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역사2:쾌락의활용(나남신서137)(개정판)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미셸 푸코 (나남,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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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요

본 장(章)의 주제는 고대 그리스의 특징적 요소인 성인 남자와 소년과의 사랑이다. 미리 못박지만, 지금 동성애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나 담론은, 고대 그리스의 그것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진 남성 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화적 지반 위에 서있다. 이점을 이해해야 글이 쉽게 읽힐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소년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 같다. 성인 남성들은 소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허나 단지 그들이 인기 있는 연애 상대로써만 취급 받았다면 오해다. 소년은 장차 폴리스를 이끌어갈 지도자_시민으로써 키워져야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소년에게 있어 성인 남성과의 성적 관계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명예를 드높이는 기회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인 남성은 소년이 지니지 못한 조건(재능, 지위, 미덕)과 이익(금전, 지속적인 우애, 미래를 위한 사회적 뒷받침 등)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년은 성인 남성과의 교제를 통해 폴리스의 어엿한 시민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성적 관계의 능동_수동성 문제가 발생한다. 성인 남자와 소년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소년은 필연적으로 열등한 위치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회적 지위나 조건뿐만 아니라, 실제 성행위에서 체위의 형태로도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 사회가 강조하는 미덕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적 행위에서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데, 이는 장차 능동적인 폴리스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소년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서 소년의 모순이라는 딜레마가 발생하고, 철학적, 사회적인 논쟁으로 확대된다.

결국 여기서 벌어진 논쟁의 핵심은 어떻게 소년의 명예를 보호할 것인가?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소년을 사랑하는 것은 당시 용인된 관습이었고 금기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사랑 행위는 소년을 타락시키고, 이는 곧 미래의 도시국가를 이끌 청년을 양성하는 데 해가 되는 일이다. 철학자들은 논쟁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고자 했으며 그 결론은 사랑을 받되, 전략적인 행동 원칙에 의거해 거리를 두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또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우애의 관계, 즉 필리아로 전환함으로써 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한다.

결국 이 장의 핵심은 성(性)이 단순히 쾌락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의 제반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 중심에 개인의 주체화 과정이 담겨있다. 열등한 위치에 놓인 소년을 능동적인 주체로 만들기 위해 논의된 담론은, 고대 그리스 사회가 인간 존재의 주체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사유의 단면인 것이다.


문제적인 관계

그리스인들은 동성에 대한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을 배타적인 두 개의 선택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행동 유형으로서 대립시키지 않았다. (양성애적) 두 성향은 둘 다 있을 법한 것으로, 한 개인에게서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소년을 사랑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될 뿐만 아니라, 여론에 의해서도 수용되었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교제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각기 매우 다른 태도가 뒤섞여 있었다. 당시 아테네 인들이 이런 형태의 사랑에 적대적인지 호의적인지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단선적이고 도식적인 형태로는 이러한 양태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왜 그것이 특별한 그리고 강한 도덕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많은 논쟁적 주제를 낳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의문이 풀릴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남성과 남성간의 사랑을 특별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으나, 여성을 사랑할 때 요구되는 것과 다른 도덕적 형식 혹은 양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양식화의 과정에서 열띤 논쟁과 성찰, 사고가 발생한다.

1. 남성간의 사랑에 대한 주된 관심과 배려는 성장을 마친 연장자와 미숙한 젊은이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관계에 집중되었다.

2. 이 관계는 이미 실제로 널리 유포되어 인정받고 있는 비교적 복잡한 사회적 관습에 뿌리박고 있다. 성인남자와 소년을 결합시키는 관계들이 몇 가지 규칙을 강요하는 일종의 의식화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의식화의 내용은 <구애의 관습>으로 드러났다. 이 관습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의 역할을 결정한다. 각자는 자신의 전략대로 행동하며, 과도하거나 너무 쉽게 사랑에 휩쓸리면 안 된다. 이런 행동방식의 존재는 성인 남자와 소년의 성적관계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오히려 이런 관습은 성인남자와 소년 사이의 관계가 사회에서 미묘한 위기를 내포했음을 방증한다.

3. 소년과의 사랑은 부부간의 사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공간적으로 부부생활은 집 안팎이라는 이원적인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던 반면, 소년과의 사랑은 집회장과 거리 등 공간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또한 소년과의 사랑에 있어 가장 달콤한 것은 소년이 자발적으로 베풀어 주는 호의이다. 강제로 사랑을 빼앗고 쾌락을 즐기는 것은 스스로 그리 달갑지 못한 일이었다. 반면 결혼의 경우, 성적 쾌락과 그 활용의 문제는 남자에게 아내와 다른 사람들, 상속 재산, 전 가족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제기된다. 자발적인 베풂과 법적 관계의 거리는 매우 멀어 보인다. 여기에 소년과의 사랑이 훨씬 섬세한 전략이 필요했음을 엿볼 수 있다. 자발적으로 호의를 베풀게 하려면(꼬시려면) 얼마나 섬세해야 할까!

4. 소년과의 관계에서는 시기의 문제가 중요했다. 소년은 이제 나이를 먹어 청년이 되고, 더 이상 명예로운 파트너로 남아 있지 않는다. 그때 제기되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으로서, 곧 사라질 사랑의 관계를 가능한 한 우애, 즉 필리아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5. 소년과의 관계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연애술>의 영역이다. 부부생활에서는 결혼과 연관된 지위, 혈통 유지 등이 행동원칙과 절제의 형식을 결정한다. 반면 상호 독립적인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는 행동 조정의 원칙이 사랑하는 방식에 의해 제기된다. 가정관리술과 양생술에서는 남성의 자발적인 절제가 그 자신의 관계에 근거해 있다. 반면 연애술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제, 지배를 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여기에서 주된 관심은 소년이다. 의견과 조언, 규율은 모두 소년에게 방점이 찍힌다. 왜냐하면 소년은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 성장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 받는 대상의 연애술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소년이 폴리스의 미래이기 때문에..

 

소년의 명예

데모스테네스의 <에로스론>을 토대로 논의는 전개된다. 이 문헌에서 사랑에 대한 성찰과 <쾌락>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방식에 공통된 몇 가지 특징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1. 문헌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치욕>이다. 즉 청년의 행동은 치욕스러운 것과 합당한 것, 그리고 명예롭게 하는 것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에 특히 민감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도덕주의자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을 관찰하고 숨어서 바라보고, 그의 행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다.

2. 그리스 소년에게 평판의 문제는 미래의 결혼과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그 도시에서 앞으로 그가 차지할 자리, 지위와 관련된다. 도시에서 그가 차지할 수 있는 지위와 더불어 미래에 할 수 있는 그의 역할이 현재의 행동에 의해 시험 받고 평가된다.

3. 이 시험은 어디에 정확히 근거를 두고 있는가? 명예로운 것과 수치스러운 것의 구별은 사랑의 행위 영역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 말이 사랑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 애인의 추종을 받는다는 것은 명예로울 뿐만 아니라, 그의 자질의 가시적인 표식이었다. 요컨대 사랑을 주고 받되,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랑 자체는 절대적으로 좋거나 혹은 나쁘지 않다. 어떻게 실천하느냐 즉 <활용>하느냐가 주된 문제이다.

4. 이러한 상황에서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원칙은, 분별 있는 남성이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모든 자질들을 갖추는 것이다. 소년은 수동적으로 행동하거나, 어떤 행동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배 받아서도 안되며, 투쟁해보지 않고 굴복하거나, 다른 사람의 성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파트너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가 앞으로 차지할 지위와, 맺을 수 있는 유용한 관계들을 걱정하면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5. 소년이 이런 시험을 통과할 때 철학이 수행하는 역할은, <자기보다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철학은 자신 외에도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그 자체로서 철학은 지배의 원칙이다. 왜냐하면 사고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철학이며, 오로지 철학뿐이기 때문이다.

연애술에 있어 소년은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지배력을 입증해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에로스론>의 저자는 소년의 삶이 <공동의> 작품이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그리스인들에게서 소년의 사랑은 단순히 쾌락의 문제에 머물기 보다, 그리스 문화의 생성을 야기했다는데 핵심이 있다. 소년의 사랑을 둘러싸고 환심을 사는 행위, 도덕적 성찰, 철학적 금욕주의 등은 그리스 문화 형성의 중심을 이룬다.

쾌락의 대상

그리스 문화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차지한 원칙은 바로 성관계와 사회적 관계 사이의 동형성이다. 성관계가 삽입하는 자-능동성, 삽입당하는 자-수동성의 모델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성행위에서 명예로움이란 능동적이고 상위를 차지하여 삽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형성의 원칙에 의거해 삽입하는 자는 능동적이고 지배하고 승리하는 자로 인식된다. 당시 여성이나 노예는 의문의 여지없이 수동적 대상으로 여겨졌으나, 문제는 성적 행동에서 자유인인 남자(소년)이다. 남성간의 성적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수동적 지위를 획득하는 자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년의 지위는 난해하다. 소년은 성인 남성인 구애자에 비해 열등한 위치이다. 그럼에도 소년을 여성과 노예와 겹쳐놓을 수는 없다. 그는 확실히 금지된 대상은 아니다. 그래도 이 역할에 내재된 어려움 같은 것이 있다.

에즈키네스는 <티마르쿠스에 대한 반론>에서 남성의 나쁜 성적 행동이 정치적, 시민적 자격 박탈의 결과와 관련되어 있음을 소개한다. 티마르쿠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쾌락의 대상이라는 열등하고 치욕스러운 위치에 자신을 두고 모두에게 그런 자기 모습을 보여준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테네 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소년을 사랑하거나 젊었을 때 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받았던 어떤 사람에 의해 지배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에 다른 사람을 위한 쾌락의 대상이란 역할과 일체가 되었던 지도자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쾌락의 대상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남성의 남자 파트너들 중에서 합법적이고 명예로운 유일한 대상으로까지 인정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소년은 성인이 될 것이므로 언제나 지배의 형식 하에서 생각되는 이 관계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소년의 모순이다. 그가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남성이 되기 위해 확립해야 할 자신과의 관계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한 쾌락의 대상이 되는 관계 형태와는 일치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년이 자기 몸을 내맡겼을 때 아주 냉혹하게 비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는 다른 사람의 욕망과 요구에 동의하지만 항복과는 다른 감정의 움직임에 의해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의 관계에서 성행위는 가능한 한 성인 남자를 멀리 두려는 회피와 도주, 거부의 게임 속에서, 또한 성행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할지를 정하는 교환 과정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

, 어떻게 이 관계를 더 넓은 전체 속에 통합시키고, 다른 유형의 관계, 다시 말해 육체적 관계가 더 이상 중요성을 갖지 않고, 두 파트너가 동일한 감정과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안정된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소년애는 이 사랑을 결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소중한 관계, 즉 필리아의 관계로 변형시키는 토대가 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을 때만 도덕적으로 명예로울 수 있다.

다른 모든 성관계 이상으로 이것은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모든 것이 이에 대한 그들의 염려를 보여준다. 그들의 불안은 다른 사람과 가지는 쾌락과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권력에서 이번에는 지배자가 되어야 할 이 대상에게로 향한다.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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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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