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한국문학전집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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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상 (문학과지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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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이상 作『날개』의 대단원에서 주인공이 뇌까리는 독백이다. 주인공인 ‘나’는 어떤 정신적 충격으로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가 서있는 곳은 모처의 건물 옥상. 왜 하필 옥상인가? 사람이 어떤 의지(意志)를 강렬하게 품으면, 무의식 중에 알 수 없는 힘이 그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실연 후 발길 닿는 대로 걸었는데 도달한 곳이 상처를 준 연인의 집이라던가 혹은 자살할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은 사람은 다리 위나 절벽같이 높은 곳으로 움직인다. 물론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 일상 속에서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나’는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돋았던’ 날개를 떠올린다. 예전에도 돋아났던 날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황망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걸은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은 매우 익숙한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는 심적으로 힘들 때마다 이 옥상을 찾아 날개를 상상하며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하고 외쳤을 것이다. 물론 마음 속으로.

이 에피소드가 들려주는 것은 인간의 행동패턴은 무한 반복되며,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얘기이다. ‘나’는 삶의 의지도 의욕도 전무한 백수이자 귀차니스트이다. 그가 줄곧 그런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은 다름아닌 그의 마음속에 ‘날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날개’는 날 수 있다는 희망찬 도약의 의미도,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그 무엇도 아니다. ‘날개’는 이처럼 희망과 죽음 양면을 상징한다. 날개가 온전하면 창공으로 비상해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날개가 부러지면 끝을 알 수 없는 바닥까지 급속도로 내팽개쳐지는 것이다. 극과 극의 양상이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상하의 방향만 다를 뿐, 이제까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상상하는 날개가 마약과도 같음은, 이것이 그 자신을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못하게 하는 ‘현상 유지’를 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수시로 옥상을 찾아 날개를 외치고 (정확히 말하면 외쳐 보고 싶었다) 조용히 내려왔을 터.

그가 조금이라도 강단이 있었다면 정말로 떨어져 다리 하나라도 분질러 졌을 것이다. 그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다른 행로가 열릴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 에피소드에서 얻은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인간은 자신이 가장 편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경험하고 해석한다. 그것은 단지 편의적이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지, 가장 현명하고 효과적이라서가 아니다. 이상의 살던 시대는 1930년대 일제 식민지가 고착화되던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더욱 식민지 현실에 암울해했다고 하고, 이상의『날개』같은 작품이 그것을 표현한 대표적 작품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암울한 시기와 태평성세가 따로 있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내가 처한 현실이 시궁창이면 지옥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궁창마저 안온하게 즐긴다면 영원히 시궁창 속의 현실을 벗어나기는 만무한 일이다. 『날개』를 읽으며 얻은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날개를 외치지 말고, 정말 ‘날아올라’ 보라고.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처럼 되든 안 되든 날려고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숨을 고르고,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생각만으론 ‘생각대로’ 절대 안된다.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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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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