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꽃을저녁에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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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루쉰 (예문,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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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 이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거나 혹은 거대담론을 논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이들에게 던지는 힐문이다. 그럼 일상을 살라는 말에서의 일상의 정체는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해석하기 일쑤다. 어떤 이는 밥벌이 혹은 주변의 소소한 일을 챙기는 것이라 여기거나, 또 다른 이는 지행합일 즉,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삶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해석은 각자의 자유이나 적어도 나 자신이 타인에게 일상을 살라고 충고한다면 그 안에 뭔가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을 살라!는 명제는 또 하나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고 만다. 그건 마치 다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위로처럼 하나마나 한 말이다.

나는 일상을 살라는 말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든, 돈을 벌든, 애인을 굶기지 않든 간에 생각 없이 살지 말라는 얘기다. 일상을 살라는 말은 이상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상(理想)을 포기하고 현실 순응을 종용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일상을 살아! 라고 충고할 때, 현실의 장벽에 덤비지 말고 체념하라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귀신이 무서워 제 눈을 가리던 것에서, 눈을 부릅뜨고 귀신이 어떤 짓을 하는지 똑똑히 바라보는 행동의 전환이다. 이는 각성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얘기처럼, 어떤 풍파가 몰아 닥쳐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비루해 보였던 일상이 차곡차곡 모여 이상(理想)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만약 일상을 살라는 말에 그저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겠는가? 그 대가는 인생의 어느 순간 불현듯 닥쳐온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지!! 이럴 때는 회복하기 힘들다. 생각 없이 쌓여온 일상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럼 생각 있게 일상을 사는 것은 어떤 형태의 삶인지 추적해보자. 루쉰은 혁명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청년들에게 전사의 생명이란 귀중한 것이기에 생명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맹목적인 충동을 경계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루쉰은 대중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반대로 끈기 있는, 묵묵한 투쟁을 권했다. 생각이 있다면 소중한 생명을 아무렇게 내버리면 안 된다.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비록 숭고한 일이나, 그것은 생각이 짧다는 측면에서 아무 생각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이들과 별다를 바 없다. 그래서 루쉰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적군에 대한 투항이 아니라 깊은 땅굴 혹은 진지를 파고 버티는 참호전(塹壕戰)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 있게 일상을 사는 것은 현실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전쟁 상태를 유지하며 기회를 끊임없이 엿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참호에 버티고 서서, 적의 틈을 살펴 언제라도 돌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이렇게 하려면 내 일상의 모든 행위에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루쉰은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자기성찰이 돋보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위인이 되었을 터이다. 우리는 루쉰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져 봐야 한다. 혹 내가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조여야 한다. 그 방법으로 루쉰은 아주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즉,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생각 있는 일상이 구현되려면, 잡다한 생각과 지식을 솎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대가 밥그릇에 담긴 밥이란 물질의 존재여부를 회의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가 먹어보고 배가 부르는지 않는지를 보면 된다. 이처럼 생각하는 바 혹은 공부한 내용을 살아가며 직접 실험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생각은 과잉 되지 않고, 정신줄도 놓지 않으며, 일상을 살아간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으리라.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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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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