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아웃 (Screen out)
농구에서 상대 팀 선수들보다 먼저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 즉 상대 팀 선수들을 골밑 지역에서 밀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박스아웃 (box out)이라고도 한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는다. 목적지 까지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이기에, 오늘도 방해없이 앉아서 가길 바란다. 멀리 버스가 온다. 가시권에 버스가 등장할 때,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은 술렁인다. 마치 슈팅을 한 공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갈 때, 빗나간 공을 따내기 위해 자리를 잡는 선수들 처럼.

내가 항상 이용하는 버스는 그 시각, 그 정류장에 도착할 무렵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봤을 때 1-2개의 자리가 남아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1등으로 출입문 앞에 서지 못하면 1시간 이상 서서 가야하기 때문에. 그 명백한 사실을 떠올리면 투쟁심이 생긴다. 

 

Dennis Rodman

왕년의 '리바운드왕' 데니스 로드맨이 그랬다고 하지. 자신은 주요 선수들의 슈팅 메커니즘을 분석해, 공이 림에 빗맞아 어디쯤에 떨어질지 예측했다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목표 버스가 어느 지점에 Stop하는지 감이 온다. 문제는 치열한 몸싸움에서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

박스아웃이 안돼.. 자리 싸움에서 밀려.. 골밑 리바운드가 상대팀에 털리는 팀 팬들의 푸념을 종종 듣는다. 농구 보면서 가장 화나는 때는, 어이없는 실책도.. 뜬금없는 에어볼도 아닌 오펜스 리바운드를 헌납할 때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낯선 불청객들이 들어와 헤집고 가는 불쾌함 때문인 듯 하다. 주어진 내 권리를 올바로 행사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농락당하는 느낌. 

박스아웃은 기본기라고 한다. 또한 투쟁심이라고 한다. 내 집에서는 함부로 날뛰지 못해, 내 마음을 갖고 장난칠 수는 없어. 라고 확실히 선을 긋는 것이기도 하다.

대개 버스 자리 쟁탈하는 박스아웃 성적은 나쁘지 않다. 졸립고 피곤한 아침 출근길에, 서서 갈 수도 있다는 짜증스러움이 피곤함마저 앗아가버린다. 그러나 치열한 몸싸움에 지쳐서인지, 자리에서 1시간 남짓 수면을 취하고 상쾌함보다는 몽롱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 중심을 잡지 못할 때 곧잘 방황한다. 이런저런 인간관계에서 비롯하는 앞(뒷) 담화들, 그리고 현실에 대한 회의와 앞날에 대한 불안함으로 메말라간다. 그런저런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문득 버스 탈 때 치열하게 몸싸움을 전개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버스자리 쟁탈하는 박스아웃만 신경썼지, 내 인생, 내 마음을 조이는 박스아웃은 안드로메다로 내다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Eddie Curry

거대한 체구에 비해 골밑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에디 커리 같은 선수를 바라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나 역시 삶에서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박스아웃을 하지 않고 정신줄을 놓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나는 무엇을 위해 간절한 투쟁심으로 박스아웃을 준비하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곧잘 올라오는 '제 2의 IMF', '실업자 더욱 증가' 이런 소식을 보고 있자면, '지금 나는 그래도 다행이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소스라친다. 언제부터 이렇게 안전지향 주의자가 되었는가..

박스아웃이 필요하다. 목적성있는 박스아웃. 그건 다른 말로 '꿈을 향한 준비성, 열정'을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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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보면서 차츰 공놀이 그 이상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런 단상을 걍 적어봤습니다. 실은.. 아침에 버스탈 때 '지금 내가 하는 게 박스아웃 하는 것과 똑같네?' 하는 자각에서.. 여러분도 인생에서 박스아웃 잘하시어, 원하는 농구공 (목표)을 콱 움켜쥐시기 바랍니다. 꿈, 사랑 등..

리바운드를 잡는 그 순간 부터, 우리의 '공격'은 시작되지요, 암요. 공격 방식은 '런&건'이든, '하프코트 오펜스'이든.. 그건 여러분 스타일대로 ^^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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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다. 꾸준함은 자연스러움이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 알아서 다하는 모범생의 행동양식이다. 꾸준함은 타고난 천성의 영향도 있으나,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꾸준함을 완성하는 훈련 단계에는 '꾸역꾸역'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꾸역꾸역'은 자연스럽지 않다. '빼빼마른 그는 살찌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세 공기째 먹어치우고 있다.' 처럼, 싫어도 어떤 목적을 위해 '억지로' 하는 행위를 표현할 때 '꾸역꾸역'을 쓴다. 좀더 예를 들어보자. '꾸역꾸역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더니, 몸이 좋아졌구나.', '꾸역꾸역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100권을 채웠다.' 어떻게 보면 무식하고 단순하다. 어감 조차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꾸역꾸역의 억지스러움이 결국 꾸준함의 자유를 안겨준다. 엄격한 통제와 절제가 결국에 자유를 안겨준다는 말이다. 자유와 통제는 상반된 개념이나, 이런 면에서 한 뿌리인 듯 하다.

애서가와 독서가는 서로 다르듯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직접 습작하는 것 또한 의미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채우는 연습을 하다보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행동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아직 나는 꾸역꾸역 글쓰기를 한다고 말한다. 꾸역꾸역 글쓰기로 꾸준한 행동양식을 습득하는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스스로를 꾸역꾸역이라는 고치에 가두어 충분히 숙성한 후, 고치를 열고 나와 날아오르는 나비를 꿈꾼다.

대충 마음을 탐색하는 글이 주를 이룰 것 같다. 섬세한 마음의 감수성을 잡아내는 데 나는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고고학자라 블로그 제목을 잡은 것도 그렇다. 고대 유물을 발굴하려면 깊이, 오래 땅을 파야 하는데 마음 역시 마찬가지인 듯 하다. 깊이, 인내심있게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마음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를 자처하려고 한다. 고대 유물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비함을 전해주었다면, 그 보다 더 놀라운 마음의 세계를 길어올려 사람들과 나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마음세계를 탐사하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세계여행을 떠날 때도 비행기, 뱃편, 자전거, 캠핑카, 도보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듯이, 마음 또한 그렇다. 단지 훨씬 간단할 뿐이다. 노트는 무한히 열려있는 여행지이며, 연필은 운송수단, 혹은 마음이라는 말랑하면서도 때로는 딱딱히 굳은 땅을 발굴하는 곡괭이다.

마음을 찾아가는 고고학자의 여정이다보니 글은 되도록이면 백스페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기술'의 스타일로 쓰려고 한다. 단, 보시는 분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사후 퇴고를 하려고 한다. 티스토리에 첫 블로깅을 하는데, 지금까지 항상 처음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뭔가 '제대로' 하고픈 욕심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블로그 제목을 짓고, 주인장 사진을 올리고, 뭐 이런 것들. 부수적인 것에 신경쓰다보면 금방 마음이 지친다. 최초의 목적은 또 사라진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디자인 요소에 신경쓰기 보다, '꾸역꾸역' 마음을 기록하는 일에 초점을 두려 한다. 디자인이 휑해도 이해하시기를.

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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