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고미숙 (그린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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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라고 하면 한가해 보일지 모르나 한국사회에서 백수만큼 바쁜 존재도 없다. 일이 많아서 바쁘다기 보다, 불안과 스트레스라는 감정노동을 감당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은 고미숙 샘의 말씀을 빌리면 ‘망상’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백수일 때도, 백수가 아닐 때에도 매사에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할 때 온몸을 던지지 않고 언제라도 아닐 경우, 빠져 나오기 위해 한 다리만 걸치고 있던 셈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서 수영을 배울 수 없고, 차일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연속적으로 Delay된 인생을 살아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요새 우스개 소리로 ‘아마 우린 안될 거야’ 시리즈가 유명하다. 그 말에 네티즌들이 열광(?)하고 나 또한 피식 웃음짓는 걸 보니, 정말 우리는 만사에 열심이지 않고 결국 안될 거라는 것을 암암리에 인정하지 않았나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에 가슴이 답답했던 것은, 그도 결국 주류 사회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가는구나, 결국 이놈의 세상은 바뀔 수 없어! 소용없어! 하는 체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쿵푸를 왜 하는가?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아닌가.

  ‘지옥에 다녀오지 않으면 지옥이 무서운 법이다. 다녀오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 상태가 바로 천국이다.’라고 고미숙 샘은 말한다. 5월 20일 수요일 첫 강의 주제인 ‘호모 쿵푸스’는 지옥문턱에 들어서기 위한 워밍업이라 할 수 있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물은 것처럼, 지옥문턱으로 가는 길에 동행하겠느냐 라는 동의를 구하는 장이기도 하다. 8주라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백수들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릴 것이다. 막상 신청했는데 별거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곳에 오면 뭔가 인생이 확~ 바뀔 것 같았는데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질문거리를 생각할 때, ‘삶에 필요한 최소비용의 마련’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도대체 공부만 해서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고미숙 샘은 단박에 일갈한다. ‘알아서 해야 한다.’ 개인의 삶에 필요한 비용은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벌고, 벌 수 있는 능력이 못되면 그에 맞게 삶을 변형해야 한다. 최소비용에 대한 질문은, 극명하게 말하면 지금 이 공부(백수 케포이필리아)가 돈벌이에 도움이 되겠느냐 라는 말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생계에 도움이 될 거라면 애초에 학원이나 스터디 그룹을 찾아갔을 거라고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다. 쿵푸의 장에 온전히 합류하려면 이제 이런 식의 질문은 버려야 한다. 풍덩 물에 빠지고 열렬히 들이대야 한다. 최소한 8주만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보다 수준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고, 재미가 늘어날 것이리라. 분명한 것은 지옥에 다녀오지 않으면 평생 지옥의 공포에 시달린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시절이 좋아 백수 동무라는 빽도 있지 않은가.

  중년의 우울증과 노년의 허망함은 사실 청년 때부터 싹트기 마련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되었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순 ‘느낌’에 머무르는 것이다. 스스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신체에 경고신호가 들어와도 그것이 빨간 불인지 파란 불인지 해석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깊은 질문을 하지 못하고 한탄만 하다,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거야’ 라고 운명론에 귀의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동조하기 보다, ‘쓸데없는 고민 접고 먹고 살 걱정이나 하라’고 다그친다. 이 지독한 변절! 현재 여기 참여한 백수 동무들은 그래도 감이 완전히 떨어진 것은 아니라 느껴진다. 그렇기에 몸을 움직여 우리가 서로 만난 것 아니겠는가. 쿵푸는 결코 혼자 배우지 않는다. 함께 수련을 하는 동무들과 상호작용하며 우주와 인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그 수준을 높인다. 고미숙 샘은 청년백수 케포이 또한 ‘자생적으로’ 모이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백수라는 사회의 잉여존재가 되어 하는 수 없이 모이게 된 그들. 그들이 ‘쿵푸’ 수련을 통해 능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무림인으로 거듭난다면 비로소 자유의 숨결을 한 모금 맛보는 것이리라.

  고미숙 샘은 ‘백수는 경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저것 달고 다니면 그 이는 백수의 자격이 없다. 주변의 시선, 불필요한 스트레스 등 잡다한 짐들을 버려야 가벼워진다. 유목민, 게릴라가 짐 한 보따리씩 들고 다니는가? 신체를 가볍게 하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며, 마음을 비우는 것은 열린 의식으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백수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수유 강좌가 열리는 시각은 보통 오전 10시경이다. 이 시간에 꼬박꼬박 오는 것도 어지간한 의지가 아니면 쉽지 않다. 일주일에 적게는 3일, 많게는 5일을 아침마다 수유+너머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신체를 변화하는 일이다. 솔직히 선생님이 강의하는 수업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운 것을 통해 백수 동학들과 어울리며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더 기대한다. 나는 내가 지닌 개성으로 그 화학반응의 한 가지 촉매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다. 청년 백수를 위한 케포이필리아 게시판, 토론방이 우리 백수 동학들이 진행한 화학실험의 흔적으로 찐하게 남기 바란다.

  ‘아빠, 해는 왜 떠? 아빠, 사람은 왜 살아?’ 귀여운 딸내미가 둥그런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묻는다. ‘그런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어서 학원 갈 준비해!’ 이러면 대략 난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어릴 때 이런 철학적(?) 질문을 부모님 혹은 선생님께 한 번이라도 했을 터, 그리고 혼난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앞서 쿵푸를 한다는 것은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인생을 성찰하는 것이다라고 거창하게 늘어놓았는데, 사실 그 말은 별 거 아니다. 뭣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인 게다. 장차 내가 아빠가 되면 나는 얼버무려 넘어가는 무식한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자녀를 인도하고 싶다. 그런데 배워야 뭘 떠들 것 아닌가. 나 자신이 무슨 존재인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데 답을 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냥 애꿎은 딸내미에게 찌질하게 짜증을 내겠지. 자본에 얽히는 삶은 자본축적의 ‘양적 팽창’은 있어도 삶의 ‘질적 전환’은 이룰 수 없다. 이런 질적 전환을 위해서, 또 딸내미에게 바람직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쿵푸!

  무술을 배우기 위해 바로 무술 동작을 익히지 않는다. 영화 ‘취권’을 보면 밥짓고, 물긷고, 빨래하는 허드렛일부터 출발한다. 백수에게 쿵푸를 배우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지각하지 않고, 약속 잘 지키고 뭐 이런 거다. 밥짓고 물긷다 보면 저절로 무술에 필요한 능력을 얻듯이, 백수 케포이를 꾸준히 제 시간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쿵푸의 도(道)는 몸 속에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나오는 것이 90%다’라는 고미숙 샘의 말을 기억하자. 첫 번째 강의가 끝나고 오며 가며 백수 동학들에게 강의 소감을 물었다. ‘저자 직강이라 좋았다’, ‘책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접 얘기를 들으니 더 생생했다’라는 긍정적 반응이 있었다. 한편 상호 토론으로 수다를 많이 떨 줄 알았는데 강의 위주라 역동성이 떨어졌고, 강의 중간에 궁금한 것을 묻기에는 답변이 너무 길었다라는 점이 아쉬웠다는 얘기도 들렸다. 어찌 되었든 간에, 강의 형식이든 뭐든 정해진 틀은 원래 없다. 아쉬움이 있으면 방법을 모색해 개선을 제안하고 그렇게 바꿔나가면 된다. 그것도 누가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 제기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쿵푸를 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

  그냥 아쉬운 마음에 좀더 적으면.. 노 전 대통령은 떠났으나 그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걸 잊지 않겠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딴지일보-인간 노무현을 보내며(좋은 글 링크)
2009/05/17 - [나를 찾는 글쓰기] - 백수 통신-수유+너머 '청년백수 케포이필리아' OT 후기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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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케포이필리아? 이름부터 낯설다. 그러나 반갑다. ‘백수’라는 감추고 싶은 정체성을 내놓고 만날 수 있다니 이런 좋은 기회가 있을까. 마치 뱀파이어들이 낮에는 못 다니고 밤에 활개를 치는 것처럼,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백수라는 정체성으로 벌건 대낮에 활동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와 같은 처지의 백수들이 어둠 속에 은신하고 있었고, 그들이 서로 만나고픈 욕구는 생각보다 강했나 보다. 사회가 백수를 바라보는 눈길은 뱀파이어를 보는 것 못지않게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미네르바가 체포되었을 당시 모 일간지가 그를 ‘30대 무직자’라고 보도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무직자’라는 단어가 주는 감흥에 이끌려, 미네르바를 덮어놓고 ‘별 것도 아닌 놈’으로 잠깐이나마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백수’, ‘무직자’라는 단어는 주홍글씨처럼 사람의 존엄성을 팍팍 깎아 내린다. 한국사회에서는 아무리 사상과 인격이 고매해도, 당신이 ‘백수’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사회의 낙오자일 뿐이다.

  그 동안 백수들은 뭉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진 집단이었다. 왜냐하면 ‘백수 탈출’을 목표로 하는 그들은 같은 종족인 ‘백수’를 경쟁에서 탈락시켜야 하는 숙명이 있기 때문이다. 기껏 모임이라고 해야 잠재적 적군인 ‘백수 동료’와 ‘전략적 동맹’을 맺는 스터디 그룹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자의든 타의든 백수가 된 이들이 ‘취업’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공부’에 모여들었다.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등산과 요가를 강제하고,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빵을 굽고 사주 명리학을 배우고 영화를 찍는다. 벌써부터 언론에서 난리란다. 백수들이 모여 무슨 ‘작당’을 하나 예의 주시하는 모양이다. 솔직히 백수 3개월 차인 나도 반신반의인 심정이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 집단을 찾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참여자들도 대략 비슷하지 않을 성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게 모여든 천하 강호의 백수 제현들이 그 동안 해왔던 것처럼 취업공부를 위한 학원의 문을 두드리거나, 취업 사이트를 클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수에게 금쪽같은 15만원이라는 돈을 백수 모임에 과감히 투자한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욕구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남산 108계단 언덕 위에 자리잡은 수유+너머 ‘산채’를 지난 5월 13일 (목) 오전 10시 30분에 방문했다. 백수 케포이필리아의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날이었다. 동족을 만나는 설렘이었을까. 살짝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공간플러스로 입장한다. 들어가는 길에 매니저 (?) 3명이 등산, 요가 중 택 1과 동아리 (영화제작, 제빵, 사주명리학)를 선택하라고 한다.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하겠다. 공간플러스 안에는 이미 다수의 동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를 몰래 훔쳐보는 어색한 눈빛이 오가고, 곧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눈치가 느껴졌다. “백수 생활하는 것도 시대가 좋아졌어요.” 담임이신 고미숙 샘의 말이다. 예전에는 백수 생활이 더 고달팠는데, 그만큼 내놓고 나 백수요~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물론 그렇기는 하나, 이렇게 백수들이 양지에서 청년백수의 간판을 내걸고 회합도 갖고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이런걸 역사의 진보(?)라고 해야 할지? ^^ 동지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나이로는 히말라야를 다녀온 10대 동생부터 30대 후반 형님 누님이 계셨고, 3개월차 파릇한 백수부터 5년차 베테랑 백수까지 백수 경력의 스펙트럼 또한 깊고도 넓었다. 이 중에는 1~2년 회사의 간만 잠깐 보고 백수로 전향한 나 같은 ‘풋내기’와, 10년 이상 직장을 다니다 컴백한 ‘풍운아’도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며 왜 이 곳에 왔는가 구구절절 각자의 사연을 늘어 놓는데,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참가자 한 분께서 한 마디로 정리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다들 외롭고 심심해서 온 것 아닙니까.’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서 왔으리라. 직장이 더 이상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시대에, 그렇게 원치 않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것을 끝내기 위해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문득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전파한 ‘클레멘테 코스’가 떠오른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로 알려진 얼 쇼리스는 노숙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밥 한끼와 잠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밥 한끼는 한 순간의 끼니를 해소할 수 있지만, 내가 살아갈 존재 의미를 알지 못하면 매 순간 밥 한끼를 구걸하는 처지에 머물 것이다.

  솔직히 나도 이 집단에 참여하는 중에, 이미 몇몇 회사에 취업원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합격한다면 도중 이탈할 수도 있다. 물론 아무 곳에나 지원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취업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 별 목표도 없이 일단 ‘취업하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취업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사에서 일하며 괴롭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끝없는 고민만 낳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한 두 달 지나다 보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라도 그만두기 쉽지 않다. 경험상으로 정말 못할 짓이다. 열라게 올라왔는데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하는 개그가 있다. 결국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할 친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하면 대개 ‘철없는 녀석’ 취급 당하기 일쑤이다. 오호라, 통탄할 일이라! 그래서 기본적으로 백수는 무지 외롭다. 그리고 심심하다. 고미숙 샘은 백수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발생한다. 친구가 없다! 취업한 친구들은 바빠서 못 만나고, 또 만나자니 자존심 상한다. 둘째, 내놓고 활동할 수 없다. 이런저런 모임에 끼는 것에 소심해진다. 셋째, 자기 긍정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머리를 쥐어 뜯는다. 자학에 빠져 심각한 우울증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 해결책으로 백수 케포이필리아에서는 ‘몸’을 바꿔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 취업한 친구들은 백수를 부러워한다. ‘난 네가 부러워, 넌 시간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잖아. 난 야근에 너무 바쁘고 어쩌구 저쩌구..’ 콱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그래도 참는다. 고미숙 샘은 시간이 많다고 곧 그것이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일침을 가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백수의 신분을 취득한 이후, 시간은 많아졌지만 빈둥대는 일이 늘어났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것 같다. 늘어가는 것은 눈치요, 쌓여가는 것은 스트레스다. 즉 구속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그렇기에 백수 케포이에서는 백수들을 혹독하게 다룰 (?) 예정이란다. 의무적으로 주 1회 이상 산을 타야 하고, 요가를 해 뼈마디를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리고 시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10분 늦으면 기다려주고 이런 거 없는 거다. 백수는 너무나도 자기주도적인 생활 패턴 때문에 시간 개념이 희박하다. 이 날도 1/3이 지각을 했다. 약속한 시간에 가차없이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이다! 자기소개를 들어보면 꽤 많은 이들이 건강이 좋지 않음을 언급했다. 오랜 회사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 그리고 백수 생활로 접어들며 무절제한 습관 등이 한데 뭉쳐 더욱 안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기 위한 첫 번째 자산은 ‘건강’이라고 고미숙 샘은 말하였다. 건강해야 비로소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등산과 요가 등의 몸 혁명 프로젝트는 이런 뜻에서 나온 것이리라.

  앞으로 강의는 지정된 책을 읽고 질의응답 위주로 진행한단다. 어차피 강사 분들이 하고 싶은 말은 책에 다 해놓을 터이고, 우리는 책을 읽고 보다 궁금한 점을 물으며 상호 토론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매니저들의 면면 또한 이채롭기 그지없다. 별호부터 특이하다. 장금이, 퉁그스탄, 시성. 장금이님은 사주명리학, 퉁그스탄-퉁님은 영화제작, 시성 (맞나요?)님은 제빵과 등산을 동시에 담당한다. 제빵을 실질적으로 맡은 사장님은 현재 현지기술 취득을 위해 일본에 계신다고 한다. 이 분들의 면모는 강좌를 거듭해가며 조금씩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나는 사주명리학 동아리라서 장금이님이 알려준 교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기 출판사에서 간행한 ‘음양이 뭐지’, ‘오행은 뭘까’,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 이렇게 3권이다. 사주 명리학은 아주 간단히 말해 자신의 본성을 찾도록 돕는 학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생긴 것이 다르고, 성격, 능력도 제 각각이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야구에선 1할 타자에 불과하다. 즉 사람은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본성을 잘 활용해야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을 안내하는 것이 사주 명리학 같다. 사주 명리학을 배우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들어선 것 같다. 설렌다. 다음 주 모임부터 본격적으로 강좌가 시작된다. 백수 동학들과 함께 코뮌을 조직한다는 것,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나 이미 시동은 걸렸다. 재미있을 것이다.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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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포드의 Black 컬러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색상의 자동차도 구입할 수 있소. 그것이 검은색에 한해서라면 말이오. 이렇게 말한 이는 다름아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포드였다.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였던 포드는 오늘날 그 위상이 많이 하락했지만, 산업화에 막 들어선 20세기 초에는 근대 제조업의 규범으로 통했다. 포드의 성공 비밀은 표준화였다.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체제는 당시 미국 노동시장 조건과 실용주의 가치관과 맞물려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디즘은 이제 흘러간 과거의 유산에 불과하다.


맥도널드

맥도널드의 Red & Yellow 컬러



삼성

삼성의 Blue 컬러



바디샵

바디샵의 Green 컬러



  21세기의 기업들이 브랜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성공의 비밀은 개인을 위한 맞춤제작과 개성의 창출에 달려있다. 컬러 스마트의 저자인 미미 쿠퍼는 제품에 대한 첫인상의 60%가 색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는 색상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맞춤경험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색에 관한 기업과 소비자의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색은 생리적 각성과 정서적 경험을 동시에 유발하는 강력한 마케팅 단서이다. 또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삼성의 상징색인 파랑, 맥도널드의 빨강과 노랑으로 이뤄진 입간판과 황금색 아치, 바디샵의 초록빛 매장을 살펴보면 각각의 색은 연관된 기업과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고 특정 이미지와 정서를 유발한다. 오감 중에서도 시각은 인간이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지배적인 감각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색상은 브랜드 경험의 구성 요소로서 아름다움, 지속성, 생생한 느낌 등을 경험하게 하는 핵심적인 도구이다. 다시 말해 색상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핵심적인 정보를 인지하게 하는 신호로 작동한다. 기업의 기술력은 갈수록 평준화되었고 가격경쟁이 한계를 드러낸 시점에, 기업들은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감성을 활용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색상이 제품선택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티파니

티파니의 Skyblue 컬러



까르티에

까르티에의 Pink 컬러



에르메스

에르메스의 Orange 컬러



  색은 제품이나 기업의 특징에 맞는 상징적 색상 선택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차별화를 추구한다. 회사나 브랜드의 로고와 포장은 고유색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 전달에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실제로 세계적인 브랜드는 하나같이 상품용기나 포장지에 고유색을 사용, 소비자에게 특정상표 사용에 대한 자부심을 부여한다. 티파니의 하늘색, 샤넬의 검정색과 금색, 까르티에의 붉은 와인색, 에르메스의 주황색 포장지와 상자 등이 그것이다. 또 세계적으로 이름난 정기 간행물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표지색으로 표지를 꾸미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 가지 색을 고수해온 결과, 사람들에게 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타임은 빨강색,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노란색, 독일의 슈피겔은 주홍색, 지오는 크롬그린을 사용하여 독자가 색만으로 한눈에 그 책을 알아보게 한다.

타임

타임의 Red 컬러



내셔널 지오그래픽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Yellow 컬러



지오

지오의 Green 컬러



  이렇게 색이 기업과 브랜드의 가치와 의미를 상징하는 시대에 포드의 관점은 그야말로 전근대적이다. 포드는 색채를 기능성과 경제성이라는 실용주의적 사고로 바라봤다. 색을 자동차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차체의 내구성을 증대시키는 부식방지 처리를 위한 수단 정도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GM과 크라이슬러 등의 경쟁사들이 다양한 색상의 차체를 선보이며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아 가자, 포드도 다양한 컬러의 모델을 통해 오랫동안 지켜온 정책에 일대 수정을 가하게 된다. 색이 우위인 시대로 비로소 들어선 것이다.

참고문헌
- 컬러마케팅 / I.R.I 색채연구소 / 영진닷컴
- 색채와 디자인 비즈니스 / 권영걸 / 국제
- 색의 유혹 1, 2 / 에바 헬러 / 예담
- 디자인 + 마케팅 / 이장우, 김보영 / 21세기북스
- 감성디자인 감성브랜딩 / 마크 고베 / 김앤김북스
- 오감 브랜딩 / 마틴 린드스트롬 / 랜덤하우스 중앙
- 정서마케팅 / 안광호 / appletree tales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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