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3: 정월 대보름의 잔치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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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EBS '리얼프로젝트 X'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실험을 했다.

가상 감옥을 설정하고 죄수와 간수의 역할을 일반인들에게 부여한 것이다.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1970년대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실험을 재구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 여성의 상이한 인간관계 유형이었다.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나이'였다. 맨처음 나이를 확인하고 그제야 학교, 고향 등의 부가적 정보를 교환한다. 

이때 남성들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이 흐른다.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고 나서 한다는 말은.. '야!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였다.

비로소 팽팽한 긴장감은 탁~! 풀린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나이'는 확실히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구체적 신상파악보다, 

낯선 감방 분위기 혹은 자신의 기분을 살짜쿵 드러내며 친근함을 표시한다.


한의사 금오 김홍경 선생님의 글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거기에서 말하기를, 대중강의를 나가면 객석에 앉은 청중들 중, 남성들의 표정은 >_< 이렇단다.. 그럼 여성들은? ^0^ ㅎㅎ

남성들은 도끼눈을 부릅뜨고 언제라도 강사가 실수하기를 벼르는 듯하고, 여성들은 별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꺄아~하고

웃음을 떠뜨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요컨대 남성은 강사의 말이 그럴듯하면 선생으로 대접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네 까짓게 뭔데'라는 심산이다. 여성은 강사가 앞에 나가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여성 부분은.. 여성 분께서 상세한 답글을.. ^^)


단순화하면 남성은 수직 상하식 관계에 익숙하고 여성은 수평 좌우식 관계에 능하다고 할 수 있다. 

수직 서열의 관계는 구조가 분명하다. 나보다 위 아니면 아래다. 그것 말고 별로 고려할 요인이 없다. 

그렇기에 '나이'라는 한가지 정보의 획득만으로도 남성은 편안해진다. 아래에 있으면 동생으로써 형에게 굽히고, 

위에 자리하면 형으로써 동생을 돌보는 것. 자신의 롤플레잉 구축, 끝!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관계이다. 수평적 관계는 단순히 동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 사이에서 서열 혹은 권력관계는 항상 발생한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서열 외에도 고려해야하는 각종 요인이 더 있는 듯 하다. 홍루몽에 등장하는 아씨마님 왕희봉과 시첩 평아의 관계가 그렇다. 지아비 가련를 둘러싸고 본부인과 첩은 개와 고양이처럼 사이가 좋지 않을듯 한데, 둘 사이에선 별로 그런 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묘한 우정의 연대인듯한 느낌마저 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본부인과 첩이 남자의 사랑을 얻기위해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은 고금의 역사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사는 대부분 남성의 손에 쓰여진 것 아닌가? 물론 어느정도 사실이라 하더라도, (남자인 내가 보는) 기존의 시각, 즉

여성들은 오로지 남성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저들끼리 싸웠다! 라는 설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어쩌면 남성이 만들어낸 프레임, 혹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닐까? 


남성은 서열 하나만으로도 관계가 정리되는 단순명쾌(?)한 프레임을 가졌기에, 

남성이 보기에 여성들도 하나의 욕망 (예를 들면 사랑의 쟁취)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할거라고 지레 넘겨짚는 것은 아닌지..


여성의 관계맺음은 수평적이기에 더욱 복잡하고 생각보다 변수가 많은 것 같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희봉과 평아요,

전반적으로 홍루몽에 등장하는 대관원 자매들의 이야기인듯 싶다. 그래서 가보옥이 더욱 희한한 인물인 게다.

맨몸으로 덜렁 여성의 관계망에 들어온 남성! 스스로 여성의 영혼을 품었으나, 겉모습으로 인해 자매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해

가슴이 매번 갈갈이 찢겨 눈물짓는 도련님..


애니웨이.

고미숙 반장님께서 말씀하신 '여성성'에 대한 문제. 여성성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띠고 있는데,

우리는 특정한 몇 개의 깔때기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예컨대 정조관념, 모성, 요조숙녀 등.. 

주로 드라마 같은 매체로 확대재생산되는 가치이다. 그렇다면 그 또한 생래적인 것이기보다 제조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으로 그러한 인식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문득, 최지영 선생님이 후기에 언급하신 중세 사회 가치의 재발견도 이런 맥락에서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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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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