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글쓰기의 욕망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글을 쓰지 않은 적은 없다. 중고등학교 작문, 대학교 리포트, 취업 자소서, 회사 기안문 등등. 게다가 일기나 기타 웹사이트에 끼적인 잡문 따위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글을 썼던 이유는 사회생활에서 쓰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시점에 또 무슨 글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내가 왜 이 문제를 제기하냐면, 예전에 다니던 직장도 글을 쓰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글은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안 쓰는 곳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글은 부차적인 수단으로써의 글이 아닌, 글 자체가 주업무를 가리킨다. 예컨대 내가 했던 일은 홍보대행사의 기획 편집 업무였다. 구체적으로 기업체의 사보, 브로슈어 같은 기업홍보 매체에 글을 썼다. 고교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으나 다 떨어지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운 좋게 입사한 일터였다. 그래도 주업무가 글을 쓰는 일이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까? 아무튼 회사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으나, 누구를 위한 글인지 또 무엇을 위한 글인지를 생각하면 회의가 들었다.

왜 그랬을까? 글이 대체 뭐길래. 당시 내가 쓰던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님에서 오는 불만족이었다. 회사 동료나 상사와의 스트레스 등도 간접 요인이었으나, 무엇이 선후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주변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 정확하게 내가 쓰는 글에 자존감이 있고, 어디 가서 이 글 내가 쓴 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인간관계는 오히려 개선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업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컨셉을 잡는 종류의 글은 나의 자존감 고양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끔씩은 괜찮은 아이디어로 호평도 받곤 했으나, 업무에 대한 호기심은 떨어졌다. ? 도대체 뭐가 문제지? 아직 신입인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가? 기자를 했으면 자존감 고양이 되었을까? 그 자존감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으나 결국은 업무가 미숙했던 게 컸던 것 같다. 글은 쓰고 싶은데 생각보다 역량은 딸리고 심적으로 위축되어, 이것 말고 다른 글을 쓰면 더 잘 할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다른 곳을 슬슬 기웃거렸다. 내가 원하는 건 도대체 뭐지? 막연하게 글을 쓰고는 싶은데, 막상 글 쓰는 업무를 해도 고개를 저으니 참 헛갈렸다. 그래, 글도 다 같은 글이 아니지 지금 기업체 홍보하는 일은 나를 위한 게 아니잖아? 나를 위한 글을 쓰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물론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절반은 무능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회사에 와서 제 역할을 못할 때의 존재상실감은 견디기 어려웠다. 예민해져서 자괴감은 갈수록 커졌고, 일을 잘 못한다 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절반은 내가 활약할 수 있는 글 쓰는 분야가 있을 거야 라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렇게 수유너머, 백수 케포이, 감이당까지 흘러왔다.


글을 쓰며 글쓰기의 길을 탐색하다

이곳은 참 편한 곳이다. 읽고 싶은 책 읽으라고 해, 글 써오면 꼼꼼히 첨삭해줘,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있어. 부족할 게 없다. 게다가 책을 쓰도록 독려해 생활의 안정까지 도모하니 정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와 이곳의 차이는 무엇이길래, 글을 써도 이렇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걸까? 물론 글의 소재와 주제와 지향점이 전혀 다르다. 기존의 회사에선 돈을 주고 글을 써도, 스스로 몸값을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월급은 꼬박꼬박 받았으나 성취감이 적었다. 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기분, 글을 쓰고 기획을 해도 그것이 클라이언트에게 먹히지 않을 때의 비루함이 참 싫었다. 뭐 무능한 거였다. 여기서도 그런 상황은 비슷하다. 에세이나 글을 써도 돌아오는 혹평들. 정말 내가 글 쓰고 산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는 건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운과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마침 내가 왔을 때, 수유너머에서 감이당이 분리되고 북드라망 등 글 쓰는 수요가 급증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에 운 좋게 여기에 합류했던 것이다. 물론 중간에 함께 하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사라졌으니, 나의 의지도 한 몫 함은 사실이다. 도대체 이전 직장에선 하지 못했던 글쓰기를 여기서 어쨌든 쓰며 생활하는데, 뭐가 나에게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지금 글쓰기의 방향성이 어쨌든 나와 부합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직장에서의 글을 그만하고, 여기서 글을 쓰는 것을 이어나가는 까닭이다.

인생의 의미, 막연하지만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기업광고와 홍보 업무에서 그러한 질문과 답을 찾을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거기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양명과 진구천의 대화에서 양명 선생은 사물을 떠나 학문을 닦으려 한다면 도리어 허공에 뜨게 된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든 배움은 가능하다고 하니, 그런 면에서 나는 어딘가에 나에게 꼭 맞는 배움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것 역시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현재 감이당에서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것이 나란 사람의 존재 의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태어나서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삶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왔다. 다만 그것을 찾지 못해 어떤 이는 인생을 허비하고 죽을 때 후회를 한다. 주변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만약 내가 저렇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얼마나 한심할까? 걱정했다. 내가 그들의 인생을 너무 가벼이 보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왜 인생은 짧은데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하지 못할까?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걸까? 귀찮고 피곤해서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경우야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런 합리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한번 생인데! 그러다 보니 관련 철학, 심리, 역사책을 읽었던 것 같고 그에 관한 잡문을 끼적였다. 막연하게 인생은 어디로 왔다 어디로 가는 건지 되뇌이며 괜히 센티멘탈해진 적도 많았던 것 같다. 대개는 여자 때문이었지만! 그러다 들른 곳이 우주와 존재의 탐구가 슬로건인 감이당이라니.. .. 어찌되었든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여기이니 저절로 그렇게 결론이 난다.

 

시원하게 혹은 답답해도 담담하게

결국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왜 태어났는지, 존재의 이유를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 너무 막연하다. 존재 혹은 인생의 의미가 왜 궁금한가? 그건 그만큼 일상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도 없어, 모임에선 싸워, 친구도 별로 없어, 직장도 있는 둥 없는 둥 해. 이거 뭐 인생이 이따위야?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벌받을 일이지만 어쩌랴. 생각처럼 되는 게 참 없었기 때문에 하늘과 우주에 대고 답 없는 질문을 공허하게 외쳤다. 저는 왜 태어났을까요? 태어났으면 무에라도 쓸모가 있을 게 분명할 텐데. 이렇게 안 풀리는 게 그저 제가 감당할 몫인가요? 그런가요?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모습을 혼자 되뇌이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홀로 생각했던 관점의 협소함을 느끼고, 놀라기도 하며 자존심 상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또 하나 배운 것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 인생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할 장을 만났으니, 그에 따른 상처는 감당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게 아닐까?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살펴보고 또 바꾸어나가고, 다시 글을 써서 나누고 그렇게 반복 반복하는 것. 또한 왜 그런 불만을 터뜨리는지 그걸 꼭 불만스러워해야 하는 건지? 이런 질문도 던짐으로써, 나 스스로 지닌 만족과 불만족,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한 전제가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주입된 것인지.. 그렇다면 굳이 내가 그것에 대해 파블로프의 개마냥 똑 같은 반응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양명 선생이 장군 유학자라는 점이 재미있었는데, 그런 독특한 이력이 그의 지행합일의 사상을 낳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전쟁터에서 전투하는데 있어 앎과 행동은 나뉠 수 없는 것이리라. 앎이 있으면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전장의 일상. 꼭 전쟁터만 그러하랴. 나의 삶 역시 매번 문제에 부닥치고 그것을 해명하는 전쟁과 별다를 게 없다. 글쓰기의 반복으로 내 안에서 꿈틀대는 장애물이 뭔지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삶의 장애물이 어떨 땐 그저 불편한 존재이나, 어떨 땐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인식의 눈, 마음의 폭을 넓게 해준 것도 글쓰기,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통한 주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럼 장애물은 장애물로만 보이지 않고 흥미로워지기까지 한다. 불만족에서 흥미진진함으로 세상이 달리 보일 때도 있으니, 이 또한 글 쓰는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불만족과 공허함을 습관적으로 느끼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딴죽을 걸고 싶어서이다. 예전에 툭하면 시원하게~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하고 다녔는데, 선배가 너의 그 말은 오히려 답답해~라고 들린다 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답답하고 불만스럽고 장애물로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명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불만족스러워하며 뜻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며, 한숨만 쉴 것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런 공허함과 장애물을 들이받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 별거 아니었네하고 느끼고 또 반복. 나에게 글 쓰는 일은 그런 것 같다. 결론은 시원하게 살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답답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연습하기 위해. 그래서 글을 쓰고 있다._()


2012/02/07 - [의역학(醫易學)] - 감이당 1학기 에세이_나는 왜 글을 쓰는가?


Posted by 지장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