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 스산한 가을바람소리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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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은 탄식한다. 어째 여자는 결혼하고 나면 맑던 눈이 죽은 동태 눈깔이 되냐고!? 이는 여성 비하가 아니다. 남자도 다를 바 없다. 단지 보옥에게 남자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Skip할 뿐.. 결혼하면 3단 변신을 하는 여성, 즉 혼인하는 남녀는 그 순간 제도에 포섭되어 탈바꿈한다. 보옥이는 나이가 어리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르기에, 제도나 국가, 문명의 성립과정 등에 대해서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론이 아닌 본능으로 문명과 제도의 악습을 은연중에 감지한다.

원일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면, 보옥이는 탐미주의자이다. 그 자체가 자연스러움의 현현이라할만큼 (뭐.. 실제로 돌의 환생이니)
자연/非자연을 통찰하는 감각이 타고났다. 그 일례가 결혼한 여자 혐오증이다. 아니 결혼이 도대체 왜?

누가 그랬던가.. 인간사를 엿보고 싶으면 남녀 사이를 관찰하고, 가장 농밀한 감정의 교감을 느끼려면 남녀간의 사랑을 경험하라고.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결혼은 어떤가. 결혼은 제도일 뿐이다. 규격화된 양식에 인간의 욕망을 구겨 넣으려다 보니 다툼과 갈등이 발생한다. 오직 인간만이 이러한 틀에 자신들을 가둔다. 흠.. 이런 것이 '인간다운'건가? 어쩌면 결혼이야말로 보옥의 눈에는, 자연에서 난 인간을 가장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도구에 다름 아니리라.

보옥이는 대옥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만, 그것은 그녀와 1:1로 결합해 소유 및 독점하려는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독점욕은 대옥이가 더 강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보차와 보옥의 금옥인연을 의식하고, 보옥과 맺어지기를 바라면서도
스스로 아닌 척(!) 하기에 바쁘다. 가끔씩 혼인 이야기나 보옥이 짓궃은 농담을 하면 얼굴이 새빨개져 Over하며 성낸다.
보옥이가 대옥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녀가 보옥 못지않게, 세상의 규격화된 틀에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두사람 모두 입신양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데 뜻을 같이한다. 이 점은 습인이 보옥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 출세하기를
권하는 면과 상반된다.

그런 지점에서 보옥과 대옥은 서로에게 知己이다. 세상의 틀에 맞추기 보다 자연스런 '자기다움'에 내맡기는 것을 그들은 환영한다. 대옥의 그런 모습은 향릉에게 詩를 가르칠 때 드러난다. 시를 짓는 데는 정형화된 운율보다 立意가 중요하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지? 하지만 성性에서 만큼은 대옥이는 보옥이와 같지 않다. 보옥이는 그 점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아.. 성욕만큼은 참으로 제어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인간의 욕정 중 가장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하는 말이 틀리지 않는가 보다. 
소유와 독점을 동반한 대옥이의 성욕은 그 스스로를 점점 힘들게 몰아간다. 
욕구가 깔때기마냥 한 점으로 쏠리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것은 자신을 병들게 한다. 대옥이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궁금하면 다음 회를 보시라.. ;;

애니웨이.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사랑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집착, 질투, 시기, 소유, 번뇌 등등..' 그 모든 것을 빼면 '사랑'이 남을 거라는 이야기.
보옥은 마치 사랑은 '자연'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만물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사그러지듯,
그것을 바라보며 맘껏 즐기고 맘껏 슬퍼하라고 외치는 것 같다. 소유욕과 독점하고픈 사랑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버림 받을 것에 대한 불안함..

두려움은 담膽이 약해서 생긴다. 오장육부 중 육부에 속하는 담은 '중정지관中正之官'이라 이름한다. 사리사욕없이 공평무사한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바로 사리사욕을 다스려야 한다. 자, 보라! 소유욕과 독점하고픈 사랑의 실체를! 그것이 바로 사리사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상대가 어떻든간에 자기 마음만 만족하면 장땡이라는 이기심과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치졸함을 공평무사한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하면 질투, 집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하고 너무 쉽게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한다. 한의학에서는 담기膽氣가 왕성해야 다른 11개의 장부가 비로소
활동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을 자연답게 하는 것은 바로 담이 주관하는 '공평무사한 마음' 즉.. 통제하는 것이 아닌 Let it be~

그럼 어떻게 '자연'의 '공평무사함을 느낄 수 있을까?
하나의 깔때기로 욕망을 환원하는 버릇을 바꾸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이 한 일이 그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문장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일련의 활동들은 우주만물과 소통하는 접속면을 끊임없이
넓히는 일이다. 그제서야 숟가락은 단지 밥먹는 도구로만 보이지 않고, 남녀는 그저 성욕의 대상만이 아닌 게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한 가지라면.. 오직 그것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다행히도 앞선 예술가들께서 다양한 창을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그 형형색색의 창으로 우주를 다채롭게 경험하고 즐기고 또 '사랑'할 수 있으리라.

그때.. 홀연히 인생은 풍부하고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보옥이는 겉으로는 연약해보이나 실은 담력이 충만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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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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