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작심으로 실현된다

작심(作心). 작심삼일로 우리에게 익숙하나 그렇기에 때로는 불편한 단어이다. 결심(決心). 굳게 마음을 고쳐먹을 때 결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심과 결심은 언뜻 비슷해 보인다. 1979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가 있었다. 질문은, 장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는가? 그렇다면 그 목표를 기록해두었는가?였다. 그 결과 특별한 목표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84%, 목표는 있지만 그것을 종이에 적어두지는 않았다는 사람이 13%,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기록해두었다는 사람이 3%였다.[1] 익히 알려졌듯 목표를 종이에 적어놓은 3%의 학생이 10년 후 평균 소득에서 나머지 97%의 약 10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아예 목표가 없는 자는 논외로 하자. 목표가 있으나 기록하지는 않은 13%의 사람들이 결심한 이들이고, 10배 이상의 수입을 거둔 3%가 바로 작심한 사람들이다.

이 차이가 느껴지는가? 반짝하고 멋진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갈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서둘러 그것을 메모하는가 아니면 귀찮아 내버려두는가. 이 작은 습관이 10년 후 당신의 모습을 결정한다면? 이처럼 결심이 현실에 실질적으로 구현된 상태가 작심이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무형의 결심이, 기록된 유형의 작심을 만나 비로소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작심의 작(作)이 짓다, 기록하다인 것을 보면 글자를 만든 옛 사람들 또한 이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작심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기록하는 인간이다.

 

기록하는 인간은 전진할 수 있다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로 화제가 된 고려대학교 김예슬의 자퇴 선언은 기록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그가 처음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취업 장터로 전락한 대학을 비판하고 자퇴하여 새로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아예 대학을 가지 않고 대안공동체 등에서 배움을 쌓아가거나, 대학 중퇴를 고려하는 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김예슬의 경우는 따지고 보면 별로 새로울 게 없는 88만원 세대의 음울한 현실이자 자구책이다. 그럼에도 김예슬 선언이 새삼스럽게 이슈가 된 까닭은 분명하다. 그가 대자보를 붙여 만천하에 자신의 생각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김예슬은 작심하고 자신의 의견을 글로 기록함으로써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새롭게 짚어볼 수 있는 담론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발언은 김예슬 선언으로 고유명사화되어 진보 사회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한마디로 한 개인의 대학 자퇴가 사회 일각에 하나의 화두를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했으면 조용히 자퇴원서 쓰고 나가면 되건만 굳이 방방곡곡에 그 사실을 알렸다. 한편에선 이것 때문에 욕먹기도 한다. 잘난 체 한다고, 여론의 주목을 받아 튀어 보려 한다고. 나는 이렇게 비난하는 이들이 가련하다. 그들은 결심조차 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84%의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 저 멀리 전진하는 3%의 인간들을 군중 속에 꼭꼭 숨어 질투할 뿐이다. 사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는 약자이다.

김예슬 선언의 문구가 상징하듯 사회에 진정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김예슬처럼 기록하는 인간이다. 그는 싫든 좋든 자신의 발언을 앞으로 평생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록은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이다. 대담한 정신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 생애에 걸쳐 기록하며 전진한 인간은 역사에 항상 있어왔다.

 

기록하며 전진한 인간, 노신과 프리모 레비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과 이탈리아 출신의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기록하며 전진한 인간의 전형이다. 두 사람 모두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동시에 명망 있는 작가이다. 노신은 중국 근대화와 혁명의 한복판에서 싸운 전사이며, 레비는 2차 세계대전의 광기가 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다. 자세히 관찰하면 두 사람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다. 살아 생전 구금·체포·암살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으며(노신),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죽음보다 더한 삶을 견디는(레비) 등 공히 혹독한 시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불가능할법한 환경에서도 기록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노신은 논쟁의 명수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를 비판하고 억압하려는 세력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주된 적들은 민중혁명을 탄압하는 봉건지배층과 군벌, 그리고 혁명가를 가장하여 자기들의 잇속을 채우려는 가짜 혁명가였다. 이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위해 노신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분쇄해버리곤 했다. 그의 무기는 문예, 즉 글쓰기였다.『광인일기』,『아Q정전』등의 소설은 적의 폐부를 찌르는 노신의 투창이자 비수였다. 레비의『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의 경험을 기록한 작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음의 가스실로 ‘선발’되는 와중에도 그는 그 순간의 일을 꼼꼼히 적는다. 훗날 레비가 직접 밝히듯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임을 부정하게 하는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 그가 택한 무기 역시 글쓰기였다.

기록은 힘이 세다. 그것은 현실의 참상을 고발하는 증거물로 기능하기도 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단초이며, 잠들어있는 대중의 정신을 깨우는 각성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같은 기록이라도 권력에 야합하거나 인성(人性)을 타락하게 하는 것은 인류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다. 대체로 역사는 민중을 깨우거나 혹은 잠들게 하려는 두 기록 주체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상징적 인물이 노신과 레비이며, 그들이 위대한 이유이다.

 

전진하게 만드는 힘, 기억

이 귀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이 잊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의 경험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수용소는 사고가 아니라는 걸, 단순히 예기치 못한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2] (프리모 레비의 인터뷰 )

 

2차 대전 패망 후, 추축국을 형성해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독일 정부가 앞장서 자신들의 과오를 드러내고 사과한 반면, 일본은 조선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등 전쟁을 속죄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이후 독일은 이전의 적국이었던 영국·프랑스와 협력하여 유럽연합을 일구는 단초를 마련한 데 비해, 일본은 재무장을 위해 헌법 개정 등 새로운 군국주의의 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자는 같은 실수를 좀처럼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올바른 기록에 의해 뒷받침된다. 만약 독일 정부가 나치즘의 발호와 홀로코스트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면 그들의 기억 또한 다르게 형성되었으리라. 그렇게 잘못 형성된 인식은 과거를 미화하고 급기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게 한다.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올바로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한·일 양국간에 교과서 왜곡 논란이 제기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신이 일반 작가들보다 한 수 위인 것은 그의 소설과 잡문이 시공간을 초월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현실 인식-습관에 의해 굳어진 기억 혹은 고정관념-을 재점검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노신이 활약한 시기는 1910~30년대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 그런데도 오늘날 그를 다시 꺼내 읽을 수 밖에 없음은 이 시대를 사는 자의 불행이자 행운이다. 노신이 해부한 사회적 모순이 여전하기에 불행하며, 그를 읽음으로써 헤쳐나갈 수 있기에 행운인 것이다. 노신의 저작은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은폐된 사실과 왜곡된 기억을 의심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기억상실증 걸린 사회의 등짝을 후려치다

“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인데 창문도 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것이라 하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죽어 가므로 결코 죽음의 비애 같은 걸 느끼지 못할 걸세. 자네는 이 불행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구제될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 미안하지 않다고 여기나?”

“그러나 몇 사람이 깨어 일어난다면, 이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걸세”[3] (노신과 전현동(錢玄同)의 대화 )

 

노신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중국과 중국인의 인성(人性) 비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읽는 나에게는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의 상(像)이 겹쳐진다. 이는 내 눈이 밝아서라기보다 노신의 비판이 그만큼 보편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노신의 소설『복을 비는 제사(祝福)』는 압도적인 스펙터클 속에 묻힌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인간을 그렸다. 작품의 배경인 루진(魯鎭)에서는 연말 집집마다 복을 비는 제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복례(福禮)는 다가오는 새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일년 중 가장 성대한 의식이다. 샹린(祥林)댁은 주인집의 식모이다. 그는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의 상징이 중첩되어있는 캐릭터이다. 가부장제하의 여성, 사회가 터부시하는 과부,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는 장애인이 샹린댁이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시동생의 혼수자금마련을 위해 물건처럼 거래되고, 과부라 꺼림칙하게 받아들여지고,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마을 사람들에게서 놀림 받는다. 복을 비는 제사에서 샹린댁은 철저히 배제된다. 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터지고 제사가 절정에 이를 즈음, 그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어디선가 쓸쓸히 죽어간다.

이 대목에서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스펙터클이 떠올랐다. 온 국민의 시선이 붉은 축제의 물결에 쏠려있던 그 무더운 여름날,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이 벌어졌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대한민국 16강 진출의 감격 속에 한 스님은 자신의 몸을 불살랐고 다른 스님은 죄책감에 종적을 감췄으며, 방송과 언론의 목줄은 점점 죄어지고 있다. 한편에선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나 다른 곳에서 어떤 이는 생사의 기로에 처한다. 3세계 도시 빈민들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컨퍼런스, 국빈 방문, 스포츠 행사, 미녀 선발대회, 페스티벌-를 두려워한다. 이로 인해 당국이 주도하는 도시 대청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계가 자기네 나라의 슬럼을 보는 것을 싫어하고, 슬럼 주민들도 정부가 자기네 나라의 슬럼을 보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들을 쓰레기내지 그림자 취급하는 것을 알고 있다.[4]

도시 빈민들과 샹린댁, 그리고 지금도 잊혀짐을 강요 받는 자들은 우리 사회의 변방에 드리워진 슬픈 그림자이다. 샹린댁이 제사상 차리는 것을 도우려 하자 주인댁이 부정 탈까 두려워 저지하는 장면은 노신이 창출한 상황과 인물의 보편성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가거라, 말할 수 없어 애달픈 그림자야! 어찌 그림자 따위가 신성한 제사상에 기웃거린단 말이냐! 노신의 작품은 이렇게 과거의 박제(剝製)가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되짚게 하는 생물(生物)이다. 그래서 노신을 읽으면 채찍으로 등줄기를 얻어맞아 정신이 번쩍 드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기록이 길이다, 희망이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 - 페퇴피 샹돌 (헝가리의 서정시인) <희망> 中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5] (고향 )

 

노신은 제도의 개혁 못지않게 인간 의식 개조가 시급하다고 여겨 의사의 길을 버리고 문예를 택한다. 중국 대륙에서 혁명은 줄곧 일어났으나 혁명가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반혁명가는 혁명가에게 죽는다. 비혁명가는, 혁명가로 간주되어 반혁명가에게 죽든가, 반혁명가로 간주되어 혁명가에게 죽든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혁명가 또는 반혁명가에게 죽는[6] 행태가 돌고 돌았다. 그는 기록하는 행위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지름길임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새로운 혁명이 도래해도 민중의식이 각성하지 못하면 혁명은 곧 반혁명이 됨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노신은 희망과 절망 모두 허망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상을 꿈꾸었으나 현실을 떠난 이상을 말하지 않았으며, 현실에 절망하되 현실의 가변성을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절망하지 않았다.[7] 눈앞의 현실에서 자행되는 인간을 인간의 노예로 삼고자 하는 시도에 맞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철저한 리얼리스트였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록하는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것이다. 그가 터놓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길은 더 넓혀지고, 희망은 현실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잘못을 아무리 기억하고 기록해도 전쟁과 학살, 착취는 인류 역사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노신처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에 충실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대개는 자신들의 당면한 앞가림하기에도 벅차다. 기껏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해도, 개인의 안위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인들이 정치에 냉소를 보내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다. 매번 당하고서도 선거철만 되면 집단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마냥 또 찍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어디 투표행태뿐인가? 지금은 많이 퇴조하였으나 몇 년 전만 해도 잘 먹혔던 지역감정 조장이나,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불거진 반복되는 레드 콤플렉스와 군국주의의 환영을 느끼게 하는 자칭 애국·보수단체들의 폭력적 집단행동 등. 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게 했으면 이렇게 될 수 없다. 고로 새롭게 기록하고 재삼 기억할 것은 차고도 넘친다.

이 시대의 진시황히틀러를 꿈꾸는 자들이 책 수백 권을 불사른다면 우리는 수천 권 써내면 된다. 방송국에 낙하산 인사를 투하하고 불온한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언론인들을 자르면, 우리는 <시사IN>같은 독립매체가 더 많이 탄생하도록 후원하면 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사회는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 자유로운 기록행위의 수호가 필수조건인 것이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이폰과 트위터 같은 디지털 웹의 발전은 새로운 기록과 소통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1인 블로그 미디어는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모두가 일상에서 기록하는 인간이 될 때, 진정으로 다원화한 사회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함을 뜻하기도 한다. 획일적 교육 시스템에 얽매인 인간 유형이 아닌 그야말로 자기만의 색깔을 빛내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통용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기록하는 존재로 자신을 갈고 닦으려면 평소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생각한 후에 글을 쓸 수도 있으나,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며 무엇보다 기록하는 존재와 어울린다. 두 번째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원심력을 발휘해야 한다. 혈연·학연·지연으로 얽힌 집단관계망에서 우리는 좀처럼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집단의 논리에 반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그런 생각을 기록하는 일은 위험하다.

노신이 평생 적막함을 토로한 것은, 그가 어느 당파 혹은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련(左聯·중국좌익작가연맹)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면 어느 곳에라도 달려갔으나, 그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는 않았다. 그는 근본적으로 홀로 투쟁했다. 인간의 노예근성을 타파하는데 뜻을 함께하면 누구와도 벗이 되었고, 이에 반하면 적으로 삼고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혼자 갔지만 함께 걸어간 노신이다. 기록하는 존재로 거듭나려면 이렇게 단단히 작심해야 한다. 물론 그만큼 존재를 걸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_(끝)



[1] 강헌구, 2008, <가슴 뛰는 삶>, 쌤 앤 파커스 p108~109

[2] 프리모 레비, 2007,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p284

[3] 루쉰, 2009, <루쉰 소설 전집>, 을유문화사 p15

[4] 마이크 데이비스, 2007,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돌베개

[5] 루쉰, 2009, <루쉰 소설 전집>, 을유문화사, p113

[6] 루쉰, 1991,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창, p98

[7] 유세종, 2009, <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 한신대학교 출판부, p259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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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검은 고양이 메롱~ 2010.07.28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얘기긴 합니다만, 독일과 일본의 차이라...

    독일은 동 프랑크왕국을 거쳐 오랜 지역적 연방의 형태를 띄다가 영주들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형태로 국가가 자리잡고 후일 오스트리아 왕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영역 경쟁을 거쳐 그 정통성을 프로이센 왕국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직도 독일은 연방국가이자 지방색이 살아 있는 독특한(물론 이탈리아나 스페인 정도는 아니지만...)문화를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일본은 달라요. 고대, 소가씨 가문(백제계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에 의해 왕권이 몰락하고 이후 제후와 사무라이들의 난립으로 인해 왕이란 그저 이름만 있을 뿐 국가는 완벽한 붕괴를 맞게 됩니다. 때문에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를 새로 건국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거예요.

    단순히 국가의 틀을 세우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도 없는 땅에 국가라는 걸 만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한국인들은 모르는 거죠.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몰이해는 근본적으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걸 알고 일본을 보면 일본이 왜 억지를 부리는지 보이는 것이고 만약 이걸 모르거나 경시 한다면 일본은 침략에만 미친 싸이코 집단이 되는 거예요. 일본의 역사는 2000여년이 아니라 150년 입니다. 왕권과 정통성이 무려 4000여년간 유지되어 온 한국의 기준으로 일본을 보면 절대 안됩니다.

    메이지유신 이전엔 일본이란 국호는 거의 허울에 불과했고 정작 일본인들조차 일본이란 국호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였으니.....

    일본의 역사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150년 입니다!! 그 기준에서 일본이란 국가를 봐주세요 .

  2. 검은 고양이 메롱~ 2010.07.28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 다시 말해 독일의 정통성이란 모토를 달게된 프로이센은 유럽 안의 국가로써 러시아 왕국과 오스트리아 왕국(예전엔 강대국이었죠), 프랑스 및 브리튼과 경쟁했지만

    일본, 다시 말해 메이지유신 이후 건국된 일본은 아시아 내의 국가란 개념도 그다지 필요 없었고(지금이라면 몰라도 당시엔 아시아란 명칭 자체가 유럽인들의 작위적인 구분이었으니 당연했겠죠) 영토의 제한적 인식 개념 자체도 없었으며(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는 그야말로 영토확장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영해까지 포함하면 일본의 영토는 세계 5~6위쯤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가 아니라 현재 이렇단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능가해요. 다시 말해 영해까지 포함한 일본영토는 브라질이나 호주와 맞먹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양성 보다는 그저 우리는 하나라는 국가적 목표가 절실했습니다.

    일본 축구를 보면 일본의 괴리를 알 수 있죠. 고구려 문양인 삼족오(까마귀는 원래 하늘과 태양의 상징으로써 북방 기마민족들의 신앙에서 비롯됩니다.)를 가슴에 달고 툭하면 탈아시아를 외치고 있죠? 근데 이걸 잘 살펴보면 축구실력에서만 말하는 탈아시아가 아닙니다.

    축구에 비유하긴 했지만 일본은 100년도 넘은 전부터 툭하면 탈아시아를 외치던 나라입니다. 그게 왜 그랬을까요? 그저 주변국가나 아시아가 싫어서일까요? 그건 아닐겁니다.

    탈아시아를 줄기차게 주장했던 일본의 기록자와 신흥국가로써 기존 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던 프로이센의 기록자..... 물론 필요에 따라 왜곡을 한 잘못이 크긴 하지만 이건 누가 착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단정 짓기만 할 것이 못됩니다.

    예전에 김용옥 선생이 그러셨던가요? 일본을 가르칠 나라는 전세계에서 오직 한국 밖에 없다고!
    맞는 말씀입니다. 누가 착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말하기 이전에 일본이

    일본이란 국호를 실제로 쓰고 있고(조선의 원래 발음은 주신이라 하고 이를 풀이하면 해뜨는 나라란 뜻이라고 합니다. 결국 조선과 일본은 같은 의미란 말이죠)

    삼족오 문양을 활용해서 쓰고 있으며(까마귀 전설은 중국에 내려와도 삼족오 문양은 중국에 없습니다. 오히려 까마귀가 나오는 중국 신화도 북방 기미민족들의 문화가 중국에 전파되었다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부인하고 버리려 했던 아시아 국가란 인식을 오히려 한국은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시아의 입장에서 세계로 진출하려한 면이 있죠(일본과는 정반대입니다).

    더구나 현재, 일본인들이 탈아시아를 외치며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일본의 사회와 기업이 오히려 조선인들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사람들을 강제징용하고 살해한 대가로 성장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 만큼

    일본인들은 장차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표석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귀기울여야 함은 당연합니다.

    동시에 우리도 그만큼 일본을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겠죠.

  3.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9.02.06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존재한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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