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오가와 요코 (이레,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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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라면 고개부터 젓는다.
錢은 좋아하나, 數는 싫다.
이 무슨 소리인가.

수학자인 박사는 80분만 기억을 지속한다. 80분마다 기억이 리셋되고, 그 이전의 것은 지워진다. 그래서 나는 80분마다 그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박사의 하루는 자신의 양복 깃에 꽂아놓은 메모장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립으로 고정한 노란 포스트잇에는,
'내 기억은 80분만 지속된다' 기분이 어떨까.

행인지 불행인지, 박사의 관심은 오직 수학뿐이다.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오직 수의 광활한 우주에서 헤엄지는 것이 하루 일과. 그런 박사의 집에 10번째 파출부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관계맺는 방식이 있다. 속도로 따지면 처음 만나도 십년지기를 대하듯 금방 친해지는 사람이 있고, 반면 천천히 알아가는 사람도 있다. 스타일로 보면 그냥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술 먹으며 이야기하는걸 편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박사는 숫자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에게 파출부의 신발 사이즈와 태어날 때의 몸무게는 숫자 이상의 의미고, 왕년의 명투수 에나쓰 유타카의 등번호 28은 아름답고 신비한 완전수이다. 명료한 수의 법칙은 박사를 감동하게 하고, 무한한 수의 질서는 그를 숨죽이게 한다. 파출부의 아들은 이마가 평평해 루트 기호인 '루트'라는 애칭으로 불리지만, 박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다. '루트'가 루트 기호처럼 어떤 숫자도 가리지 않고 다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씨가 있는 아이임을.

박사와 파출부, 파출부의 아들인 루트. 세 사람이 80분마다 새로 시작하는 만남은 낯설고 기묘하다.  그 시간의 질감은 두텁다.

수백 시간을 만나도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80분의 만남을 즐겁게 반복하는 그들이 보고싶고, 야구장에 함께 가고 싶은 하루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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