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5: 엇갈린 운명과 이별

저자
조설근 지음
출판사
나남 | 2009-07-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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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옥이의 보옥이를 향한 마음은 그녀의 꿈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대목을 보시라.

"나는 생각을 철석같이 굳혔어요. 그런데 오빠는 도대체 나더러 가라는 거예요, 가지 말라는 거예요?"
"가지 말라고 했잖아. 못 믿겠으면 내 마음을 보여줄게."
이렇게 말하면서 보옥은 작은 칼로 자기 가슴팍을 죽 그었다. 그러자 붉은 피가 쭈르륵 흘러나왔다. (중략)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거예요?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세요!"
"걱정하지 마. 내 마음을 대옥이한테 보여주려고 그래."
그러면서 보옥은 벌어진 상처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후벼 파내려고 하였다. (중략)
그때 갑자기 보옥이 소리를 질렀다.
"앗! 내 마음이 없어졌어. 이젠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그러더니 눈자위를 허옇게 뜨면서 꽈당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대옥은 악을 쓰며 떠나가게 울었다. (홍루몽 82회 p62)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가슴팍을 갈라 심장을 꺼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살다보면 이런 말을 하고싶을 때가 더러 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너에게 보여줄까!?' '보여줄수만 있다면! 내 마음을..!'
보여주고 말고 할게 뭐 있나. 평소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 모를 수 없다.

나는 심장을 가르는 대목에서 섬찟함을 느꼈다. 마음을 확증받고 싶은 집요함은, 확인과 동시에 파국을 초래함을..
대개 연인들 사이에서 저런 감정은 곧잘 일어난다. 끊임없이 애정을 시험하고, 확인하는 행위. 처음엔 견딜만하나, 나중에
이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남녀가 따로 없다. 

보옥이가 어떤 사람인가? 그만큼 대옥이에게 무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옥이는 불안해한다. 평소 보옥이가 했던 사랑의 몸짓은 다 무의미했던 것인가?
대옥이에겐 오직 사랑의 확증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집착은 대옥이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나아가 보옥 또한 힘들게 한다.
대옥이 꿈을 꾸는 순간, 보옥이도 가슴팍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고 하니, 이는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확인하고 시험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원하는 사랑을 하라.
얘가 어떻게 나오려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게
가장 산뜻하다. 예컨대 상대가 무엇을 챙겨주기를 바라고 아무 말 없이 있다 나중에 짜증내기 보다, 그냥 바라는 바를 말하면 그만이다.

홀로 기대하고, 홀로 실망하고, 홀로 체념하는 패턴이야말로 상대는 없이 실체없는 유령과 싸우는 꼴이다.
마음은 설령 심장을 끄집어낸다고 확증될 수 없다. 마음은 고정된 상象에 가둘 수 없다. 
마음을 보여주려 고심하면 오히려 마음이 떠나게 마련..
보옥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 것처럼 말이다. "앗! 내 마음이 없어졌어. 이젠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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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장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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