도 비판 받으면 이내
     얼굴이 굳어짐이 예사이다
.
옛말에 정녕 이로운 말은 듣기에 거슬린다고 했는데 이를 멀리하니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
. 여러 사람에게 추앙 받을수록 그들의 진심을 살펴야 할 것이다.
주변에 오직 칭찬하는
     이만 그득하면 이미 갈 데까지 간 것이라 할만하다
. 항상 경계해야 할지어다.

 

폼 잡지 마라

붓은 부드럽고 유순하고 길이 잘 들어서 어깨를 움직이는 대로 함께 힘이 들어가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치지, 털이 억세고 뻣뻣하며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낫다고 하지 않는다. (관내정사 7 24일 경자일)

- 배운 자는 배움을 내보이려고 하는 욕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참으로 많다
. 어깨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는 억세고 뻣뻣한 글줄밖에 쓸 수 없다
.
     
마음을 겸허히 내려놓고 배우는 자세가 요청될 것이다
.

2010/02/03 - [연구공간 수유+너머] - 열하일기 中 '울보야말로 천하의 사나이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지장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