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강호(江湖)에 대중지성 문하생 16인이 집결했다. 2학기 에세이 발표를 위해서다. 이제는 12일 합숙이다. 이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만의 논리와 사유를 녹여낸 소설과 에세이로 실력을 선보일 작정이다. 세상은 월드컵 16강의 붉은 물결로 출렁였으나, 이곳 발표현장은 엄정한 비평과 칼날 같은 지적으로 또한 피바다를 이뤘다. 1학기와 달리 합숙으로 치러진 까닭은 한 사람당 보다 밀도 있는 해부를 위해서다. 이들은 아침 먹고 발표·비평하고 다시 점심 먹고 발표·비평하는 등 신체의 감각을 한 점에 집중했다. 이를테면 비평의 극한을 추구한다고 할까? 따라서 어설픈 주장이나 논리 전개는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2학기 주제는 문학과 근대. 그 동안 루쉰, 나츠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같은 문인들의 주요 저작을 읽고 공부했다. 그들의 가치관과 사유의 깊이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가, 그 고민의 흔적이 발표 현장에서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운명의 발표 순서는 공명정대하게 제비 뽑기로 정해졌다. 1번부터 16번까지 순서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끊임없다. 중간이 좋다느니 뒤에 걸리면 안 좋다느니 곧 닥칠 파란도 아랑곳없이 시시콜콜 쑥덕공론이 한창이다. 그런 한가한 시간도 잠시. 1번 당첨자 시성이 자기 글을 읽어 내려가자 학인(學人)들은 잠시 잊었던 자신들의 숙명을 깨달은 듯 좌중에 일순 긴장감이 감돈다. 시성의 낭독이 끝나고 문하생간에 비평이 오간다. 이렇게 썼으면 더 괜찮았겠다, 이건 좋았다 저건 어땠다.. 말이 잦아들어 상황이 정리되고, 드디어 잠자코 있던 고미숙 선생께서 느릿느릿 입을 연다. .. 시성이는 말이야.. 특유의 느릿한 말투이나 신랄하게 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선생의 비평은 듣는 이를 아프게 하는 만큼 귀를 바싹 기울이게 한다. 정신적 충격을 다소 받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훤해지고 눈이 밝아지는 듯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비난과 비평의 차이점을!


의사가 환자를 1:1 집도하듯, 고미숙 선생께서는 문하생들이 각각 처한 상태에 따라 논평했다. 학인 강지영에게는 살을 찌우라는 특명을 내렸고, 김일곤에게는 소심증에서 벗어나게끔 엑셀을 마구 밟으라고 했으며, 정아림에게는 기억의 프레임을 바꾸라고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독자들은 알아듣기 어려우리라. 궁금하신 이들은 해당하는 이들에게 묻거나 그들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궁리해보시라! 무엇보다 생각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선생은 강조하셨다. 깊이 사유하지 아니하니 통찰은커녕 글발이 허약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내 글에 가해진 비평이 그러하다. 글쓰기를 수단으로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욕망이 앞서니, 사유의 깊이가 얄팍하고 그저 잘 팔리는 문장을 구사한다. 즉 속된말로 술술 읽히나 남는 것은 없는 빈 껍데기 글이 내 모습인 게다.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내실이 다져진다. 화려한 아포리즘과 언어 유희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딱 하게 된다. 이것이 필시 무게중심이 잡히는 것 아닐까? 깊이 있게 사유하며 정신을 단련하고, 동시에 튼튼한 신체를 만드는 일. 이것이 곧 수행(修行)이며 이런 성장의 고통이 서사요 사건이다, 그게 다 고스란히 글이 되는 게다라는 고미숙 선생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글은 수행한 정도가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삶과 글은 떼어놓을 수 없다. 아니 삶이 곧 글이다.


한편 이번 발표회에서 특히 감동받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치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자기 방구석을 쓰레기통으로 만들면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태도가 모여 나와 내 주변, 나아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합숙은 끝났다. 꿀맛 같은 1주간의 방학을 뒤로 하고 문하생들은 3학기를 바라고 있다. 3학기 에세이는 어쩐지 23일로 추진될 것 같은 예언(?)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 이번 2학기 우수 에세이로 뽑힌 3인의 글을 소개해야겠다. 2학기를 성실히 공부한 보고서라는 평을 받은 강민혁 학인의 에세이가 2연속 수상했으며, 논어의 에피소드를 작품화한 류시성과 논픽션 같은 느낌을 준 김면수의 소설이 그것이다. , 그럼 이제 작품을 읽어보도록 하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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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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