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 스산한 가을바람소리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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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삼저의 팜므파탈스러운 자태가 화제였던 지난 시간..
그녀가 가련과 가진을 바라보며 혀을 끌끌 차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 사촌형제는 주색 두 글자만 알았지, 실상은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찌질이에 불과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우삼저를 희롱하려고 했으나, 되레 그녀에게 희롱당하고 만다.

'그래요! 우리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구요!' 대담하고 저돌적인 우삼저의 언행에 당황한 가씨 형제는 오히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한마디로 잘못 걸린 셈이다. 하룻밤의 노리개로 우삼저를 데리고 놀 요량이었으나, 그녀는 스스로 상황을 주도한다. 
가씨 형제는 왜 충격을 먹었을까? 맘대로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대상이, 자신들의 통제력을 훨씬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통제를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잡아 먹힐 것' 같은 두려움이 그들을 휩싸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우삼저는 혀를 찬다. 제대로 놀지 못하는 가씨 형제들, 이것은 그들이 '관계맺기'에 서툴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삼저가 솜씨를 부려 시험해 본 결과, 그들 두 형제는 어떠한 식견이나 재주도 전혀 없고, 입으로 그럴듯한 농담 한마디 대꾸하지 못하는 위인들이었다. 그저 주색 두 글자나 아는 정도였다. (홍루몽 65회, p158)

그들 형제는 돈과 권력을 미끼로 주색에는 이골이 난 자들이다.하지만 막상 우삼저와 대면해서는 말 한마디 뻥긋 못한다. 
아니, 많이 놀아본 그들이 도대체 왜? 그들이 지금껏 놀았다고 하는 것은 상대가 배제된 '자기 위주'의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정확히 언급이 되지는 않으나, 짐작하건대 돈과 권력이 있으니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희롱하고 욕구를 채웠을 거라고 여겨진다. 거기에는 상대방을 유혹하는 지점이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원하기만 하면 여자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유혹할 필요조차 없는 게다. 그것은 유혹의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유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곧 찌질이를 말한다. ;;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유혹력(?)이 없으면, 짝을 맺을 수 없고 그것은 바로 도태된다는 의미..

그러니 우삼저와 맞닥뜨린 상황은, 가씨 형제에게 있어서는 접해보지 않은 카오스의 세계와 다름없다. 이거 뭐 어찌할 바를 모를 수밖에! 그 동안은 여자들이 알아서 비위를 맞춰주고 알량거렸는데, 우삼저는 전혀 다른 신체를 가진 인물이었다. 넋을 놓고 그저 '희롱을 당하는 그들'! 짝짓기의 차원에서는 참 매력없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가씨 형제가 그렇게 된 것은 '혼자 놀기'에 길들여져서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온갖 잡스런 놀이를 해봤음에도, 뜯어보면 그것은 혼자 '야동'을 보며 욕구를 해소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으나, 그 온실을 벗어나면 바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가련이 끊임없이 여자들을 탐하는 것은, 그만큼 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빈곤함을 보여준다. 그건 결코 조르바나 카사노바가 아니라, 그저 아랫도리의 욕구만 밝히는 자들인 것..

주색가와 풍류가의 차이점은 바로 혼자 노느냐, 같이 노느냐로 가름되지 않을까?
자기의 욕구만 해소하려는 자는 주색가일 것이요, 상대와 함께 공명하며 즐기는 자는 풍류가~
어찌보면 비슷해 보이나,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논다'라는 개념도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논다라는 말은 '바깥', '야외'에서 노는 것인 반면에, 요즘에는 '집안' '실내'에서 노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노는 것은 비슷하다. 한국인은 게임방에서 게임을 해도, 혼자 하는 게임보다, '멀티 플레이'를 더 즐긴다고 하니 말이다. 큰 차이점은 '살'을 부비느냐의 여부이다.

함께 살을 맞대고 숨결을 느끼며 뒹굴던 것에서, 모니터 채팅창에 깜빡이는 문자를 보며 즐긴다.
이것은 커다란 감각의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는 주색가로 가는가, 아니면 풍류가로 가는가? 뭐가 좋다 나쁘다라고 단정하기 이전에,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는 것도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우삼저와 같은 상황과 맞닥뜨려 속수무책으로 '희롱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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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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