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유

저자
마르셀 그라네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0-09-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중국학의 대가, 마르셀 그라네의 대표작프랑스 태생의 중국학 연구...
가격비교


 

종합적 앎의 대상

중국의 현자들은 광대들을 줄곧 적개심으로 대해왔다. 광대가 물구나무서기로 직립한 나무를 흉내 내면 세계의 무질서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중국인에게 우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람은 발이 네모나기에 땅에 의지하고, 머리는 하늘을 닮아 둥글다. 이처럼 사람의 신체는 우주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렇기에 광대의 행위는 하늘과 땅을 뒤집은 것과 다름없었으며 우주의 혼란을 야기한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관점은 대우주와 소우주는 크기의 차이일 뿐, 우열의 차원이 아님을 입증한다. 대우주가 소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소우주도 대우주에 영향을 준다. 이들의 관계는 하나의 종합적인 앎의 대상이다. 대우주와 대우주 속에 겹쳐 있는 제반 소우주들에 적용되는 이 앎은 그 형성과정에서 단지 유사논리만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유사논리는 무엇인가? 대우주와 소우주에 적용되는 원칙은 대동소이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양자가 서로 분리되어 따로 작용하지 않고, 소우주에 어떤 변화를 겪으면 그 유사한 논리에 따라 대우주도 변동함을 의미한다. 광대의 경우를 보면, 인간의 신체를 ()우주와 같은 원칙으로 작동하는 소우주로 보는 관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단지 신체뿐만 아니라 건축, 군대의 편성, 각종 예법 등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사회구조, 규범에서 드러난다. 중국인의 소우주 관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좌우左右에 관련된 제반 사상, 관습, 신화를 들 수 있다.

 

좌우左右 개념에 드러난 소우주 관

좌우의 개념은 어떻게 소우주 관과 연결되어 있는가? 좌와 우는 음양사상과 맞닿아 있으며(左陽右陰), 음양은 하늘과 땅으로 치환되며, 그것은 바로 대우주의 천지와 같다. 그런데 우리의 몸에는 왼손과 오른손이 있으며 신체 각 부위마다 좌우가 함께 놓여 있다. 말하자면 좌우는 대우주의 천지와 상통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좌우 개념은 소우주 관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서구인들이 좌를 혐오하고 우를 받드는 종교적 격정은 중국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인들은 오른손잡이임에도 좌를 경배했다. 중국의 위대한 영웅들 중 일부는 왼손잡이였고, 일부는 오른손잡이였다. 무엇이든 간에 좌우의 우열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천덕과 지덕은 상호보완적이다. 양이 음을 능가하고, 도가 덕을 능가하고, 군주의 책무가 재상의 정무를 능가하듯이, 좌와 하늘은 어떤 측면에서 우와 땅을 능가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립은 위계상의 차이나 용도상의 구분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오른손을 나타내는 글자 우右는 어원학적으로 손+입의 조합이다. 손을 입에 가져가는 것, 즉 음식을 먹는 손이다. 음식은 땅에서 나는 것이기에, 오른손은 땅에 관계된다. 좌左는 어떤가? 좌는 손+직각을 나타내는 표기 요소의 조합이다. 직각은 종교적이면서 주술적인 제반 기술을 상징하며, 군주와 점술가의 시조인 복희伏羲의 표상이다. 복희는 왼손에 직각자를 들고 있다. 직각자는 땅의 표상인 정방형을 생성한다. 그런데 생성된 정방형은 그 자체에 원형을 내포한다. 직각자는 정방형과 원형을 생성할 수 있는, 즉 음과 양에 동시에 속하는 주술인의 표상이자, 하늘과 땅의 일 모두에 정통했던 복희의 표상이 되기에 이른다. (:복희는 여와와 남매이자 부부이다. 그들은 결혼의 시조로, 인류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이다. 중국사유에서 그라네가 든 예는, 그들이 부부가 된 신화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직각자는 음과 양이 성혼成婚을 통해 속성을 교환한 후에야 비로소 남성의 상징으로 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했으나, 복희의 직각자는 이제 그 속성의 교환 없이도 음양 모두를 포괄할 수 있게 되었다. 신화학에서는 여와를 창조 여신 신화를 모계 사회적 전통을 보여준다면, 복희와 여와의 신화는 남녀가 일부일처를 이룬 가부장적 사회의 인식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복희의 왼손에 직각자가 들려지게 되었는데, 왼손은 군주의 업적과 주술적, 종교적 활동을 상기한다. 그렇다고 우가 세속적인 일과 지상에서의 활동을 표상한다고 좌와 적대적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중국사유는 상반성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조와 교대와 상관성에, 그리고 양성兩性의 속성의 교환에 관건을 둔다. 이러한 교환과 대조의 관계 그리고 상반관계와 교대관계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은 시공간상의 무한정한 다양성으로 자연스럽게 배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예법은 이 모든 복합양상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때로는 좌가, 때로는 우가 예법상 중시된다. 그건 상황마다 미묘하게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일관된 분류원칙에 의해 적용된다.

중국인은 오른손잡이다. 인사할 때 남아는 오른손을 왼손 아래에 감추고, 여아는 왼손을 오른손 아래로 감춘다. 복상服喪기간에는 음과 우가 우선되어 남자들도 왼손을 가리면서 오른손을 내보인다. 손바닥을 대고 맹세나 우정을 다짐할 때는 오른손을 부여잡는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중시된 반면, 왼쪽 귀가 오른쪽 귀보다 중시되었다. 유순한 동물인 말과 양을 인양 받는 경우 오른손으로 밧줄을 잡았던 반면, 보다 난폭한 개는 왼손으로 끈을 잡았다. 중국인들은 줄 때는 왼쪽, 받을 때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군주의 진상품은 군주의 왼편에 놓여야 했다. 군주의 명령을 하달할 때는 군주의 오른편에 위치했다. 생선을 대접하는 예법은 특이하다. 꼬리가 손님을 향해 놓여야 하며, 복부는 겨울에는 우, 여름에는 좌로 놓여야 했다. 여름과 좌와 전면(가슴 쏙)은 양에 해당했다. 여름에 대접하는 생선은 양에 해당하는 모든 것과 일치함으로써 공간적으로 바르게 놓인 것이 된다. 겨울에는 이 같은 배치가 일치하지 않으나 나름의 논리로 해명되며, 만약 마른 생선일 경우에는 상황은 또 전혀 달라진다.

결국 공간적으로 바르게 놓는다는 의미는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대우주의 원리는 인사법(소우주), 생선을 놓는 위치(소우주) 등과 같은 일상적 행위로 구현되었다. 이 같은 원칙을 정한 예법은 요컨대 우주를 안배하는 준거체계와 다름없는 것이다. 대우주의 원리는 왜 구현되어야만 했는가? 우주의 원리가 구현되지 못하고 어지러워지면, 그것은 곧 지상의 혼란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서두의 광대를 적대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세계를 나누는 기준, 군주

향응, 예물교환, 서약과 경조사, 이 모든 것은 예법에 따라 관장되며 세부에 이르기까지 좌와 우 중에서 최선의 택일을 도모했다. 이러한 예법의 원칙들이 비롯한 근원과, 좌우를 할당하게 된 기원은 정치에 있는 것 같다. 정치와 논리를 지배하는 것은 복종에 기초하는 봉건사상이다. 좌우의 대립, 의례상의 서열화는 상위와 하위에 대한 봉건적인 구분과 관계된다. 다만 이 구분은 (사회조직이 성의 범주에 바탕 하기에) 남녀와 음양의 구별과도 함께 조합되어야 했다. 좌우를 선택하는 원칙은 우주조직의 구도에 의거했으며, 그러한 구도의 원칙은 문무의식으로 거행된 봉건집회의 수칙에서 찾을 수 있다.

군주는 단상에 올라 남면南面하며 하늘과 양과 남쪽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군주의 좌는 동이며 우는 서이다. 동은 떠오르는 승리의 태양이기에, 좌는 높은 쪽이며 양이며 남, 군주의 자리다. 우는 해가 지는 쪽이며 땅과 북, 음에 속한다. 왕세자의 궁은 동쪽에, 대비의 처소는 서쪽에 위치한다. 좌는 남성적, 종교적 활동이며, 우는 여성적, 겨울과 추수와 음식에 해당한다. 생명을 보전하는 행위는 양으로 군주의 일이며 왼손이다. 살생은 음으로 군졸의 일이며 그 집행은 오른손이 맡는다. 군대는 군주의 붉은 깃발과 함께 이동하며 언제나 남쪽으로 행군한다. 따라서 좌군영左軍營은 항상 왼쪽(동쪽)에 위치한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중국인은 세계의 분할을 군주와 연관 짓는다.

부부의 경우를 보면, 바깥주인(남자)은 집안에서 사랑채의 동쪽 계단 위인 좌측에 위치하고, 안주인(여자)은 서쪽 계단 위인 우측에 배정된다. 그런데 집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자는 이제 오른쪽 보도인 서쪽에서, 여자는 왼쪽 보도인 동쪽에서 걸어간다. 왜 바뀌었을까? 그것은 바로 중국인에게 세계분할은 군주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군주를 제외한 남자들은 모두 제후(신하)이다. 봉건질서에서 신하의 위치였던 그들은, 일단 자기 집(영지)안으로 들어오면 거기에서 군주 노릇을 한다. 따라서 자기 집안에서는 좌측(동쪽)에 자리했으나, 집밖으로 나온 이상 그곳은 군주의 세력권을 상징한다. 따라서 남자(제후)들은 북쪽을 향해 걸어야 했고, 오른편에 위치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도 집안의 특정한 장소, 예컨대 잠자리 같은 경우는 또 상황이 달라진다. (맙소사!) 잠자리에서 중시되는 방향은 아래쪽, 땅 쪽이다. 여인은 수확한 곡식이 보관된 구석에 자리를 편다. 왜냐하면 곡식에서 능임력能妊力을 빌려오고, 곡식에게 자신의 생식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인의 자리는 서쪽 벽에 맞닿도록 놓이고, 남편은 아내의 동쪽에 놓인다. 고인故人 외에 부부는 머리를 남쪽에 둘 수 없다. 따라서 밤에는 아내가 서쪽에 위치하나 좌를, 남편이 우를 차지한다. 계속 예시한 군주와 가정에서 나타나는 좌우의 용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든 전환은 봉건사회구주인 남편에 대한 아내의 종속과 군주에 대한 제후의 종속에 따른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에도, 좌는 근본적으로 양이며, 우는 음에 해당한다.

정치적 의미를 지녔던 상하 구별은 경우에 따라 좌우 구별로 전이되었다. 즉 상하(남면 혹은 북면)에 적용되는 정치적 함의는 좌우의 개념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에 따른 좌우 분배의 원칙은 점성학과 생리학과 역사로 입증되고 있다. 중국 점성학에서 하늘은 좌선左旋, 땅은 우선右旋한다. 군주의 순행巡行은 왼쪽(동쪽)으로 시작했다. 이는 모든 주기적 운행질서와도 부합하는 것이며, 군주와 태양과 양의 행로이기도 했다. 우의 행로는 역행으로, 장례 기간에 준수되어야 하는 행로다. 우右의 운행방식은 생리학으로도 입증된다. 생리학은 수7이나 8이 남녀의 삶을 관장한다는 점을 대전제로 삼는다. 여자의 경우 수7에 의거해, 성장한다. 7은 가을(, ) 12지의 기호 신申에 해당한다. 기호 사巳는 잉태의 위치이며 임신은 10개월 동안 지속된다. 여자의 경우, 잉태의 위치인 사巳에서 여성의 삶이 시작되는 지점인 신申까지 10지를 경유한다. 그런데 이 행로는 우선右旋이다. 즉 태아가 오른쪽에 자리하면 여아인 것처럼, 오른쪽에 잉태된 여아는 오른쪽을 향하여 선회한다. 또한 남녀가 정북에서 출발해 잉태의 위치인 사巳에서 만나려면 남자는 좌로 30, 여자는 우로 20지를 거쳐야 한다(그래서 남자는 30, 여자는 20세에 혼인한다).

좌로의 행보는 상과 양의 사항들에 적합한 동선으로 하늘의 기운이 생기를 불어넣는 영웅들의 특징이다. 우는 꼭 그 정반대다. 이 점에서 역사는 신빙한 여러 증거를 제시한다. 천덕의 힘을 얻은 승탕勝湯은 모체의 가슴()에서 태어났고, 지덕을 지닌 대우大禹는 모체의 등()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대우는 왼발이 결코 오른발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몸의 오른편을 앞으로 내밀고 걸었다. 정치의 기본 은유였던 상하 구별로 사회를 비롯하여 대우주와 여러 형태의 소우주에도 이중의 불균형이 야기되었다. 즉 상에서는 좌가, 하에서는 우가 우위를 접하게 되었다. 불주산不周山의 균열 신화는 이 같은 양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용된다. 또한 의사들은 여기서 의술의 기본원칙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쪽으로 내려앉은 하늘은, 동쪽()에서만 충만하게 되었다. 동쪽은 하늘과 양기의 영향에 놓이고 서쪽은 음기의 영향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몸을 쓸 때도, 상반신에 위치한 눈과 귀에서는 좌측의 것을 사용했고, 인체는 동()으로는 양기가 왕성하나 음이 부족했다고 봤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왜 이렇게 집요하리만큼 좌우의 위치를 집요하게 따졌는가? 답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안배였기 때문임을. 지금 나 자신이 행하는 일상의 사소해 보이는 몸짓이 모두 우주를 구성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다. 맞고 틀림을 떠나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이 공유하는 의식의 근저를 흐르는 사유체계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효능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주와 세계를 안배하기 위한 시도

인간이 우주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예컨대 하늘은 사계절이 있고 인간은 4지를 지니고, 하늘은 360일이 12(우주의 운행 주기)을 이루며 인간은 360개의 관절이 있다는 식이다. 또 오행이 있어 오장이 있다는 분류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류체계는 무척 많으며 서로 조금씩 다르다. 상이한 분류들을 상관 짓는 것은 기술상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이 분류들의 병용이 마침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중국인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공통된 질서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인은 실재에 대한 일관적인 성찰을 시도할 때면, 언제나 고대의 신화적 분류들을 끌어온다. 학술적 사유든 기술적 사유든, 중국사유는 신화에서 탈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유의 표상적 제재와 방법을 빌려오고 있다. 학자의 역할은 여러 신화들에서 하나의 정설을 추출하는데 있었다. 앎은 유사성에 따른 상관관계의 목록을 증대시키면서 집대성 되었다. 이렇게 보면, 상이한 분류체계는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의 확장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새로운 표상이 생겨도, 그것은 유사성의 원칙(오행)에 의해 곧 포섭되고 만다. 그 일을 한 자들이 학자였던 것이다. 조응관계와 상호관계의 대전제는 자연과 인간, 육체와 정신을 맺어주는 연대성이었다. 그러나 이 조응관계는 시각 차이로 완벽한 목록으로는 제시될 수 없었다. 즉 하늘의 기호를 인간의 활동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학자들 간의 견해차로 각 문헌에 나타난 상이한 오행 도표로 증명된다.

어쨌든 인간의 몸짓과 감정은 오행과 오장을 통해 우주의 현상, 하늘의 기호에 결부된다. <홍범>이 따르는 순서는 5음音의 생성순서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니 5음과 오행과 오덕의 상관관계는 고대에서 유래되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해 <월령>이 입증하듯, 중국인은 의례절차상 제물을 바칠 때, 한 특정 음을 표상으로 하는 각 계절에 따라 오장五臟 가운데 하나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각음角音은 간장肝臟을 울려 사람을 완벽한 인仁에 맺어준다. 사마천의 이 문구만큼이나 육체와 정신을 우주의 율동에 따라 하나로 이어주는 표상적 상관작용과 깊은 연대성을 잘 나타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중국사유>에 제시된 반고의 <백호통>이나 <관자>, <예운>, <황제내경> 등은 모두 나름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관계에 대한 상당량의 기술記述을 선보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육체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기 위해서 중국인은 갖은 방식을 모색해야 했음을 뜻한다. 즉 그들로서는 제반 분류방식들을 서로 연관 지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계에서든 자연계에서든 질서와 생명은 때로는 땅에 때로는 하늘에 부합하는 수數에 의한 분류방식들을 병용하는 데서 비롯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분류체계를 효과적으로 조합하고 병용하여, 그 관계의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몫은 학자의 것이다. 또한 시인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눈물은 눈에서 흐르며, 사람은 눈이 있기에 명석하다. 눈은 간장의 구멍이며, 간장은 초록색으로 봄과 목과 바람에 상응한다. 바람은 어둑한 구름을 쓸어 빗방울을 영롱하게 한다. 이는 시인들의 말이다.라고 그라네는 언급한다. 이렇게 보면 시인과 학자는 아주 다른 개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저 언표는 하늘의 기호를 인간, 육체와 정신을 맺어주는 조응관계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우주 편에서 보았듯이 전사들은 세계의 변방을 정복했으며, 시인과 지관들은 그곳으로 탐험을 터났다. 시인들이 정복된 변경으로 파견된 까닭은, 바로 우주의 분류체계와 조응체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그곳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야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와 세계는 분할되고, 공간은 비로소 바르게 놓이기 때문이다. 그때 변경은 더 이상 변경이 아닌, 군주가 다스리는 영지인 속하게 되는 것이다.

 

앎은 하나로 꿰어진다 (一以貫之)

생리학과 심리학은 하늘과 땅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인간을 아는 것은 세계를 아는 것이요, 우주의 구조를 자신의 생명처럼 아는 것이다. 앎은 하나인 까닭에 애써 특수한 학문을 형성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관으로서 산맥에 정통 하다는 것은 산맥이 땅의 뼈대임을 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뼈대가 인체에 그러하듯이, 산맥이 세계에 견고성과 안정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 생리학자가 피의 순환상태를 이내 간파해내는 것은 체기體氣의 통로인 혈관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단 한 가지 사실, 즉 우주는 강물을 실어 나르는 강줄기들로 사방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과 나무, 수풀과 깃털은 동일한 차원에 속한다. 정치가들이나 청명한 하늘을 부르는 도술가들은 이를 익히 알고 있어서 여러 방도를 강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산의 수풀을 깎거나 수장이 자신의 몸에 난 털을 깎으면 빗물, 즉 능산적인 기운은 흘러내리기를 멈춘다. 여기서 생리학은 의술, 심리학은 역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소우주라는 세계체계는 모든 기호가 서로 연결되고 조응하는 관계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우주의 수많은 기호와 다양한 소우주의 분류체계에 통달하여,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조합하고 병용할 수 있는 자는 현자賢者와 명의名醫로 불릴 만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의 사유 세계체제 내에서는 완벽한 법칙으로 자신의 논리를 설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우주의 인식론은 (탁월한 혹은 궤변에 능한)학자, 역사가, 의사들의 고민을 해결해준다. 어떻게?

사가들과 심리학자들 또한 고심할 필요가 없었으니! 고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가계나 공자의 가계가 어떠한지, 또 공자의 정신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조기에 그것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공자는 물의 힘으로 군림하던 은나라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공자의 머리는 정상의 물구덩이처럼 움푹 파였다. 또한 물은 신장과 검은색과 상응한다. 공자의 안색은 매우 까무잡잡했으며(이는 깊이의 암시이기도 하다) 지혜가 신장에 상응하니 공자의 정신은 지혜를 특징으로 했다고 해석한다.

철학자들과 의사들 또한 고심할 필요가 더욱 없었으니! 신화적 분류방식이라는 이 경이로운 영역은 철학과 의술의 소관이었는데, 논지의 펼침을 직업으로 하는 그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제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 영역은 진단이나 판단소재, 치료비법이나 정신적 지침들을 무한정하게 제공한다. 또 이 영역은 대우주와 소우주에 관한 논쟁의 여지를 마련해주는가 하면, 그들이 안락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모든 묘책이나, 아니면 적어도 세상사의 흐름이 그러하니 만사형통을 절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도를 찾아낼 수도 있게 한다.

앞서 중국인들은 신화에서 사유의 표상적 제재와 방법을 빌려온다고 했다. 신화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이론을 내놓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다른 여러 분류목록들과의 조응관계를 타당하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그것을 가능했던 자들은 현자와 명의로 추앙 받았다. 결론적으로 중국인들은 끊임없이 정치政治와 기술技術로 그들의 사회형태를 관장하는 제반 규칙을 세계에 적용해 세계의 안배를 도모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종합적 앎이자 유일한 규칙이었다. 이 앎과 규칙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시하며 사물의 모든 동향을 알려준다. 예법의 준칙을 위배하는 존재는 불응과 무질서를 책동한다. 예법은 유일한 법이다. 우주의 질서는 이 예법에 힘입어 구현되었다. 다음 장부터는 그 우주의 질서, 예법을 배울 것이다. 예법이 우주宇宙를 구성하는 법칙임을 느낀다면, 그저 따분한 허례허식으로 보던 시선이 좀 바뀌지 않을까? 어찌 보면 우리가 우주를 스스로 구성하는 존재라는 말은 그저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사유체계 혹은 세계체제 하에선 진실이다. ()

'절기 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서 남산  (2) 2012.07.22
망종 남산  (0) 2012.06.19
소만 남산  (0) 2012.06.09
입하 남산  (0) 2012.06.06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_2  (0) 2012.05.29
Posted by 지장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