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좋지도 않다. 그냥 평범할 뿐이다.
진로선택을 할 때 자신감이 부족하면 이런 말을 곧잘 한다. 정말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가? 평범한 당신은 그래서 직장이든 뭐든 일단 들어가기에 바쁘고, 이내 어떻게하면 다른 곳으로 옮길까 고민한다. 이래서는 끝이 없다.

답은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유식한 말로 '자아성찰'이다.
운이 좋으면 인생의 멘토들이 당신에 대해 조언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멘토가 곁에 없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우리에게는 책이 있지 않은가. 당신과 같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했다. 따라서 관련 책도 반드시 있다.

아래 소개하는 책들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책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무협지에서 주인공은 절대무공비급을 어떻게든 손에 넣는다. 갖기만 한다고 무공을 습득하는 것은 아니다.
비급에 적혀있는대로 피나는 수련을 해야한다. 어설프게 연습했다가 '주화입마'에 걸려 죽는다. 제대로 해야 한다.

책에 나와있는 Tip을 열심히 '따라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바란다. 소개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


1. 너 왜 사니? 에 대한 물음.

기적의 사명선언문(THE PATH)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로리 베스 존스 (한언, 2007년)
상세보기

이 책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묻는다. '그냥'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사명'과 '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는 것이다. '사명'이라는 거창한 말에 기죽지 마라. 당신은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건 당신이 아니면 안된다. 단지 지금 자신감이 떨어져 자기비하에 빠져있을 뿐이다. 이 책은 비교적 상세하게 개인마다 다른 사명과 비전선언문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자기만의 사명선언문을 갖게 된다면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진로설정이며 직업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 존재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면, 다시 말해 사명선언문을 갖게 되면 직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와 동시에 그것이 당신이 사명에 따라 올곧게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2008/12/30 - [나를 찾는 글쓰기] - 직업선택에 있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



2. 나는 평범한가? 정의할 수 있다면 '평범함'도 강점이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마커스 버킹엄 (청림출판, 2005년)
상세보기

리서치 회사 갤럽이 수많은 DB를 갖고 사람들의 강점을 유형화했다. 그 결과가 이 책에 소개된 '스트렝스 파인더' 검사이다. 인간은 34가지 강점 중 자신만의 강점 4-5개를 보유한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자신만의 필살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평범하다고? 주위와 물흐르듯이 어울릴 수 있는 '적응력(Adaptability)' 강점이 있는 사람이군.

전략 테마는 당신이 혼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독특한 사고 방식이며, 세상 전반에 대한 특별한 시각입니다. 이 시각으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복잡하게만 보이는 것으로부터 일정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략)

2008/12/16 - [나를 찾는 글쓰기] - 농구와 삶 - 축복받은 나만의 강점찾기


나에게 딱 맞는 일을 찾는 법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쿠라바야시 히데미츠 (한언, 2007년)
상세보기

제목만 보고 유치한 느낌이 드는가. 그럴 수 있지만 이보다 와닿는 제목이 또 없다. 자신이 무엇에 소질이 있고 재능이 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들어간다. 이 책의 특징은 내가 마치 탐정이 되어 나 자신을 조사하는 느낌을 준다는데 있다. 뼛속까지 자신을 파고들어가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잘하고 즐기는지 발견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는 인베이더 게임에 열중했다.', '중학교 때는 포크음악에 심취해서 직접 곡을 만들기도 했다.'
당신이 지금 기억해내고 있는 일들은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할 수 있으며, 스스로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기꺼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런 일들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바로 '생명의 일'이지 않을까?

2009/01/06 - [나를 찾는 글쓰기] - 직업선택할때 도움을 주는 책 (part 1)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고즈윈, 2008년)
상세보기

지금 이 글을 흥미롭게 보는 사람들은 '나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는가'에 특히 관심있는 이들이라 여겨진다. 그런 사람들의 아지트가 있다. 바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20대 진로고민 중인 학생부터, 50대 퇴직 후 인생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는 사람까지. '내가 바라는 인생'은 무엇인지 절실히 탐색하는 이들이 관련 책을 냈다.

우리는 강점 발견에 ‘다소 느리지만 확실한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강점 발견에 성공한 한 개인의 경험적 방법이다. 신체 질환을 다루는 일에 있어 현대 의학 외에 한의학이나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같은 오랜 경험이 증명해 주는 방법이 존재하듯이 강점 발견에도 공식화된 도구 외에 개인의 경험으로 그 가치가 증명된 방법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방법들을 정리함으로써 독자들이 그중 자신에게 적합한 한두 가지를 선택하여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자극하고 싶었다.


3. 자신만의 강점을 찾았으면 전략을 세워 나아가자.

개인 브랜드 성공 전략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신병철 (살림, 2004년)
상세보기

나이키, BMW, 몽블랑.. 불멸의 브랜드이다. 브랜드는 제품의 존재 이유. 즉 '사명'이다. 사람도 브랜드이다. 이외수는 작가, 이익훈은 영어, 안철수는 안티바이러스. 그 사람하면 척하고 떠오르는 단어. 그것이 바로 그의 브랜드이다. 잊혀지지 않는 이유이다. 제품의 정교한 브랜딩 전략을 짜듯이, 개인 브랜딩을 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개인 브랜드의 효과 : 타인에게 믿음, 자신의 정체성 확립, 적절한 고객 정의, 개인 경쟁력 향상, 몸값 상승
정체성 : 간디는 독립을 위해 존재, 스티비 원더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존재
고객 정의 : 사람 존재는 타인의 인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유유상종. 나를 알면 시장이 보인다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라
카테고리 취업/수험서
지은이 리처드 N. 볼스 (북플래너, 2007년)
상세보기

앞서 소개한 책들이 자신의 내적인 요소를 발견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 책의 미덕은 실질적인 면접, 취업에 대한 Tip까지 일러준다는데 있다. 취업상담사와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꼼꼼한 구성과 내용이 돋보인다. 자기발견 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한 자료조사, 면접요령, 경력계발 등을 토탈 패키지로 제공.

나는 여러가지 것들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행동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연구된 주제 중 하나가 구직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직장을 찾는 데는 16가지의 방법이 있다. 우리는 이를 '16가지 구직방법'이라고 부른다.

유니타스 브랜드(UNITAS BRAND) VOL.4 : 휴먼브랜드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편집부 (바젤커뮤니케이션, 2008년)
상세보기

브랜드, 마케팅 전문 잡지 중 최고라고 단언하고 싶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유니타스 브랜드'. Vol 4에서는 휴먼 브랜딩 전략에 대해, Vol 5에서는 휴먼 브랜드를 만드는 '휴먼 브랜더'를 집중 취재한다. 말이 필요없는 강추 잡지.


4. 강점과 전략을 세워도, 매일 기도해야 '꿈은 이루어진다'.

보물지도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모치즈키 도시타카 (나라원, 2004년)
상세보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더 시크릿'을 읽어본 사람은 '꿈의 시각화'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 (갖고싶은 해변의 집, 근사한 차, 사랑하는 연인, 성공한 자신의 모습 등)를 지금 당장 만들어보라. 잡지에서 페라리 사진을 오리고, 멋진 집 사진을 프린트해라. 그러는 동안, 당신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 들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미지와 비전을 생생하게 그리는 사람일수록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미지와 성공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공한 사람들이나 행복한 부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명확한 이미지(비전)로 그립니다.

2009/01/18 - [나를 찾는 글쓰기] -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 소개


5. 자기계발+브랜딩은 '블로그'로 꾸준히.

블로그 히어로즈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마이클 A. 뱅크스 (에이콘출판, 2008년)
상세보기

자기가 원하는 삶은 단기간에 '바짝' 열심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히 해야 가능하다. 블로그가 그 좋은 Tool로 등장했다. 이 책은 해외 '파워블로거'의 인터뷰로 구성되어있다. 블로그 주제는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지,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 가득하다.

블로그가 점점 발전하면 개인 이름으로 먹고 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블로그는 연예사업과 비슷해질 것 같다. 마치 연예인이 기획사와 계약하듯 블로거들도 블로그 매니지먼트 사와 계약을 맺는 것이다. CF를 찍는 일이 나올 수도 있고 전문성 있는 사람들은 강의에 나가거나 책을 쓰는 일도 생길 것이다.

2009/01/27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블로그 히어로즈 - 2


한국형 블로그 마케팅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세이하쿠 (매일경제신문사, 2007년)
상세보기

블로그 히어로즈가 다소 일반론이라면, 세이하쿠님의 이 책은 말그대로 블로그 운영에 마케팅을 도입한다. 마케팅의 다양한 기법을 적용해, 어떻게 하면 당신의 블로그가 '돈을 벌 수 있고, 마케팅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일러준다. 이론서처럼 약간 딱딱할 수 있지만,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다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스토리텔러의 경쟁력은 잘 쓰는 것이 아닌 눈높이를 잘 맞추는 것이다. 눈높이를 잘 맞춘다는 것은 고객들의 상식 그리고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코드를 뜻한다. 강력한 스토리텔러는 아무것도 아닌 제품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고 제품이 가지는 가치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한다. 제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구매하게 만드는 초월적인 힘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제품이 단종되어 없어져도 마니아들은 제품이 남긴 꿈과 이야기를 말한다.

2009/02/15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한국형 블로그 마케팅 (블로그 정체성)

Posted by 지장보리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오가와 요코 (이레, 2004년)
상세보기

數라면 고개부터 젓는다.
錢은 좋아하나, 數는 싫다.
이 무슨 소리인가.

수학자인 박사는 80분만 기억을 지속한다. 80분마다 기억이 리셋되고, 그 이전의 것은 지워진다. 그래서 나는 80분마다 그에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박사의 하루는 자신의 양복 깃에 꽂아놓은 메모장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립으로 고정한 노란 포스트잇에는,
'내 기억은 80분만 지속된다' 기분이 어떨까.

행인지 불행인지, 박사의 관심은 오직 수학뿐이다.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오직 수의 광활한 우주에서 헤엄지는 것이 하루 일과. 그런 박사의 집에 10번째 파출부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관계맺는 방식이 있다. 속도로 따지면 처음 만나도 십년지기를 대하듯 금방 친해지는 사람이 있고, 반면 천천히 알아가는 사람도 있다. 스타일로 보면 그냥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술 먹으며 이야기하는걸 편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박사는 숫자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에게 파출부의 신발 사이즈와 태어날 때의 몸무게는 숫자 이상의 의미고, 왕년의 명투수 에나쓰 유타카의 등번호 28은 아름답고 신비한 완전수이다. 명료한 수의 법칙은 박사를 감동하게 하고, 무한한 수의 질서는 그를 숨죽이게 한다. 파출부의 아들은 이마가 평평해 루트 기호인 '루트'라는 애칭으로 불리지만, 박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다. '루트'가 루트 기호처럼 어떤 숫자도 가리지 않고 다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씨가 있는 아이임을.

박사와 파출부, 파출부의 아들인 루트. 세 사람이 80분마다 새로 시작하는 만남은 낯설고 기묘하다.  그 시간의 질감은 두텁다.

수백 시간을 만나도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80분의 만남을 즐겁게 반복하는 그들이 보고싶고, 야구장에 함께 가고 싶은 하루다.

Posted by 지장보리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정민 (김영사, 2006년)
상세보기

(2) 스크랩, 자료 분류 정리에 대한 항목

초서권형법 鈔書權衡法 (읽은 것을 초록하여 가늠하고 따져보라) – 초록방법, 스크랩 방법

휘분류취법 彙分類聚法 –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아라 – 자료 항목별 분류 정리방법

취선논단법 取善論斷法 (좋은 것을 가려뽑아 남김없이 검토하라) – 핵심 엑기스 정리방법

어망득홍법 魚網得鴻法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 잡다한 메모자료 정리

 블로그 글쓰기의 가장 흔한 방법이 Review이다. 순수 창작이 아닌 영화감상, 독후감, 방문소감, 사용후기 같이 어떤 경험을 하고 나서 그것을 되새김질하는 형태이다. 특별한 글 재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직 수첩 혹은 디카로 그때그때 기록하기만 해도 한 편의 글 묶음이 탄생한다. 옛 사람들은 어땠을까.

 예전의 저작들은 이런 비망록 방식 독서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지봉유설은 지봉 이수광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초서해둔 비망기를 모아 주제별로 분류해서 자신의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유설이 바로 이 뜻이다. 성호사설도 마찬가지다. 사설은 자질구레해서 별볼일없는 설명이라는 뜻의 겸양을 담은 표현이다.


 유명한 학자들의 저작들도 알고보면, 책에서 밑줄 쫙~ 치거나 틈틈히 메모해 놓은 생각을 잘 모아 놓은 것이다. 전혀 새로운 생각이라기 보다, 기존의 지식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재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요긴한 대목과 만나면 곁에 쌓아둔 종이를 꺼내 옮겨적었다. 이렇게 적은 쪽지들이 상자에 잔뜩 쌓인다. 그러면 어느 날 계기를 마련하여 상자를 열고 그 안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검토한다. 초록을 할 당시에 이미 주견이 서 있었으므로, 갈래별로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벼슬길에 얽매여 있던 조선시대의 관인들에게 이런 정리의 계기란 흔히 귀양일 경우가 많았다. 비록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으면 그 페이지를 접는다. 어떨 땐 하도 많이 접어서 책이 두툼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검토하며, 접은 부분의 문장을 컴퓨터로 옮겨 타이핑한다. 옛 사람들은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고, 수많은 종이를 양산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조상들의 예에서 보듯이, 스크랩할 때 이렇게 베껴 옮겨적는 것은 유용한 수단이다. 눈으로만 슬쩍 보지 않고, 손이든 타이핑이든 옮겨 적으며 해당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책을 많이 읽고 중요한 내용을 베껴쓰라고 한 것은, 이를 통해 경전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생생한 예시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만 해도 모두 12개 문목 아래 각 편이 6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모두 72조로 분장되어 있다. 기계적인 배치가 전체 구성을 더 일사불란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고려했다. 카드작업이 계속되면서 항목들은 더 잘게 세분되었고, 생각도 점점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었다. 카드작업의 경우, 예전에는 실제 카드에 하나하나 베껴적었지만 항목이동이 자유로운 컴퓨터상에서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전혀 필요없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입력해놓고 나중에 휘분류취하면 된다.


 스크랩을 하는 것은 풍부한 사례를 얻기 위함이다. 사례만큼 좋은 자료는 없다. 어떤 주장이나 의견을 펼칠 때, '옛날에 이랬거나 누가 이랬더라' 라고 예를 들면 이해하기 쉽다. 설명하기 보다 보여줘라. 보여주는 것의 핵심은 '예시'이다.
 스크랩 작업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자료가 적어 분류 작업이 더디다. 그러나 점차 자료가 쌓이다 보면,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이 글도 그런 스크랩 작업으로 작성할 수 있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 내용에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접고, 컴퓨터에 옮겨 적으며 나름 분류했다. 옮겨 적을 때 내용을 좀더 이해하게 되고, 적당한 항목에 집어넣을 수 있다.

 다산에게 초록은 체질화되고 생활화된 습관이었다. 초록없이 기억력만으로 그 방대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지금은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해 파일 이름만 달리해 저장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머릿속에 든 구상과 그 구상을 뒷받침해준 엄청난 양의 카드만으로 이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스크랩은 600페이지를 다시 읽는 수고를 덜어준다. 알짜배기 키워드만 모아두면, 해당 부분에 궁금증이 생겨도 관련 페이지만 들춰보면 해결된다. 즉 나만의 내비게이터를 완성한 것이다. 초서권형법이 베껴적는 작업의 중요성을 말했다면, 휘분류취법은 모아진 자료를 어떻게 재분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

 스크랩 자료가 어느정도 모이면, 쓰임새에 맞게 분류해야 한다. 스크랩 작업을 하며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문제는 자료는 쌓이는데, 도무지 어떻게 정리할지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이런 자료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다산 편집장님은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자.
 

 다산은 휘분류취의 귀재였다. 그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서 전무후무한 편집의 도사였다. 어떤 복잡한 정보도 그의 손을 한번 거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왔다.
 ‘임금께서 식목부를 주면서 말씀하셨다. 7년간 여덟 고을에서 현륭원에 나무를 심은 문서가 거의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로 많다. 하지만 누가 더 공로가 많은지, 심은 나무의 수는 얼마인지조차 여태 명백하지가 않다. 네가 애를 써서 번거로운 것을 걷어내고 간략함을 취하여 명백하게 하여라. 한 권을 넘기면 안 된다. 신이 물러나 연표를 만들었다. 가로로 열두 칸을 만들고(7년을 12차로 배열했다), 세로로 여덟 칸(여덟 고을을 배열했다)을 만들어 칸마다 그 수를 적었다. 총수를 헤아려보니 소나무와 노송나무, 상수리나무 등 여러 나무가 모두 12,009,772그루였다. 표 아래에 기록하여 이를 올렸다. 임금께서 말씀하셨다. 한 권이 아니고서는 능히 자세하게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한 장에다 소 한 마리가 땀을 흘릴만한 분량을 정리했으니, 참으로 훌륭하다. 한참을 칭찬하며 감탄하셨다.


 척 보기에 쉬워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량에 우리는 일단 기가 죽는다. 어떻게 실마리를 잡을까 고민하다 실타래를 헝클어버리기 일쑤이다. 작업초반에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분류, 정리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작정 덤비지 마라. 실타래 헝클어놓으면 골치 아프다.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육우의 다경(茶經)이나 유득공의 연경(烟經)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
 다
산은 자식에게 닭은 치는 것을 계기 삼아 계경을 엮어보라고 권했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역대의 문헌에서 우선 닭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닭의 성질과 덕목, 닭의 사육(알품기와 병아리까기, 둥우리와 횃대, 질병과 치료법 등), 그리고 역대 문헌에 보이는 닭에 얽힌 고사와 한시, 직접 관찰한 내용과 닭에 대해 지은 시, 대략 이런 내용을 토대로 각각의 장을 구상한다.


 항목을 만드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자료는 도무지 어떤 항목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기타'라는 항목에 집어넣는다. 시간이 흘러 방치해두면 '기타' 항목이 제일 많아지는 일이 발생한다. 아무리 세세하더라도 자신만의 항목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기타'라는 말 자체는 '아무 생각없음'이란 말과 같다. 다산 편집장님은 닭에 관한 항목만 해도, 여러 개를 만들었다.

 다치바나 다카시 氏는 잡지를 모아둔 '오야 문고'를 언급하며 독특한 분류법을 소개했다.

 오야 문고에는 현재 약 6,000종류, 20만 권의 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의 기사들은 인명색인과 건명색인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중략) 대항목은 비교적 건실한 것들이지만 그중에는 '기인(奇人) 연인', '여자', '도박', '정사(情死) 및 자살'같은 이채로운 항목도 있다. '범죄 및 사건'이라는 대항목에는 25가지의 중항목이 있는데 그중 다섯 가지가 살인 사건 관계로 '살인 일반', '존속 살인', '보험금 살인',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해치는 살인, 무차별 살인', '유명한 살인 사건'등으로 되어 있다.
 소항목을 보면 개개의 살인 사건 외에도 '인체 절단 살인 사건', 푸대, 자루, 콘크리트에 묻어서 살해한 사건', '치정 살인'등의 항목도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도서관의 십진분류만이 분류의 전부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하고 기발한 항목을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 자체가 기획력이다. 다산 편집장님과 다치바나 氏는 한일 양국의 편집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대박을 친 도서들도 이런 항목 분류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잭 캔필드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처럼 제목부터 이런 뉘앙스를 띤 것이 좋은 사례이다.

 말하자면 다산은 계경의 정리를 통해 양계의 경험을 누적하고, 지식경영을 학습하는 장으로 활용하려 했던 거시다. 이런 방식의 교육법은 생생하면서도 그 효과가 직접적이다. 18세기에는 이런 방식의 지식경영이 크게 성행했다. 담배에 관한 모든 정보를 한자리에 모은 이옥의 연경, 관상용 비둘기 사육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유득공의 발합경, 애완용 앵무새의 사육과 앵무새에 얽힌 문헌고사 및 한시를 취합한 이서구의 녹앵무경 같은 책들도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정리된 지식경영서들이다.

 옛 사람들은 진작부터 이런 방식을 애용해왔다. 종핵파즐법을 언급하며 말했듯이, 한 가지 사소한 자료라도 그 뿌리까지 캐내면 의미가 있다.

 다산은 말한다. 복잡한 문제 앞에 기죽을 것 없다. 정보를 정돈해서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 효율적으로 정보를 장악할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잡아라. 먼저 모으고, 그 다음에 나눠라. 그런 뒤에 그룹별로 엮어 다시 하나로 묶어라. 공부는 복잡한 것을 갈래지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갈팡질팡하지 말고 갈피를 잡아야 한다. 교통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서랍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 글도 내 코멘트를 중간중간 넣었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내가 아닌, 텍스트 (자료)이다. 나는 자료의 흐름에 따라 추임새를 넣을 뿐이다. 영화로 치면 영화감독이요 (연기는 배우가 한다), 야구로 치면 야구감독이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

다음 편에는 취선논단법과 어망득홍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2009/04/01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다산 정약용 편집장님의 특별강좌 (글감찾기)
2009/03/31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다산 정약용 편집장님에게 배우는 자료 분류 정리법 (인트로)
2009/02/15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한국형 블로그 마케팅 (블로그 정체성)
2009/01/27 - [내가 읽고 싶은 글 쓰기] - 블로그 히어로즈 - 2
Posted by 지장보리
,