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 스산한 가을바람소리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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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삼저의 자결로 유상련은 망연자실한다. 넋놓고 방안에서 가만히 있노라니 죽었던 우삼저가 홀연 나타났다 사라지고,
주변은 어느새 낯선 절간이었으며 곁에는 절름발이 도사가 쉬고 있을 뿐이었다. 황망한 가운데 상련은 도사에게 묻는다.

"이곳이 어디이옵니까? 선사의 법명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오. 그저 잠시 다리를 쉬고 있을 뿐이오."
유상련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디찬 기운이 뼛속을 스며드는 듯하였다. 그는 곧바로 원앙검의 웅검을 꺼내
자신의 온갖 번뇌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단번에 잘라버리고 도사를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홍루몽 66회 p187)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가?! 기이한 유상련의 에피소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인가..

꿈은 일종의 터닝 포인트로 작동할 때가 많다. 꿈에서 만난 산신령의 계시나 징조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거나 흉액에서 벗어나는
사례는 옛날 소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그저 그려려니 했는데, 요즘에 과연 꿈을 그렇게 쓰는 이가 있을까? 아니 그러기는커녕 꿈이 기억이나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꾸더라도 일어나서 바로 집중해 기록해두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깨끗이 휘발된다. 그만큼 꿈은 꿀 때는 생생하여도, 깨어나자마자 사라진다.

하지만 예전 기록이나 문헌, 이야기 채록집을 살펴보면 분명히 그 당시 사람들의 꿈에 대한 감각은 지금과 다르다.
물론 몇몇 위인들을 중심으로 꿈에 신령님이 펑~ 하고 나타나 길을 가르쳐주곤 하지만, 그런 것이 무리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오늘날 '야, 나 어제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래~'라고 말하면 실없는 사람 취급 당하리라.

지금과 예전의 꿈을 받아들이는 마음 자체가 다르고, 또 그것을 떠올려낼 수 있는 능력도 현저히 다르다.
기껏 신령님이 나타났는데, 다 휘발되어서 사라지면 대략난감한 일.. ;; 일단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꿈을 기억하여 재구성하는
힘이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이건 신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

그런데 부족사회의 '샤먼'을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샤먼이라 함은.. 무당이나 제사장, 예언자, 민간치료사, 요술사 등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다. 부족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트랜스transs 즉 망아忘我 상태에서 영혼체험을 하는 것이다.

무슨 영화 같은 데 보면, 주술사가 주문 따위를 좔좔좔 외우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둥둥둥 북소리가 주변에서
리드미컬하게 들리며.. 그런 거 있잖는가? 물론 영화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겠으나, 대략 그러한 일련의 행동으로
영적 의식을 수행한다. 영靈과 접속하여 사람들을 치유하고, 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사람들을 질병과 굶주림에서
지켜낼 지혜를 구한다.

트랜스 혹은 망아 상태는 주로 '꿈'을 통해 이뤄진다. 다시 말하면 꿈을 통한 환시幻視라 할 수 있다.
샤먼들은 꿈에서 우주와 영혼의 차원여행을 한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부족성원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준다.
샤먼이라 함은 즉 망아상태를 통제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그것은 바로 '꿈'을 기억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과 다름없다는 것..

자, 꿈은 곧 망아상태와 같으며 그것은 곧 무의식의 영역이다. 샤먼은 그것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숨겨진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자이다. 이렇게 보면, 앞서 언급한 산신령에게 계시받은 여타의 사례와 별개가 아니란 느낌이 든다.
예전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들과 신체가 달랐다고 가정하면, 꿈을 다루는 태도 또한 달랐으리라. 기본적으로 그들은
'샤먼'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즉 꿈(무의식)의 영역을 넘나들며 현실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아니,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갈라지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정신상태였으며 신체가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더라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되지 못하는 '개꿈'으로만 남는 까닭은
달리보면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통로가 막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 역시 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로이 오가는 감각이 쉬이 짐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홍루몽 초반부에 나왔던 보옥의 '태허환경' 체험도 꿈이다. 그렇게 생생한 꿈이 있으랴!? 그리고 그것을 하나도 잊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보옥의 신체성! 허.. 홍루'몽'은 의식세계에만 매몰된 자들에게 보내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인가? 아마 홍루몽을 찬찬히 읽으면 막혔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그리고 우리도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영혼여행을 할 수 있는 샤먼적 존재로 거듭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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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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