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그레이트 게임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과 차르 치하의 러시아 간의 중앙아시아 쟁탈전을 다뤘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카슈가르,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게임의 주 무대이다.
현재 기준에서도 매우 생소한 이곳의 역사와 지리환경은 19세기 말에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자 서구문명이 침탈하지 못한 세계였다.

 

 

    [19세기 당시 아프가니스탄/페르시아 일대 지도]    

 

 

                         [게임 맵]

 

 

2. 왜 '그레이트 게임'인가?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 장교(라고 쓰고 공작원이라 읽는다)인 아서 코널리 대위에 의해 유명해진 말이다.
19세기 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나폴레옹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표면적으로 동맹관계였으나, 그 이면에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아시아의 부의 원천인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과 그것을 호시탐탐 노리는 러시아의 긴장관계 속에서,
그 사이에 자리잡은 중앙아시아 일대는 어느쪽이 영향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열거나 혹은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칸국'들에 양국의 젊은 장교들이 파견된다. 그들의 임무는 '칸국'을 자국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비밀사절 혹은 지리적 환경을 측량해 지도의 빈자리를 채워넣는 탐험가 역할이었다. 

이들이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벌인 약 40년간의 모험과 암투이자,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거나 혹은 이름모를 사막에 파묻혀 사라질지도 모르는 투쟁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이라 칭했던 것이다.

 


                                       [게임 컴포넌트]

 

*칸국 : 한국(汗國)이라 읽기도 하며, 칸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를 가리킴.

 

 

3.게임의 주요특징
2인 최적의 카드 드리븐(Card-Driven) 워게임이다. 
양 플레이어는 영국과 러시아를 각각 플레이한다. 게임종료 시점에 더 많은 영역을 컨트롤 하는 진영이 승리한다.

표면적으로 동맹국이기 때문에, 영국과 러시아 군대는 서로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벌일 수 없다. 

따라서 게임의 양상은 칸국을 이용한 '대리전'흐름으로 전개된다.
(유일한 예외는 카드 이벤트중 '크림 전쟁'을 발동시켰을 때만 가능하다. 실제로 그레이트 게임 기간 중, 크림 전쟁이 발발하여 양국은 충돌한다)
황혼의 투쟁이 전투유닛이 없는 영향력 기반으로 자본vs공산진영의 대리전을 치뤘다면, 그레이트 게임에는 전투유닛이 존재한다.

 

-이동
대리전이기 때문에, 여러 중립 칸국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방법은 일단 군대를 파견해 정복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사막과 거친 자연은 군대의 발길을 쉽게 허락치 않는다.
이동한 병력이 10이면 사막을 지날 경우에 두 개의 주사위 굴림 후 -1보정을 한다. 만약 주사위가 합계 7이 나오면 -1하여 6이 결과값이다. 
이때 병력 수 10에서 결과값 6을 빼면 나오는 4가 사막행군 중 낙오하거나 사망한 병력의 수다. 즉 사막 행군 후 남은 최종 병력은 6(=10-4)이 된다.

 

아무 생각없이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칸국을 정복하러 간다? 사막의 해골이 될 것이다. 
실제로 당시 러시아군이 칸국 중 하나인 히바(Khiva)를 점령하러 보낸 군대가 사막에서 허우적대다 적과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한 참담한 사례가 있다.

 


        [오렌부르크 기지를 출발하는 러시아 군대. 사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외교
그래서 이 게임은 단순히 병력을 뽑아 밀고 들어가는 진격 작전이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정복 작전 자체가 비효율적일 수 있다. 정복 말고도 효과적으로 칸국을 포섭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선수'들이 등장하게 된다.
게임에선 군대 유닛 외에 특수 유닛이 있는데, 리더 혹은 Officer(장교) 유닛이다. 이들이 앞서 언급했던 양국의 젊은 장교들로써, 실제 역사상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리더 유닛은 두 가지 능력이 있다. 택틱스(전술) 레벨과 디플로머시(외교 혹은 공작) 레벨이다.
전술 레벨은 전투때 영향을 미치고, 외교 레벨은 칸국을 포섭하는데 작동한다.

당시 전제국가였던 칸국들은 예측불허의 존재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이 심했다. 러시아 편에 붙는 듯 하면서도 영국 편에 서고, 우리 편인데도 어쩐지 미심쩍은 뭐 그런 존재여서 동맹국으론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이런 칸들을 상대로, 양국의 선수들은 매우 어려운 외교임무를 수행하러 파견된다. (뭐 어차피 회유와 협박 같은 공작이지만..)

 

게임에선 카드 이벤트 발동으로 요원이 보내진다. Emissary(밀사 혹은 특사) 카드 이벤트를 사용하면, 자신의 리더 유닛 1개를 선택해 원하는 칸국의 수도로 파견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매우 간단히 설정되어, 주사위 굴림으로 5이상이 나오면 칸국은 포섭된다. 
이때 리더 유닛의 외교 레벨이 주사위 굴림에 +보정을 한다. 파견된 유닛의 외교 레벨이 2이면 +2보정을 가해 주사위굴림이 3이상만 나와도 성공이다.

그러나 이때 상대방이 리액션 이벤트 발동으로 Spoiler(훼방꾼) 카드를 사용하면, 상대방 역시 자신의 리더 한 개를 파견해 훼방을 놓는다. 훼방은 역시 훼방놓는 리더의 외교 레벨을 상대방 주사위 굴림에 -보정을 가하는 걸로 표현했다. 칸의 환심을 사려는 치열한 대결 끝에 승리한 쪽은 칸국을 대리국으로 삼으며, 상대 요원을 죽일 수 있다. 패배한 유닛은 게임에서 영원히 제거된다. (사막의 구덩이 속에 파묻히다!)

 


[부하라의 아미르를 설득하기 위해 영국의 코널리 대위와 러시아의 시모니치 백작이 맞붙다]

 

-반란
칸국을 대리국으로 삼거나 정복한다고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문제다. 대리국으로 삼은 칸국은 상대방의 Emissary 공작의 대상이 되며, 정복한 칸국은 더욱 무시무시한 반란(Rebellion)의 타겟으로 지목된다. 기억하라,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은 매우 강인하고 투쟁적이다.. 우리편으로 여겼던 칸국들이 한 방에 홀라당 상대방에게 넘어가기 일쑤다.

 

정복당한 칸국에는 자신의 영향력 마커와 더불어, 불만(Discontent) 마커가 함께 놓인다.

피정복민들은 언제나 외국 침략자들을 뒤엎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게 당연하다.

이러한 불만을 이용해, 상대방 플레이어는 반란을 획책하고 유도하는 공작을 행할 수 있다.

반란 카드 이벤트를 사용해 정복당한 칸국을 지정하여, 반란 성공 주사위 굴림을 시도한다.
3이상이 나오면 반란은 성공하고, 반란군이 쏟아져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침공한 영국군. 주민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러시아는 반란 공작에 착수하다]

 

-전투
반란군을 언급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좀 독특하다. 어떤 군대가 전투부대에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능력치가 천지 차이로 바뀐다. 생각해보면, 대영제국과 러시아 같은 신식무기로 무장하고 고도로 훈련된 열강의 군대와 칸국의 병사들은 실질적으로 비교불가의 전력차를 보인다.
그것이 게임에 반영되었다. 전투는 병력 수에 전투 주사위굴림을 뺀 수치가 상대방에게 가하는 타격값이다.

자신의 병력이 10이고 전투 주사위굴림이 3이면 그 결과값인 7이 상대방이 입는 피해값이다.

 

그렇다면 전투 주사위 굴림이 낮게 나오는 것이 전투에 현저히 유리할 것이다. 앞에서 전투 주사위가 1이 나오면, 상대방이 입는 피해는 9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열강 군대의 강력함과 칸국의 허약함을 게임 시스템상으로 설정했다. 열강(영국과 러시아 군대)은 전투 주사위를 오직 1개만 굴리는 반면, 칸국은 무려 3개를 굴린다. 설상가상으로 더 적은 전투 주사위를 굴리는 진영 측이 선제타격이다.

 

10의 영국군과 15의 칸국이 맞닥뜨렸다. 10의 영국은 전투 주사위 한개로 4를 굴려(10-4) 6의 데미지를 칸국에 가한다. 칸국은 남은 9의 병력으로 공격한다. 3개의 전투 주사위 합계가 최소8이 나와야 겨우 1의 데미지를 영국군에게 가할 수 있다. 오 마이 갓!

이렇게 사실상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지만, 상대 열강이 이를 두고만 보지는 않는다. 이른바 영웅(Hero) 카드 이벤트의 발동이다. 열강은 전투 주사위 1개, 칸국은 3개를 굴리는데, 칸국에 열강의 리더 유닛이 포함되어 있으면 2개를 굴린다. 바로 '군사 고문'의 역할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영역에 있는 헤라트(Herat) 칸국을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헤라트 요새 안에는 영국인 장교인 '헤라트의 영웅' 포팅어 중위가 공작과 측량 임무로 파견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헤라트에 미치는 것을 우려한 포팅어는, 칸국의 병사들을 이끌어 철통같은 방어를 펼쳐 러시아 군대를 격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설마 영국인 장교가 헤라트에서 군사 고문 역할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러시아 군은 처참히 퇴각하고 만다.

 

어쨌든 간에, 열강의 화력은 압도적인게 분명하다. 사막의 고된 행군과 적국 장교의 훼방을 뚫고 결국 칸국을 무력 정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 반란군의 타겟이 되는데, 이들이 무시무시한 까닭은 전투 주사위를 열강과 똑같이 1개만 굴리기 때문이다. 반란 카드로 반란군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2개의 주사위 굴림 합계만큼 등장한다.

 

오직 전투 1라운드에만 (아마도 기습 효과로) 전투 주사위를 1개만 굴리고, 그 다음 부터는 보통 칸국 병사들이 그렇듯 3개씩을 굴린다. 반란이 일어나면, 대개는 그 지역에 열강의 군대는 별로 주둔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에선 병력 운용이 그렇게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반란군이 습격하면 그저.. 학살.. 차라리 정복하는 것보다 대리국으로 삼는 게 더 속 편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이 게임의 매력이라 본다. 직접 통치가 어려운 딜레마를 체험할 수 있다.

 


[헤라트에 침공한 러시아군에 맞선, 영국군 군사 고문 애벗 중위의 활약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세계의 지붕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파미르 고원.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 진행되던 이 시기에도 열강의 손길이 쉽사리 뻗치지 못한 은밀한 세계. 게임에서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 왜냐? 아직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 지도에도 그려지지 않은 지역이기에 그야말로 금단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Emissary 카드를 사용할 수도, 군대를 파견할 수도 없다. 오직 Ascend High Asia(세계의 지붕을 오르다) 카드를 발동시켜야만 비로소 출입이 가능하다.

 

게임에선 영국과 러시아 각각 2장씩의 Ascend High Asia 카드가 있다. 총 54장의 카드 덱에서 이 카드들은 총 4장(진영별 2장)이며, 덱은 매 턴 리셔플된다.
파미르 고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기 위해, 험준한 산악을 훑고 다닌 탐험가의 심정으로 덱을 휘저을 수밖에.
운 좋게 2장의 카드를 먼저 찾아서 내려놓으면, 자신만 이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인도로 가는 길이 더 쉽게 열릴 수도, 인도로 오는 길을 막을 수도 있으리라.

 


[파미르 고원을 탐사한 조지 헤이워드와 인도인 비밀정찰대 '펀디트' 요원]

 

 

4.레퍼런스
게임인 '그레이트 게임'을 설명하며 책 '그레이트 게임'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레이트 게임'은 피터 홉커크가 저술한 '그레이트 게임'의 완벽한 시뮬레이션이다.

게임 디자이너가 피터 홉커크의 책을 오마주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책에 서술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게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한 선수들의 모험과 영국과 러시아 양국의 치열한 암투가 게임 리더 유닛과 카드 이벤트에 적절히 반영되어 있다. 책 '그레이트 게임'은 그냥 읽어도 아주 매력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책 '그레이트 게임'은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함께 즐긴다면, 200%의 즐거움을 안겨주리라 확신한다.

 


        [피터 홉커크의 책 '그레이트 게임']

 

 

5.전반적 인상
-간단한 룰로 역사적 느낌을 잘 살렸다.
-주사위가 난무하는 워게임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대리전 워게임이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환경을 이동 룰로 잘 살렸다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역사적 배경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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